'지적장애 호순 씨'

[ 목양칼럼 ]

손주완 목사
2017년 07월 04일(화) 11:51

작은예수공동체는 여러 식구들이 함께 사는 곳이다. 식구(食口)란 한 솥밥을 함께 먹고 사는 사람들을 말한다. 농경사회에서 가족은 한 집에서 한 솥밥을 먹으며 함께 살았다. 하지만 현대사회는 가족이 함께 식사를 하는 일이 점점 줄어들었다. 매일 얼굴을 마주하고 함께 밥을 먹지 못하는 가족이 더 많다. 언제부턴가 '혼밥'(혼자 밥을 먹는 행위/ 혼밥의 이유는 여러 가지이다. 혼자 먹고 싶어서 또는 다른 사람이랑 먹는 것이 불편해서, 같이 먹고 싶은데 안 끼어줘서)이라는 단어가 등장하면서, 우리는 '식구'라는 따뜻한 관계를 잃어버리게 되었다.

한 달 전 호순 씨는 작은예수공동체의 식구가 되었다. 지적장애를 가지고 계신 분이다. 처음에는 모두들 걱정을 많이 했다. '과연 공동체에 함께 적응하며 살 수 있을까?'하는 의문이 들기도 했다. 공동체에서 함께 생활하시는 어르신들과의 관계, 일하시고 봉사하시는 분들과의 의사소통, 본인 일상생활의 관리능력 등 여러 염려가 있었다. 걱정과 염려로 시작한 호순 씨의 공동체 생활은 하루 이틀이 지나며 우리에게 새로운 발견을 하게 해 주었다.

우리는 많은 편견 속에서 그분을 보고 있었다. 한 달이 지난 지금, 호순 씨는 공동체의 훌륭한 멤버가 되어 있다. 아침에 일어나면 혼자 씻고, 화장실을 다녀온 후 어르신들이 생활하는 공간으로 출근(?)한다. 방마다 다니며 어르신들에게 가까이 가며 말을 붙인다. 물론 모두에게 '반말'을 하지만 외로운 노인들에게는 말벗의 상대가 되어 준다.

간혹 치매 노인과 서로 다른 대화의 주제가 오고 가지만, 아무런 문제가 없다. 식사시간이 다가오면 상을 펴고 의자를 갖다 놓는다. 방마다 다니며 "밥 먹으러 와!"라고 말한다. 식사가 끝나면 그릇을 정리하고 주방으로 가지고 온다. 일과가 시작되면 걸레를 가지고 다니며, 청소기가 지나간 자리들을 닦는다. 치매 어르신이 밖으로 나가 풀을 매겠다고 고집을 부리시면, 같이 집 앞에 나가 작은 일손들을 돕는다. 서늘한 저녁이 오면, 거동이 가능한 어르신들의 산책을 동행하며, 어르신들의 산책길을 인도한다.

아무것도 할 수 없을 줄 알았던 호순 씨는 지금 많은 역할들을 하고 있다. 남에게 짐이 되고 피해를 줄 줄 알았던 호순 씨는 지금 남을 돕고 있다. 자신의 역할을 감당하고 남을 도우며 살아가는 것이 당연한 것이지만, 그 조차도 감당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비장애인이지만 타인에게 피해를 주며 살아가는 사람들은 또 얼마나 많은가?  사람들은 장애인을 비하하고, 인정하지 않으며, 조롱거리로 만든다. 오해와 편견은 우리의 마음을 강퍅하게 만들며, 우리를 점점 더 메마른 인간으로 몰아간다. '세상사는 이치'가 그렇다며 우리는 타인을 경계하고, 불신하며, 공격한다. 그것은 나의 '죄성(罪性)'이며, 나의 '오만함'에서 비롯된 것이다.

오늘 아침에도 호순 씨는 깔깔거리며 웃는다. 항상 같은 길이(소리 내어 혼자 웃는 시간의 길이)와 하이톤(high tone)의 웃음소리는 공동체의 식구들을 웃게 만든다. 남의 이야기는 건성으로 듣고 자신의 이야기는 반복한다. '반말' 그리고 '같은 단어'의 반복이지만, 이제 우리는 호순 씨가 무슨 말을 하는지 다 알아 듣는다. 도저히 같이 살 수 없을 것 같았던 그 분은 지금 우리와 함께 하루의 일상을 잘 살아가고 있다. 함께 사는 것이 때로는 불편하고, 힘든 일이 생기기도 한다. 그래도 함께 사는 것이 더 낫다.

손주완 목사작은예수공동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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