福수저

[ NGO칼럼 ]

배성훈 목사
2017년 06월 27일(화) 16:17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회복지사'라고 하면 이용자에게 상담을 해주거나 골목길에 주욱 늘어서서 연탄을 나르거나, 어려운 동네 속속들이 도시락을 배달하는 등 늘 이용자와 함께 있는 모습을 떠올린다.

하지만 주안복지재단과 산하시설 운영을 위한 수많은 결재서류들을 처리하다 보면 하루 종일 한 명의 이용자도 만나지 못하고 지나가는 날이 많다. 그럴 땐 가끔 이런 생각이 든다.

'나는 사회복지사인가?' 물론 사회복지법인의 특성상 복지관 같은 이용시설보다는 현장을 접할 기회와 이용자들을 대면할 일이 적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현장에서 이용자들에게 둘러싸인 사회복지사들은 사회복지사라는 확고한 정체성과 직업적 사명이 있을까?

주안복지재단이 운영하는 주안애 종합사회복지관 사회복지사의 말이다. "명절이나 연말, 차에 한가득 후원품을 싣고 바삐 달리고 있노라면 마음속으로 이런 생각이 듭니다. '나는 사회복지사인가? 택배기사인가?'"(물론 이 말은 사회복지사와 택배기사를 비교하는 말이 아니라 일을 하는 것에서 혼돈이 오는 것을 나타낸 표현이다. 이 땅의 모든 택배기사님들에게 주님의 축복을!) 고민이 생긴다.

과연 대한민국 사회복지사는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인가? 어려운 사람에게 경제적 지원을 하는 것은 공무원들이 더 정확할 것이고, 후원품을 전달하는 것은 택배기사가 더 신속할 것이고, 지역주민들에게 문화강좌를 제공하는 것은 백화점 문화센터가 훨씬 탁월할 텐데 왜 굳이 주안복지재단을 통해야 할까?

고민 끝에 깨달음이 왔다. 우리는 어쩌면 신체의 일부분일지도 모른다. 하나님을 머리로, 교회를 몸으로 하나의 공동체에서 우리는 숟가락을 쥔 팔과 손과 손가락이다.

금수저나 은수저, 심지어 흙수저조차 물고 태어나지 못한 어려운 이웃들에게 복(福)의 근원이신 하나님의 은혜를 선물하는 '福수저'를 쥐어 주는 사람들이다. 주안복지재단을 설립한 주안교회는 어깨가 되어 몸통과 팔을 단단히 연결하고 주안복지재단은 팔꿈치가 되어 힘을 전달해주며, 주안애 종합사회복지관, 나래 장애인주간보호센터, 부평구 건강가정지원센터가 여러 손가락이 되어 '福수저'를 쥐고 종횡무진 움직인다(이럴 때 복지를 나타내는 한자 '福祉'가 '福'(복 복)자와 '祉'(복 지)자가 아니라 '福'(복 복)자에 '指'(손가락 지)자면 참 글쓰기 편할텐데.).

각 부위들(?) 입장에서는 그저 '구부렸다, 폈다'를 반복하는 것 같아 때때로 한숨이 나올 만큼 지루하고 따분할 수 있겠으나, 결국은 그들 모두가 우리의 머리 되시는 하나님의 뜻을 품고 어려운 이들에게 복을 나누는 일에 동참하고 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수저를 쥔 손가락에서부터 몸통과 팔을 이어주는 어깨까지 어느 한 곳도 불필요하거나 무의미한 곳은 없다. 삶의 의미와 주님의 섭리를 깨닫게 하는 그 일이 바로 나의 소명(召命)이다. 반복해서 말해본다. '나는 복수저다', '나는 복수저다', '나는 복수저다'

이 기사는 한국기독공보 홈페이지(http://www.pckworld.com)에서 프린트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