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사랑했던 선생의 정신을 되새기다

[ 문화 ] 권정생 선생 서거 10주년 맞아 기념행사 풍성

표현모 기자 hmpyo@pckworld.com
2017년 06월 20일(화) 10:07
   
 

병약한 몸으로 일직교회 문간방에 살면서 '몽실언니', '강아지똥' 등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동화를 집필한 권정생 선생(1937~2007)의 서거 10주년을 맞아 곳곳에서 이를 기념하기 위한 행사가 열리고 있다.

대전의 계룡문고에서는 '보고 싶은 권정생'을 주제로 10주기 추모전을 지난 2일부터 오는 8월 26일까지 연다. 오는 6월 16일에는 '작은 사람 권정생' 북콘서트, 7월 7일에는 몽실 언니 낭독회, 8월1일에는 작가 김병하 선생과 함께 권정생을 찾아 떠나는 문학기행 등이 진행된다. 이외에도 수시로 권정생 작품 읽어주기와 책놀이가 진행되고 포토존 등을 마련하고 있다. 전시관에는 권 선생의 유품 가운데 유언장, 책상, 소반, 일기장 등 선생의 체취를 느낄 수 있는 물품들을 전시하고 있다. 이와 함께 이 전시회에는 선생의 연보와 일대기가 간략한 설명과 함께 전시되어 있으며, 그의 삶과 문학세계를 알 수 있는 동영상도 볼 수 있다.

#10주기 맞아 어린이 방문객들 증가

권정생어린이문화재단에서는 안동시 일직면에 위치한 권정생 동화나라에서 지난 5월17일 제10회 권정생 선생 추모의 정 행사를 개최하고, '할머니의 마지막 손님'을 쓴 임정자 작가에게 권정생 창작기금을 전달하기도 했다. 재단이나 권정생 생가(안동시 일직면 조탑리 7번지)를 방문하고자 하는 이는 홈페이지(www.kcfc.or.kr)를 통해 방문 신청을 할 수 있다.

권정생 선생의 유언에 따라 설립된 권정생어린이문화재단은 남북의 소외된 어린이들과 세계 분쟁지역에서 고통 받고 있는 어린이들을 위한 사업을 목적으로 정호경 신부, 최완택 목사, 박연철 변호사 및 유족들이 뜻을 모아 설립했다. 문화재단은 현재 소외지역 공부방 도서지원사업, 독서지도사업, 희망드림캠프사업, 권정생 창작기금 수여사업, 북한 어린이들 우유 및 급식 지원 사업, 결핵환자 의약품 지원사업, 평양 어린이 사과농장조성사업 등을 진행하고 있다.

#결핵으로 고생하면서도 마음은 행복의 나라 속에

권정생은 1937년 일본에서 태어나 1946년 귀국했으며, 1968년부터는 일직교회 문간방에서 종지기로 살며 그곳에서 강아지똥과 몽실언니를 썼다. 선생은 1983년 가을 빌뱅이언덕 밑 우두막집으로 이사를 와 그곳에서 생을 마감했다.

그는 소작과 날품팔이로 연명하는 가난한 집안의 일곱 남매 중 여섯째로 태어나 자신도 초등학교 졸업 후 행상으로 떠돌며 동냥까지 해야만 했다. 그는 지독한 가난으로 인해 면역력이 약해져 결핵이 온 몸에 퍼진 끝에 신장과 방광을 떼어낸 뒤 평생 소변 주머니를 달고 살아야만 했다. 키가 170cm인 그는 평생 37kg이 넘은 적이 없다고 한다.

특히 일직교회 문간방에서 생활을 할 때는 여름엔 새벽 네시와 밤 여덟시, 겨울엔 새벽 다섯시와 저녁 일곱시마다 15년간 종을 친 일화는 유명하다. 그는 한겨울 추위 속에서 종을 칠 때도 맨손으로 종 줄을 당긴 것으로 알려졌는데 일직교회 종탑 아래에는 그가 맨 손으로 종을 친 이유가 적혀 있다.

"새벽 종소리는 가난하고 소외받고 아픈 이가 듣고 벌레며 길가에 구르는 돌멩이도 듣는데 어떻게 따뜻한 손으로 칠 수 있어."

그는 일직교회 문간방에 기거하는 동안 주일학교 선생을 하면서 아이들과 자주 어울리며 동화를 들려주곤 했다. 동화를 들려주다보니 자연스럽게 동화를 쓰게 된 권정생은 항상 병 때문에 언제 죽을 지 모른다는 생각 때문에 정성을 들여 동화를 완성해야 한다는 의지가 있었다고 한다. 이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 일직교회 문간방에 들어간 이듬해 발표된 그의 첫 동화 '강아지 똥'이다. 그는 이 동화를 통해 아무리 하찮은 것도 쓸모가 있으며 생명과 자연에 대한 사랑을 이야기했다.

권 선생은 하루 글을 쓰면 이틀을 누워 쉬어야 할만큼 병약한 몸이었지만 '점득이네', '밥데기 죽데기', '한티재 하늘', '우리들의 하느님', '랑랑별 때때롱' 등 주옥 같은 작품을 남겼다.

그는 생을 마감하면서도 "내가 쓴 모든 책은 주로 어린이들이 사서 읽은 것이니 여기서 나오는 인세를 어린이에게 되돌려주는 것이 마땅할 것"이라며, 자신이 인세로 얻은 돈을 어린이들에게 환원했다.

또한, 그는 북한의 어린이들에게 지대한 관심을 가진 이였다. 그는 유언장에 북측의 굶주리는 아이들에게 자신의 통장에 있는 돈을 보내라고 말하고, "제발 그만 싸우고, 그만 미워하고 따뜻하게 통일이 되어 함께 살도록 해주십시오"라는 말을 임종시 이야기했다고 전해진다.

#일직교회에선 권 선생의 기독교인의 면모 볼 수 있어

기독교인들이라면 권 선생이 15년간 거주했던 일직교회에 방문해볼 것을 권한다.
권정생 선생이 기거했던 일직교회의 담임 이창식 목사는 "권정생 선생의 발자취를 찾아 교회를 찾는 사람들은 여전히 많다"며 "교회에 오는 경우 동화책과 강아지똥 인형을 나눠주기도 하고 그분의 일화를 들려주기도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여러 교회에서 어린이 체험 프로그램으로 일직교회를 방문해 권정생 선생이 살던 문간방에서 글짓기를 하고, 그가 치던 종을 치며, 이창식 목사로부터 권정생 문학의 기독교적 면모와 그의 신앙에 대해 들을 수 있다. 이 목사는 권 선생의 장례식 집례를 했을 정도로 그의 생애 마지막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봤으며, 결국 권 선생의 영향으로 '빌뱅이 언덕 꽃삼만대'라는 동화를 집필하는 등 동화작가로 등단하기도 한 인물이다.

일직교회 방문 문의는 전화(010-8381-1670)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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