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를 기다림

[ 목양칼럼 ]

이종학 목사
2017년 06월 14일(수) 15:09

우리는 요즘 신임 대통령의 소박한 모습들 때문에 은연중에 행복감을 맛본다. 한편 지금은 농사의 계절인데 강수량이 예년 평균 반도 안 되어서 걱정이다.

댐들이 바닥을 보이고 저수지가 갈라지며 농민들의 마음은 타들어 간다. 예전 같으면 이런 상황은 나랏님이 덕 없는 탓이라 하여 백성들의 원성을 사곤 했다.

이스라엘은 비가 오는 계절이 겨울과 봄이다. 그래서인지 여름과 가을은 푸른 풀잎이나 노란 꽃 한 송이를 보는 것이 쉽지 않다. 온통 가물고 메마른 땅에 누렇게 시든 들풀뿐이다. 우리 농사는 대부분 봄에 씨를 뿌려서 가을에 거둔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겨울로 접어들며 씨를 뿌린다. 그리고 봄이 되면 곧 추수를 한다. 성경은 이스라엘 땅에서 겨울에 오는 비를 이른 비라 하고 봄에 오는 비를 늦은 비라 한다. 10월 11월에 오는 비는 이른 비, 3월 4월에 오는 비는 늦은 비라 하는 것이다(신 11:13~17).

이른 비 늦은 비는 모두 곡식이 자라는데 절대적이다. 파종 할 때는 물론 추수의 계절 역시 빗물이 충분해야 곡식이나 과실 열매가 풍성히 맺힐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이스라엘 땅의 겨울과 봄비는 축복이다. 비가 충분한 것은 곧 풍요와 번영을 예고하기 때문이다(슥 10:1).

아프리카는 대륙의 3분의 1이 사막이다. 특히 사하라 사막은 낮이면 40도 가까이 오르고 밤이면 영하 기온으로 떨어진다. 매일 40도 정도의 일교차가 나니 사람도 짐승도 힘겹게 산다.

나무도 식물도 꽃도 없으니 육체적 고통은 물론 정신적으로도 어둡고 삭막하다. 이런 척박한 땅에도 어느 날 비가 한 번 쏟아지면 그새 풀이 나고 나무가 자라고 또 동물들이 뛰어놀게 된다. 그러기에 때를 따라 주시는 비는 축복의 단비이며 생명의 힘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신명기는 비에 대하여 이렇게 기록한다. '나의 교훈은 비처럼 내리고 내 말은 이슬처럼 맺히나니 연한 풀 위에 가는 비 같고 채소위의 단비 같도다'(신 32:2). 이는 주의 '교훈과 말씀'이 곧 풀 위의 이슬처럼 채소 위의 단비처럼 우리 인생을 풍족케 하는 복이요 양식이다라는 그런 말씀이다.

사도요한은 그 '교훈과 말씀'에 대하여 이렇게 증언한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 1:14). 여기 태초부터 계셨고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게 되신 '말씀'은 곧 예수 그리스도시다. 그러니까 사도요한은 예수 그리스도를 말씀으로 표현한 것이다. 그러기에 성경의 말씀들은 궁극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낸다.

이슬처럼 맺히고 연한 풀 위의 비 같은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죄로 시들고 메마른 우리 인생의 단비로 오셨다. 그는 이스라엘 땅의 이른 비 늦은 비와 같이 선포되는 곳마다 치유와 회복의 역사들을 일으킨다. 그러기에 주의 말씀이 있는 곳은 늘 이른 비 늦은 비로 기름진 땅처럼 생명이 움트고 성장하며 번성케 되어 왔다.

우리는 근래 국가 지도력이 바뀌고 그로 인한 신선한 행보들이 이어지고 있음을 보고 있다. 그 덕에 이 땅의 가뭄도 그쳐졌으면 좋겠다. 3년 6개월 동안 그쳤던 비를 다시 쏟아지게 한 선지자의 기도는 우리들의 몫이기를 바라며….

그리고 주일마다 강단에서 전해지는 말씀들이 은혜의 단비로 촉촉한 이슬이 되어 병든 자, 상한 마음, 무너진 인생, 약한 걸음들을 다시 세우고, 씻고 치유하는 생명의 역사가 있었으면 참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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