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적 차원의 인성교육 모델 절실

[ 연재 ] 교육칼럼/ 열려라 인성(1)

우수호 목사
2017년 06월 07일(수) 09:32

언젠가 한국을 방문한 일본 게이오대학(慶應大學)의 총장은 강연에서, 한국, 일본, 미국을 포함한 선진 국가의 교육은 실패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 이유 중 첫번째가 교육이 학생들에게 '삶의 의미'를 가르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교육은 수능 점수를 잘 받고, 좋은 대학을 가는 방법과 기술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한사람의 인격을 성숙하게 완성하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가 되어야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교육은 그런 의미에서 제고되어야 할 부분이 많다.

성적은 좋지만 정직하지 못하고, 명문 대학에 들어갔지만 사람에 대한 배려와 이해가 없고, 이기적이며 도덕성이 바닥인 인재들이 많기 때문이다. 학교를 다니면서 올바른 사람이 될 교육의 기회를 얻지 못했던 것이다.

이러한 교육의 결과는 삼풍백화점과 성수대교 붕괴, 학교 폭력, 왕따, 자살의 증가, 방산비리, 세월호사건 등 학교와 사회의 전반적인 위기를 가져오고 있다. 정부는 늦게나마 인성교육의 중요실을 깨닫고 2014년 12월 29일 '인성교육 진흥법'을 제정하여 2015년 1월 20일에 공포하였다.

그러나 그 실효성면에서 현장의 많은 교사들과 교육전문가들은 의문을 가지고 있다. 그 접근 방법이 물질주의와 결과위주의 성과를 우선으로 하는 사회적 풍토와 입시위주의 교육현장의 제도 개혁에서 출발한 것이 아니라 단순한 법조항으로 접근하고 있기 때문이다.

베드로후서 1장 5~7절에 보면 "그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더하라"라고 말씀하고 있다. 여기서 '덕(德,virtue)'이란 '인간이 인간으로서 갖추어야 할 됨됨이'를 의미한다. 지금 학교에서는 이러한 '됨됨이'를 위한 배움과 가르침의 기회가 너무나 적다.

논어 학이편에 보면 '子曰 弟子入卽孝 出卽第 謹而信 汎愛衆 而親仁 行有餘力 卽以學文(자왈 제자입즉효 출즉제 근이신 범애중 이친인 행유여력 즉이학문)'이라는 말이 있다. 그 의미는 "제자(학생)는 집에 들어가서는 효도하고, 나와서는 웃어른을 공경하며, 조심스럽고 미덥게 하며, 널리 사람들을 사랑하고, 어진 사람을 가까이 하며, 이렇게 하고도 남은 힘이 있다면 글을 배운다"는 것이다. 먼저 올바른 사람이 되는 것이 공부를 하여 많은 지식을 쌓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는 의미이다.

훌륭한 명검(名劍)에는 반드시 그것에 걸맞은 칼집이 있어야 한다. 아니면 다른 사람도 다치게 하고, 자신도 상처를 입을 수 있기 때문이다. 공부를 해서 실력을 쌓는 것은 칼날을 세우는 것과 같다. 그 실력이 다른 사람과 자신을 위해 유용하게 쓰이기 위해서는 칼집과 같은 인격이 잘 갖추어 져야 한다.

영화 '코치 카터(Coach Carter)'에 등장하는 주인공 존 카터의 교육철학은 오늘 우리에게 많은 통찰력을 준다. 그는 농구 선수들에게 농구 실력 못지않게 '좋은 인성'을 길러주기 위해 노력한다.

약속을 지킬 줄 알고, 자신의 일을 스스로 책임질 줄 알며, 성공했을 때 그 성공을 잘 지키고 유지해 나갈 수 있는 인성을 갖추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 이러한 그의 교육철학 뒷면에는 많은 연봉을 받고 실업팀에 들어갔지만, 항상 연습시간에 늦고 계약조건을 지키지 못해 구단에서 쫓겨나고, 경기 중에 욕설로 상대 선수를 모독하고 비난하며 다투다가 경기장 밖에서 칼에 찔려 목숨을 잃고, 갑자기 들어온 많은 수입으로 마약과 술에 중독되어 감옥에 가고 농구 실력은 뛰어나지만 올바른 인성을 갖추지 못해 힘들게 이룬 성공을 하루아침에 무너뜨리는 동료들의 안타까움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코치 카터는 뛰어난 실력보다 더 중요한 것이 인성 곧 '사람 됨'이라는 것을 절실히 느낀 것이다.

학생들이 학교에서 배워야 하는 것은 외워서 익히는 지식뿐 만 아니라, 관계를 통한 인격을 연마하고 함께 더불어 살 줄 아는 덕(德) - 곧 훌륭한 인성(人性)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그래야 그가 가진 실력과 재능이 더욱이 빛이 나고 유용하게 사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 우리 사회와 교육현장은 이러한 인성교육의 필요성이 어느때 보다 크게 요구되고 있다. 무엇보다도 인본주의적 접근의 인성교육이 아니라 사람의 근본을 변화시키는 신앙적 차원의 인성교육의 모델이 절실히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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