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회개가 있는가?

[ 논단 ]

김진홍 목사
2017년 06월 02일(금) 10:03

김진홍 목사
금천교회
 

올해 루터의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아 한국교회는 다양한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종교개혁이 없었다면 아마도 오늘의 개신교회가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우리에게 종교개혁은 너무나 다행한 일이며, 바른 복음을 만날 수 있게 된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축복이다. 그런데 종교개혁의 핵심은 제도를 바꾸는 것만은 아니었다. 종교개혁의 진정한 출발은 회개에서 시작됐다. 제도와 행위를 통한 구원이 아니라 회개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영접할 때에 구원이 이뤄지는 것이다. 한마디로 종교개혁은 제도의 변화가 아닌 사람의 변화라고 말할 수 있다.

그래서 예수님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고 하셨다. 세례요한도 예수님처럼 회개를 외쳤다. 진정한 신앙의 출발은 회개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즉 사람의 변화에서 시작돼야 한다. 사람은 변하지 않고 제도만 바뀌면 아무리 노력해도 또 다른 문제만 만들 뿐이다.  

예수님은 왜 베드로에게 닭이 울기 전 세 번이나 부인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을까. 전능하신 예수님은 그런 과정을 거치지 않고도 제자를 훈련시키실 수 있으셨을 것이다. 그러나 필자는 진정한 제자가 되기 위해선 회개라는 터널을 통과해야만 하기에 예수님은 베드로를 넘어지게 하셨다고 믿는다. 베드로에게 통곡과 진정한 회개를 배우게 하신 것이다. 

우리 한국교회의 진정한 부흥도 1907년 평양에서의 회개 운동으로부터 시작됐다. 길선주 장로나 그 당시의 지도자들과 평신도들이 얼마나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가슴을 찢었는가를 한국 기독교 역사는 말해주고 있다.

그런데 오늘의 한국교회를 돌아보라. 언제부턴가 회개가 없는 교회가 됐다. 필자가 처음 신앙생활을 시작할 때만 해도 자주 기도원에 올라가 가슴을 치며 회개의 눈물을 흘렸다. 한 해에 몇 번씩 금식기도를 하며 회개했다. 목회자와 성도들이 함께 울면서 금식하고 기도하고 회개하는 것이 한국교회의 영적 흐름이었다. 교회의 강단에서도 회개하라는 말씀이 강하게 선포됐다. 그런데 오늘의 한국교회는 회개 없는 신앙생활에 익숙해졌다. 강단에서부터 회개하라는 설교는 하지 않는다. 아예 회개라는 말조차 듣기 힘든 교회가 됐다. 회개가 없는데 어찌 성령이 역사 할 수 있을까? 아예 성령이 역사 할 수 없도록 고착화되는 현실을 보면 안타까움과 슬픔이 밀려온다.

한국교회가 살 수 있는 길은 한 가지뿐이다. 성령이 운행하시는 은혜를 입어야 한다. 그 은혜를 입는 길은 회개라는 좁은 길 뿐이다. 그러므로 강단에서부터 회개의 설교가 선포돼야 한다. 그리고 목사부터 회개의 눈물이 흘러야 한다. 진정한 회개가 있는 신앙생활을 해야 한다. 제도적 개혁만 있고 회개가 없다면 인간적인 냄새만 요란한 모임이 될 뿐이다. 

회개는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다. 회개 할 수 있도록 하는 하나님의 은혜가 임해야 한다. 그 은혜는 회개하려는 몸부림이 있을 때에 임하는 것이다. 오늘 목사와 성도들에게 회개하려는 몸부림이 있어야 한다. 한국교회 안에 이 회개의 눈물이 흐르도록 회개의 영을 부어달라고 몸부림쳐야 한다. 

회개 없는 인격이나 신앙에 하나님의 말씀이 떨어지는 것은 길가나 자갈밭에 떨어지는 것과 같다. 이제 한국교회는 회개하며 부르짖어야 한다. 회개만이 살길이다. 
회개만이 하나님의 긍휼하심과 은혜를 입는 길이다. 회개가 있을 때에 옥토같은 영혼들이 살아날 것이다. 이제 회개의 강단을 만들자. 회개의 눈물이 교회와 인격과 영혼을 적시는 한국 교회를 만들자. 그러기 위해서 회개의 눈물이 있는 목사의 낙타 무릎이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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