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질에 충실한 교회

[ 논단 ]

황승룡 목사
2017년 06월 02일(금) 09:50

황승룡 목사
전 호남신학대학교 총장

  
우리는 기독교에 대한 비 기독교인들의 반감 증대와 신뢰의 추락, 이단종파들의 위협적 공격, 인구감소로 인한 인구절벽의 외적인 문제들은 물론, 교회 공동체의 세속화와 분열 등을 비롯한 내적인 문제들에 직면해 있다. 이러한 문제들은 오늘날 교회의 모습을 비판적으로 돌아보게 하고 이러한 위기상황에서 벗어날 방법을 모색하게 한다. 이를 극복하기 위한 여러 제안들이 있을 수 있겠지만 가장 기본적인 대답은 본질에 충실한 교회가 되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교회의 본질'란 '교회의 실존의 목적'을 의미하는 것이다. 교회는 그 스스로 목적이 될 수 없다. 교회는 특정한 목적을 위해 태어난 것이고, 그 목적들이 교회 자신의 실존의 근거가 된다. 초대교회부터 지금까지 교회에게 부여된 가장 중요한 세 가지의 실존목적들은 '케리그마' '디아코니아' 그리고 '코이노니아'이다.

먼저 교회는'케리그마(kerygma)'의 교회가 돼야 한다. 교회의 가장 기초적이고 본질적인 사역은 말씀선포의 사역이다. 교회는 하나님의 나라에 관한 선포,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의 선포,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영원한 생명에 대한 선포로부터 생겨났다. 케리그마의 사역이야 말로 모든 권력기구나 세속 단체 그리고 사회봉사 단체로부터 교회를 구별해주는 가장 중요한 특성이요 기준이 된다. 교회의 사명은 그 무엇보다도 그리스도의 복음을 선포하고 구속사역으로 초대하는 것이다. 만일 교회가 선포하는 복음이 단순히 세상에서의 성공과 행복을 구하는 도구로서 선포된다면, 만일 교회가 선포하는 복음이 단순히 비인간화되어가는 사회에서 인간성의 회복을 부르짖는 도덕적 가르침으로만 선포된다면 교회의 복음은 세속화된 것이다. 복음은 아픈 상처를 치료하지만 심리상담학으로 환원될 수 없고, 행복과 만족을 주지만 행복학 강의가 될 수 없으며, 도덕적인 가르침을 전하지만 윤리학으로 환원될 수 없다. 복음의 핵심은 우리의 죄를 깨닫게 하고 구원의 은혜를 경험하게 하는 죄와 은혜의 변증법인 까닭이다.

둘째로, 교회는 '섬김'의 교회 즉, '디아코니아(diakonia)'의 교회가 돼야 한다. '식사를 시중들다'는 의미를 가진 디아코니아는 초대교회에서 교회공동체와 다른 공동체들을 구분하게 해주는 즉, 예수의 제자들의 결정적인 특징이었다. 주님은 제자들의 발을 씻기셨으며, 자신의 삶의 이유는 섬김을 받는 것이 아니라 섬기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막 10:45)" 또한 이 세상의 왕들은 강제와 권력으로 다스리지만 하나님의 나라의 다스림은 낮아짐과 섬김을 통하여 다스리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눅 22:25-27)"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를 기초로 하여 세워진 교회공동체는 지배하는 공동체가 아니라 섬기는 공동체가 돼야 한다. 값진 섬김을 위하여 자신의 욕망과 안위를 기꺼이 희생하는 공동체이어야 한다. 하나님과 이웃을 섬기기 위하여 부름 받은 교회와 성도는 자기중심적인 방법으로 권력을 행사하거나 다른 사람들 위에 군림할 수 없다. 교회는 스스로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타자를 위해 존재하는 공동체인 까닭이다. 교회는 하나님과 더불어 하나님에 의하여 창조된 세계를 섬기는 것을 그 자신의 과제로 가지고 있다. 

셋째로, 교회는 '사귐' 또는 '교제'의 공동체 즉, '코이노니아(koinonia)'의 공동체이다. 코이노니아는 좁게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과 가지는 교제 그리고 신앙의 형제자매들 간에 가지는 교제를 표현하는 의식이다. 좁은 의미에서의 코이노니아는 초대교회의 모습에서 가장 이상적으로 나타나는데 물질을 서로 통용한 것과 성만찬의 참여에서 드러난다. 초대교회는 물질적으로 어려움을 당하는 성도들이 있으면 자신의 재산을 공동체에 내놓아서, 서로 통용하게끔 했다. 또한 코이노니아는 초대교회의 성만찬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데 성만찬에 참여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함께 참여하는 것이요, 그 열매로서 참여자 자신들 사이의 영혼과 마음의 교제를 이루는 것으로 보았다. 

그러나 코이노니아의 개념은 단순히 교회공동체 내에만 국한될 수 없다. 그리스도의 명령이 항상 이웃사랑이라는 수평적인 차원을 포함하듯이, 그리스도를 향한 결단은 곧 세상을 향한 결단이며, 새로워질 인류를 향한 결단이며, 더 나아가 하나님의 창조역사와 생명공동체를 향한 결단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코이노니아는 넓게는 창조의 하나님과 성령 안에서 모든 피조물들과 함께 이루는 교제를 의미한다.

본질에 충실한 교회는 이렇듯 케리그마, 디아코니아, 코이노니아가 함께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교회됨의 사명을 온전히 감당할 수 있고 건강한 교회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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