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말로 만드는 새로운 세상

[ NGO칼럼 ]

배성훈 목사
2017년 05월 30일(화) 14:39

올해 겨울 '엄지장갑'이 히트 상품에 올랐다. 엄지장갑이라고 하면 '엄지손가락만 따뜻하게 하는 장갑인가?', '나머지 손은 스마트폰을 사용해야하니 엄지만 덮는 장갑이 새로 나왔나?'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 엄지장갑은 누구나 다 아는 장갑이다. 부르는 이름(말)만 바뀌었을 뿐. 얼마 전까지는 같은 모양의 장갑을 '벙어리장갑'이라고 불렀다(지금도 많은 곳에선 여전히 벙어리장갑이다.)

전자상거래 회사인 이베이 코리아(ebay korea)에서 사회공헌 담당 매니저로 일하는 원종건 씨와 그의 프로젝트팀 '설리번'이 올 겨울 진행한 첫 번째 일이 '벙어리장갑'을 '엄지장갑'으로 바꾸는 캠페인을 벌이는 것이었다.

원종건 씨가 한 일간지에서 한 말이다. "농아인과 가족들로부터 고맙다는 말을 많이 들었어요. 엄지장갑이란 단어가 아직 사전에 등재되진 않았지만 벙어리장갑이 장애인 차별적 단어라는 인식이 확산된 것만으로도 어느 정도 성공했다고 생각합니다."

'벙어리장갑'은 지금도 곳곳에서 쓰이는 말이다. 그 중에 이 장갑을 바라보는 농아인들은 어떤 마음일지에 대해 생각해 본 사람이 있을까? '벙어리'가 아닌 '농아인'으로 바뀌는데 수십 년의 세월과 수많은 농아인들의 눈물이 있었을 터다.

그러나 겨울만 되면 어떤 형태의 장갑으로 인해 여전히 가슴앓이를 할 장애인들에게 새로운 말, '엄지장갑'의 출현은 새로운 세상의 출발점이다. 새로운 말은 새로운 세상을 여는 열쇠이다. 이 열쇠를 통해 들어가는 세상은 어떤 장애를 가지고 있다고 차별받지 않는 새로운 곳이며, 이곳에서 모든 장애인은 '장애'가 아닌 그 '존재'자체로 살아난다.

'엄지장갑'이라는 새로운 말을 통해 사람을 살리는 것, 이것이 학문(學問)으로서 사회복지의 사명이다. 학문을 한다는 것은 사실 언어를 새롭게 하는 것이다. 새로운 말을 통해 우리 주변의 것들을 새롭게 구성하고,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여 인간의 삶과 그 사회를 새롭게 만드는 것이야말로 학문이 추구해야할 일이다. 그 일의 가장 최전선에 있는 학문이 바로 사회복지다.
세상에 이런 학문이 있을 수 있다니! 언어를 통해 사람을 새롭게 규정하고, 정의를 새롭게 함으로 사람을 살리는 학문이 있다니! 어찌 사회복지를 사랑하지 않으리오! 이 사랑스런 학문을 택한 스스로에게 '엄지 척!'(thumb up!), 새로운 말을 통해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가는 이 땅의 모든 사회복지사들에게 '양손 엄지 척!'(two thumbs up!).


배성훈 목사
주안복지재단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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