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방관덕 목사님을 추모하며

[ 기고 ]

박송학 목사
2017년 05월 30일(화) 14:35

지난 4월 17일 서울남노회 노회장으로 방관덕 목사님을 천국으로 환송하면서 노회장 나천일 목사의 집례로 증경총회장 김창인 목사의 설교와 림인식 목사의 축도, 하관예배에는 담임목사 정동락 목사의 집례 및 설교, 필자의 축도로 마쳤다.

존경하는 방 목사님은 4월 14일 오전 10시 91세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소천하셨다. 아직도 내 마음속에 살아 계셔서 "박 목사!"라고 부르시는 것만 같다. 목사님은 큰 교회를 섬기셨음에도 넉넉한 인격과 풍성한 내면, 그리고 언제나 평안과 기쁨, 덕스러움이 흘러넘치는 분이셨다.

송학대교회 부목사로 3년 넘게 교회를 섬기며 목사님을 보필했지만, 한 번도 성도들과, 당회를 하면서 장로님들과 얼굴을 붉히는 것을 본적이 없다. 부목사들에게도 그러하셨다. 노회를 섬김에 있어서도 얼굴을 붉히며 강력하게 자기 주장을 하시는 모습을 본적이 없으며, 총회를 섬김에 있어서도 그러셨다.

오래 전 목사님은 총회를 깊게 섬기고 싶으신 마음에 부총회장 후보로 나오셨고, 그 때 목사님과 동행하며 수행할 기회가 있었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총회를 섬길 것인가 소견을 발표하실 때나, 전국 노회를 돌며 인사하실 때, 심지어 상대방 후보 지지자들을 만났을 때도 목사님의 모습은 언제나 한결 같으신 인격자셨다.

목사님과 우리 가정의 인연은 세상에서 쉽게 찾기 어려운 관계이다. 부목사인 필자를 지근의 거리에 위치한 영석교회 담임목사로 천거해 주셨다. 보내시면서 "박 목사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여기까지야"라고 말씀하셨다. 일반적으로 '목회자는 기도를 많이 해야돼. 착실히 말씀을 준비해서 설교를 해야 돼. 당회를 잘 이끌어 가야돼. 이러한 부분들은 조심해. 성도들을 그저 사랑으로 목양하도록 하게’등 여러 가지로 하실 말씀이 많으실텐데, 목사님은 필자를 믿고 오직 그 말씀만 하셨다.

목사님의 말씀을 가슴에 담고 25년 한 교회에서 열심히 목회하고 노회장으로 노회를 섬겨, 원로목사와 공로목사로 은퇴했다. 목사님은 우리 큰 딸과 아들의 입교를 비롯해서 큰딸 은숙(인도 김상수 선교사 부인), 아들 은성(동원교회 담임목사), 막내딸 은희 등 3남매의 결혼 주례를 해주셨다.

그리고 아들 박은성 목사의 위임식 축도 순서도 맡으셨다. 그러니 목사님을 떠나서는 우리 가정을 생각 할 수 없을 정도로 끌어주셨던 분, 기둥 같으신 분, 큰 나무와 같은 분이시다. 내겐 아버지와 같고 우리 자녀들에게는 할아버지시다.

목사님을 '아버지'라고 말씀 드리니 한 가지 에피소드가 생각난다. 영석교회를 담임한지 7년, 안식년이 되던 해 장신대 성지 교육원 주관으로 성지순례 프로그램이 있었다. 그런데 시내산에 정상에서 일출을 바라보며 예배를 드리고 하산 할 때 목사님은 낙타를 타고 내려 오셨는데, 낙타에서 내리면서 착지가 잘못돼 발목을 접여 큰 고생을 하셨다.

캐리어는 필자의 아내가 끌고, 서정운 전 총장님과 필자는 목사님을 부축했다. 젊은 목사들이 "한 번 부목사는 영원한 부목사!"라고 놀려댔다. 젊은 목사들에게 "부목사가 아닌 아들이야"라는 말로 마음의 표현을 했다. 목사님은 내게 아버지셨다.

존경하는 목사님은 여러 신학대학교에서 설교학을 가르치셨으며, 송학대교회에서 30년간 목회하시면서 신구약 성경을 주해설교를 하시고 책으로 출간하신 학자이시며, 매사에 합리적이시며 지성과 영성으로 목회하신 따뜻한 성품의 목회자이셨다. 신앙의 자유 하나만을 찾아 사선을 넘어 월남하시어 낮에는 공사판에서 밤에는 대학에서 고학생으로 성실하게 학문을 닦으며 '가장 가치있는 삶은 영혼을 구원하는 일'임을 신앙과 목회로 몸소 보여주셨다.

요즈음 원로목사와 담임목사 간에 문제로 교회가 어려움을 겪는 것을 많이 본다. 목사님은 한국교회에 원로목사의 본을 보이신 분이시다. 30년 목회후 은퇴하신 후에는 새로운 목회자가 자리잡도록 3년을 해외에서 계시다 들어오셨으며 그 후에도 담임목사가 부르지 않으면 교회를 찾는 일이 없었다. 담임목사의 목회에 일절 관여 않으시고 교회와 멀리 떨어진 곳에서 사시며 전국 은퇴목사회 회장을 맡아 어려운 은퇴 목사님들의 형편을 살피는 일로 여생을 보내셨다.

은퇴 후에 은퇴목사가 해야할 교훈을 주신분이다. 작년에 90평생 살아오신 질곡의 시대의 삶의 현장과 목회경험, 목회철학을 '아흔의 잠언'이란 산문시집으로 남기신 시인이시기도 하시다. 공자는 일찍이 "시로 일으키고 예로 세우고 음악으로 완성한다"고 가르쳤다. 목사님의 아름답고 깊이있는 이 시는 우리와 다음시대의 가슴에 깊은 영감과 울림으로 남으실 것이다.

존경하는 목사님! 나의 아버님! 그립고 보고싶습니다! 하나님 나라에서 만나봬요. 아흔의 잠언 시중 한편을 올리고 싶지만 지면상 생략하기로 하고 추모의 글을 마친다.

박송학 목사   영석교회 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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