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신교인 한 명 없는 칼뱅의 고향

[ 땅끝에서온편지 ] 프랑스종교개혁이야기-<3> 칼뱅의 생가

이극범 목사
2017년 05월 26일(금) 18:59

우리는 흔히 장 칼뱅 하면 먼저 스위스 제네바를 떠올리게 된다. 그러나 장로교회의 창시자인 칼뱅은 프랑스 출생으로 그가 이곳에서 교육을 받아서 먼저 복음적인 신앙을 접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는 프랑스에서 종교개혁을 외치다가 파리에서 체포된 후 유배당했을 뿐 아니라 전쟁으로 말미암아 파리에서 스트라스부르그를 향하여 망명하던 중 제네바의 어느 호텔에서 피에르 비레(Pierre Viret)와 프랑스인 기욤 파렐(Guillaume farel)을 만나게 됨으로서 제네바의 종교 개혁이 성공을 거두게 된다. 기욤 파렐은 인문주의 신학자 르페브르의 제자이기도 한다.

그가 태어난 곳은 파리에서 북쪽 120킬로미터 지점인 노와용(Noyon)이라는 아름다운 농촌에서 1509년 7월 10일 출생했다. 장 칼뱅의 생가에 세워진 칼뱅의 박물관은 1983년에서야 노와용(Noyon) 시와 프랑스 문화성의 도움으로 개축되었다. 종교개혁이 한창이었던 16세기 중반에 칼뱅은 프랑스 정부와 가톨릭으로부터 추방을 받은뒤 430년만에 그것도 문화 관광 차원에서 정부로 부터 유적지로 인정을 받은 셈이다.

현재 노와용시에는 개신교인이 한 사람도 없다. "선지자가 고향에서는 환영을 받는자가 없다(눅 4:24)"는 주님의 말씀이 실감나게 한다. 20년 전까지만 해도 독일인 개신교 신학자의 아내인 마담 드로떼 카잘리(Drottee Casalis) 교수께서 칼뱅의 생가를 관리하며 드문 드문 찾아오는 방문객들을 반갑게 맞아주며 이 집의 역사를 이야기 해주었다. 그러나 1993년 12월에 그녀는 은퇴하고 파리로 돌아와 버렸다. 필자가 마지막 그녀를 만났을 때에, 앞으로 개신교인이 아닌 노와용 시청에서 관광을 목적으로 이 집을 관리하기 때문에 칼뱅의 생생한 역사를 듣기에 어려울 것이라며 섭섭해 했다. 그의 말대로 노와용 시청 소속인 문화부 직원인 프레드릭 파니(Fredric Panni)는 칼뱅의 생가 책임자인데 자신은 개신교인이 아니기 때문에 이 집에 대한 역사적인 이야기를 모르고 있다고 필자에게 전했다. 그럼에도 1983년 생가의 개축된 이후 쉬지 않고 칼뱅의 후예들이 이 집을 방문하고 있다. 여기에는 기독교 강요 원본과 당시 판매 되었던 면죄부를 볼 수 있다.

1988년 맨 처음 필자가 한국기독공보와 기독교 월간지, 일간지 등에 소개한 이후 2017년 현재 한국 및 유럽, 미주 외 세계세계 방방곡곡의 기독교 순례자들이 자주 방문하고 있어 감사하다.

생가 주소 : Musee Calvin et Societe des Amis du Musee Calvin 6, placee aristide Briand 60400 NOYON tel.01-4444-0359 ※휴관은 매주 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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