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스승, 제자, 순교자

[ 4인4색칼럼 ]

이정용 집사
2017년 05월 18일(목) 09:32

이정용 집사
한반도포럼 사무총장ㆍ충신교회

국가의 암흑기였던 일제강점기와 6.25전쟁때 하나님을 사랑하고 민족을 온 몸으로 사랑하신 스승과 제자가 있다. 1950년 손양원 목사님은 스승 주기철 목사에 대해 이렇게 표현했다. "나는 이 어른에게 직접 신앙 감화를 받은 사람 중 한 사람인 것을 감사합니다. 주 목사님은 경남 성경학원 선생이셨고 나는 학생이었는데 강의시간은 언제나 은혜가 넘치는 부흥회같았습니다. 그는 나에게 부탁하시되 '우리나라는 적은 나라이나 위대한 인물이 많이 날 곳이니 성자들의 전기를 많이 읽어 그런 사람 되기를 준비하라'고 하셨습니다."

손양원 목사님 역시 3개월 후인 1950년 9월 28일 공산당에게 체포돼 순교자의 길을 택하셨다. 1945년 11월 19일 북부지역 5개성의 행정기관이 설립됐을 때 주석으로 선출된 사람은 김일성이 아닌 민족 지도자 조만식 선생이었다. 그는 소련군의 주둔을 일본군의 강제 점령처럼 인식했기에 소련군으로서는 이런 태도를 용납할 수 없었다. 스탈린에게 보내는 보고서에서 소련군 소장 쉬티코프는 '조만식이 소련에 충성하지 않으며, 민족주의적 경향이 있다'고 보고하며, 막 소련에서 귀국한 김일성을 추천했다. 조만식 선생의 기본 정치노선 민주주의였으며, 자본주의에 입각한 경제제도를 채택하려 했다. 또한 교육을 통해 인민을 깨우쳐야 하고, 민족의 한을 자주독립국가로 풀어야 하며, 모든 것을 위해 종교, 언론, 집회, 결사의 자유 등이 보장돼야 한다고 생각했다. 

소련 군정의 신탁통치안에 대해 조만식 선생은 "나는 조선민주당 소속이기 때문에 반대한다. 나의 민족적 양심이 이 문제를 경솔히 다루는 것을 허락하지 않을뿐더러, 충분히 토의하기 전에는 절대 표결에 부칠 수 없다"며 단호히 거부했다. 이후 6.25전쟁이 발발하고 1950년 10월 18일 밤 평양에서 인민군이 최후 후퇴하던 때 평양형무소에서 조만식 선생을 비롯한 정치범들을 총살했다. 다음날 평양에 입성한 국군과 유엔군이 이들의 사체를 발견하고 매장했다. 그해 12월 중공군에 지원으로 평양을 탈환한 북한 지도부는 조만식 선생 등의 사체를 꺼내 '이승만 괴뢰군과 유엔군이 수많은 지도급 인사들을 죽이고 달아났다'고 거짓 선전하기도 했다. 

사람으로 태어나서 여러 번 죽는 것은 극히 힘든 일이다. 장로였던 조만식 선생은 왜 탈출의 기회가 많았음에도 북녘 땅을 버리지 못하고 그곳에서 최후를 맞았을까. 첫째는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요, 둘째는 민족을 사랑한 열정, 셋째는 당신이 청빙해 담임목사님으로 섬긴 제자 주기철목사님의 일사각오의 신앙을 져버릴 수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오는 5월 9일, 대한민국에는 새로운 대통령이 탄생할 것이다. 신앙의 양심과 민족을 향한 바른 열정과 사랑이 가득한 지도자가 선출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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