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법에서 길을 찾다 (6)교회법 세상을 극복하라

[ 특집 ]

박재윤 장로
2017년 05월 18일(목) 08:47

박재윤 장로
한국기독교화해중재원장ㆍ전 대법관ㆍ경동교회

일반 사회와 마찬가지로 교회 내에도 분쟁이 많이 발생함을 본다. 때로는 그 분쟁내용이 일간신문 종교면을 넘어 사회면의 큰 기사로 다루어져서, 일반인들의 관심을 끌기도 한다. 이러한 교회 내의 분쟁은, 일차적으로는 지교회나 그 상급 기관인 노회, 총회에 설치된 재판기관이나 화해기관을 통하여 해결될 것이 예정되어 있고 또 그것이 가장 바람직하며 원칙적인 해결 경로라 하겠다.

교회재판이라고 할 때는, 이러한 교회 내부의 분쟁에 대하여, 교회(지교회 외에 노회, 총회 등 상급기관을 포함하는, 넓은 의미의 교회) 자신이 마련하여 둔 재판기관(교회법에서는 이것을 '치리회'라고 부른다)에서 그 직무와 권한에 따라서 행하는 재판을 말한다고 할 수 있다. 교회재판을 제대로 처리하기 위해서는 재판의 실체(결론)적 정당성과 절차적 정당성의 기준이 되는, 실체법과 절차법(소송법)이 있어야 하는데, 이러한 사항을 규정하고 있는, 교단 헌법 중 '정치'편과 '권징'편 외에, 각급 치리회가 정한 규칙이나 결의, 또는 지교회가 제정한 정관 등을 통틀어 교회법(교회의 자치법규)이라고 부른다.

교회재판을 대하는 국가(구체적으로는 법원)의 자세는 어떤 것인가. 우리나라의 헌법 제20조는, "모든 국민은 종교의 자유를 가지고, 국교는 인정되지 않으며 종교와 정치는 분리된다"라는 원칙을 선언하고 있다. 그 원칙의 적용에 의하여 교회의 자치와 자율이 허용되어야 하므로, 법원은 우선, 교회재판 중 종교의 교리문제로 인하여 생긴 권징의 재판과, 교회의 순수한 내부적 지위(교인자격이나 각종 직분)의 박탈이나 정지 여부에 관한 재판에는 관여하지 않겠다는 자세를 취한다. 다만 교회의 내부적 지위에 관한 사항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어느 개인의 일반 시민으로서의 권리의무와 직결되는 사항일 경우에는, 직접 관여하여 그 타당 여부를 가리겠다는 것이 법원의 태도이다. 나아가서 이렇게 법원이 교회 일에 관여하는 경우에도, 교회의 자율권을 부정하기 위해서는, 재판의 결론이나 절차의 위법성이 단순 사소한 것이어서는 부족하고 "현저히 정의 관념에 반한다고 판단될 때"로 한정되어야 한다는 것은, 필자가 대법관 재직 마지막 해인 2006년 초에, 어느 교회의 분쟁사건에서 선언한, 확고한 판례이다.

교회재판에서 패소하거나 징계를 받은 측에서 교회법 상의 불복절차를 다 거친 뒤에, 또는 불복을 포기한 채, 국가법원으로 사건을 옮겨 가는 사례가 근래에 부쩍 늘었다. 언필칭 "…총회 재판국의 …판결이 무효임을 확인하여 달라"고 청구하면서 청구의 이유로 결론의 부당성과 절차의 위법성을 이것저것 몰아서 내세우는 것이 보통이다. 이러한 사건은 물론 지방법원 합의부에서 담당하는데, 명색이 교단의 최고법원 격인 총회재판국의 판결이, 유효라고 판단되는 경우보다는 무효라고 판단되는 경우가 더 많지 않나 생각될 정도이다. 더구나 제1심에 이어 다시 항소심, 상고심까지 가게 되니, 교회재판과 세상재판을 합쳐서 무려 6심급의 재판을 겪어야 하는 현실이, 승패 불문하고 당사자에게도 딱하고, 교회의 빛이 가리어지고 명예가 상처 받음이,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이다. 어떻게 하면 좋겠는지 소견을 적어 보려 한다.

첫째, 우리 모두 교회재판을 남용하지 말아야 한다. 교회의 동료들과 설령 사이가 나빠져서 서로 질시하고 서로 트집만 잡는 사이가 되었더라도, 거기서 그쳐야지 이를 빌미로 상대방의 사소한 잘못이나 실수를 적발하여 침소봉대하면서, 여기저기로 탄원서, 폭로문 같은 것을 보내다가 마침내 교회 재판부서에 고소를 제기하는 일은 삼가야 한다. 이런 일은 신성한 교회의 재판기관과 재판절차를 개인적으로 농단(壟斷)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국정의 농단이 큰 범죄인데, 하물며 신성한 교회를 농단함이라니 더 말하여 무엇 하겠는가. 직책의 고하를 불문하고 어지간한 분쟁은 사랑과 화해와 화평의 정신으로 정리하고 서로 용서해야지, 교회법정과 세상법정으로, 1, 2 라운드를 벌이며 접전을 벌여서는 안 된다. 정리와 용서가 안 되면 내가 물러서서 분쟁 마당인 그 교회를 떠나는 것이 마땅하고, 온 교회에 덕이 된다.

둘째, 교회법의 규정들이 전문적 검토를 거쳐 적절하고도 알기 쉬우며 합리적인 방향으로 정비될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의 수많은 개신교단 중 이 문제에 관심을 가진 교단은 이미 상당한 정도로 성과를 거두어 교회법 내용을 크게 개선하였다고 알고 있는데, 이와 반대로 아직껏 미국 선교사 전래 당시의 옛 문장과 단어와 체제로 된 교회법전을 고치지 않고 있는 교단도 있다. 비논리적이고 부정확하며, 필요한 조문은 없고 불요불급한 조문은 많이 남아있는 식의 교회법을 가지고 이루어지는 재판과정이, 마지막에 다다를 종점의 모습이야 묻지 않아도 뻔하다. 

이러한 재판 근거 규정들이 나중에 국가 법원에 제출되면 불신자가 대부분인 담당 법관들에 의하여 당혹함과 난처함(심하면 조소)의 대상으로 치부될 뿐더러, 자칫하면 의미 전달이 잘못되어 재판의 행선지가 엉뚱한 곳으로 변해 버릴 위험도 없지 않다. 개선이 시급한 일이다.

셋째, 교회재판을 담당하는 재판관들의 자질과 열성과 능력의 향상이 필요하다고 믿는다. 국가 법원의 판사들과 같지는 못하더라도, 이에 버금갈 정도의 법률지식과 재판 관여 경험을 갖추고 자신이 내린 재판의 결론의 정당성을 정확한 문장으로 서술하는 판결문을 작성할 수 있는 자질과 열성을 갖춘 분들만이 각급 교회재판기관을 구성토록 하여야 한다. 

또 재판기관의 규모는 국가 법원처럼 3인조, 많아도 5인조를 넘기면 안 된다고 믿는다. 왜냐하면 재판부가 지금처럼 일반 목사와 장로 수 십 명으로 구성된다면 그것은 재판관들의 협의나 토론이 아니라 회의의 마당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토의가 난장판이 되거나 다수의 침묵 방관과 소수의 의도적 주도에 따라 결론이 드라이브될 위험이 크다).  

혹 불가능하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으나, 각 교단에 소속된 변호사, 판사, 검사 등 인력을 과감히 활용하면 절대로 가능하리라고 생각한다. 법률가만으로 구성하기가 어렵다면 법률가와 비법률가의 혼성 연합체로 구성하거나, 아니면 법률가인 자문위원을 재판부서에 부속시켜서 실체적ㆍ절차적 법률 조언과 판결문의 감수 등의 역할을 하도록 하면 충분한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교단별로 헌법을 개정하여야만 가능한 일이겠지만, 이렇게 함으로써만, 사실판단이 잘못되거나 교회법규에 위반되는 재판이 나오는 것을 줄일 수 있고, 또 재판은 거의 다 잘 되었는데 마지막에 합당할 징계나 제재의 경중을 재는 데서 양식에 어긋나게 너무 가혹하거나 너무 허술한 결론이 나오는 사례를 막을 수 있다고 믿는다.

마지막으로, 교회재판 과정을 다 거친 후에 불만이 팽배하여 꼭 세상의 국가법정으로 가고 싶더라도, 한번 참고, 필자가 책임 맡고 있는 한국기독교화해중재원으로 와서 상의의 문을 두드려 주시기를 권하고 싶다. 공평한 입장에서 아무 비용 부담없이 사건 내용을 검토하면서 법원에 꼭 가서 2차전을 벌여야 할 사건인지, 아니면 그대로 승복하여야 할 사건인지를 조언해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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