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예배]5월 1~6일

[ 가정예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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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04월 28일(금) 17:18

월-십자가의 영성
본문 : 고전 1:18~25
찬송 : 94장

예루살렘은 최대의 관광도시지만, 안식일이면 대부분의 관공서와 가게가 문을 닫는다. 그런데 관광객은 안식일에 더 많이 몰린다. 그러다보니 관광지 인근에 주차공간이 부족하다. 최근 예루살렘시는 주차장을 더 확보했다. 관광객 확보를 통한 재정확충을 위해서다. 안식일에는 시간과 상관없이 하루주차비가 15세겔이다.
그런데 문제는 거룩한 도성 예루살렘시가 안식일에 영업을 하게 된 것이다. 유대인들이 항의했지만, 시당국은 난색을 표했고, 대법원의 판결도 이끌어냈다. 그렇지만 시민들이 계속 안식일 준수를 주창하면서 시청과 시민들 간의 충돌이 일어났다. 이런 것이 현대판 율법주의 문제다.
사도 바울도 본래 그런 부류였다. 그는 정통 유대가문에서 태어나, 정통 유대교인으로 자라났다. 그는 율법을 위해선 죽음도 불사할 각오가 되어 있었다. 그랬던 그가 한순간에 율법을 버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집중한다.
그는 심지어 이렇게 외친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한다."
도대체 그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가? 그는 한때 예수꾼들을 박해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그것을 율법준수로 여겼다. 그런데 이단의 우두머리로 규정했던 예수님이 다메섹 길에서 그를 만나주셨다. 순간 그는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완벽한 율법수행을 통해 의로워질 수 있다고 믿었는데, 오히려 죄에 깊이 잠긴 자신을 본 것이다. 더욱이 자신에게는 의를 행할 능력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그것은 밖에서 주어져야하는데,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나타난 새로운 의를 갖고 다가오시는 것이다. 결국 그는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구원을 발견했다. 예수님이 참된 구주이심을 깨달은 것이다. 그러자 그때까지 인생가치의 핵심이던 율법을 내던지고, 십자가에 집중했다.
사실 십자가는 도무지 말이 안 되는 사건이다. 어찌 하나님의 아들이 죄인들을 위해 십자가를 질 수 있느냐는 것이다. 더욱이 그가 정말 구원자라면, 엄청난 이적으로써, 능력을 드러내야하지 않는가? 어찌 하나님의 아들이 흉악한 죄인의 모습으로 십자가에 못 박혔는가? 그래서 더욱 십자가는 거리끼는 것이요, 미련한 사건이라는 것이다. 바로 여기에 걸림돌이 있다.
그렇지만 그분을 구주로 믿는 이에게는 그 십자가는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으로 다가온다. 오늘 내게 십자가는 어떤 의미인가? 눈으로만 보는 십자가, 머리로만 생각하는 십자가가 아니라, 가슴으로 받아들인 십자가만이 하나님의 구원의 통로가 된다. 주님을 사랑하는 진솔한 가슴으로 십자가를 대할 때, 나 위해 피 흘리신 그분의 거룩한 사랑을 깨닫는다. 크리스찬은 십자가의 구원을 믿고, 십자가를 증언하는 십자가의 영성으로 사는 사람이다.

오늘의 기도
늘 십자가에 집중하게 하소서. 언제나 거기서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며, 십자가의 증인으로서 살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광묵 목사
오산찬양교회


화-어린이 존경
본문 : 마 19:13~15
찬송 : 560장

인간은 세상에 태어나서 죽는 순간까지 교육을 떠나서는 살 수 없도록 창조된 존재이다. 동물들은 가르치거나 교육받지 않아도 먹고 사는 것에 별문제가 없다. 하지만 인간은 먹는 것, 말하는 것, 걷는 것, 옷 입는 것, 나아가 신앙생활도 배우지 않으면 안 되도록 지어졌다. 그런데 인간교육의 본질은 사랑과 존경에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에멀슨은 "어린이 교육은 그들을 존경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한다. 존대어를 쓰고, 장점을 말하고, 결점을 들춰내지 않아야 한다"고 말했다. 존경과 사랑이 없이는 좋은 환경이나 시설이나 제도가 보장된다고 해도 훌륭한 전인적 인간으로 키워낼 수가 없다.
어린이는 단순히 약하고 보호받아야 할 존재만이 아니라 그들의 존재 가치를 소중히 여겨 존경받아야 한다. 인류역사상 예수님만큼 어린이를 사랑하고 존경하신 분은 일찌기 없었다. 예수님은 "어린이와 같지 아니하면 하늘나라의 시민될 자격이 없다. 하늘나라는 어린이의 소유이다"라고 말씀하시고 어린이를 품에 안으시고 축복하셨다. 그렇다면 어떻게 어린이를 존경할 수 있을까?
첫째, 어린이를 하나님의 자녀로 대해주어야 한다. 예수님은 언제나 어린이를 하나님의 자녀로 이해하고 존경했다. 어린이를 존경하는 마음은 성경의 가르침이며 기독교교육의 근본이다. 헬라와 로마의 문화 속에서 어린이는 어른의 소유물처럼 마음대로 취급되고 학대당하고 노예로 팔아넘기는 시대에 예수님의 어린이 존경사상은 가히 혁명적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둘째, 어린이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여 자존감이 낮아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자존심은 환경에 따라 인간을 훌륭하게도 비천하게도 만들 수 있다. 그러므로 부모는 어린 자녀에게 음식을 먹여 체력을 길러주고, 지식을 습득하게 함으로써 지력을 길러줄 뿐만 아니라 인간 정신생활의 기본이 되는 자존심을 길러서 자존감을 높여주어야 한다.
셋째, 어린이를 믿어주고 받아주어야 한다. 어린이를 거부하는 것은 어린이의 정신영향에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온다. 예수님은 어떤 모습과 형태로 오든지 어린이를 용납해 주셨다. 지나친 아동거부는 어린이의 장래를 망치게 한다. 무슨 일을 해도 언제나 믿어주고 받아주는 부모의 사랑 속에서 자라난 어린이가 좋은 심성(품성)을 가진 희망의 거목으로 자라날 수 있다.

오늘의 기도
어린 자녀들을 저희의 소유가 아닌 하나님의 자녀로 이해하고 자존감을 높여주며 믿어주고 받아줌으로써 하나님 나라와 이 사회의 희망의 꿈나무로 키워낼 수 있도록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이청근 목사
전성교회


수-우리를 잊지 않으시는 하나님
본문 : 사 49:14~17
찬송 : 384장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가장 힘들고 고통스러운 것 중의 하나가 모든 사람들이 다 나를 잊고 나 혼자인 것 같은 느낌이 들 때이다. 이럴 때 우리는 지치고 낙심이 되어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게 된다. 그러나 세상과 사람들이 나를 버리고 잊어버린다고 해도 나를 잊지 않고 영원히 함께하시는 분이 계신다는 사실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을 거역하고 불순종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포로생활로 인하여 지치고 낙심가운데 있을 때에 하나님이 이사야를 통해 들려주신 약속과 위로의 말씀이다. 어떤 말씀을 주셨는지를 살펴보고 우리를 사랑하시고 위로하시는 하나님을 만나고 새 힘을 얻고 살아가자.
먼저 하나님은 그의 백성을 잊지 않으신다고 위로를 하신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이 당하는 고통을 크게 여기면서 이제는 하나님이 우리를 버리시고 잊으셨다고 생각하며 낙심을 하고 있었을 때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면서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고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고 하면서 택하신 백성을 잊지 않으시는 하나님을 말씀하고 있다. 그리고 하나님은 택한 백성들을 손바닥에 새길 만큼 소중히 여기시며 아껴주시는 하나님이심을 말씀하신다. 학교에 다닐 때 꼭 가지고 와야 할 것이 있거나 꼭 암송할 내용이 있으면 손바닥에 써 놓으면 잘 잊어버리지를 않는다. 그런데 우리 하나님은 손바닥에 쓸 정도가 아니라 손바닥에 새겼다고 말씀하신다. 이처럼 하나님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기억하시고 도우시는 사랑의 하나님이신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침략한 무리들을 황폐하게 만들고 특별히 포로생활가운데서도 사랑하는 하나님의 백성의 자녀들을 바벨론 땅에서 다시 고국으로 속히 돌아오게 해주시겠다고 약속하신다.
오늘 우리는 유혹과 시험, 고난과 문제가 많은 세상을 살아가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절대 잊지 않으신다. 때로는 내가 실패하고 때로는 죄의 자리에 있다고 할지라고 하나님은 나를 잊지 않으시고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이것은 바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며 하나님의 약속이다. 오늘 우리에게 힘든 일이 있는가? 해결되지 못한 인생의 문제들이 있는가? 실패하고 좌절하여 포기하고 싶은 그런 환경에 처하였는가? 오늘 하나님은 우리를 잊지 아니하신다고 하셨다. 우리를 당신의 손바닥에 새겨두시고 보호하여 주시고 우리의 자녀들까지 책임져주신다고 약속하신 이 하나님의 약속을 굳게 믿고 하나님을 더 사랑하고 감사와 확신이 넘치는 신앙을 가지고 세상에서 승리하며 살아가자.

오늘의 기도
우리를 영원히 잊지 않으시는 하나님, 감사합니다. 세상과 사람을 바라보지 말고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면서 살게 하여 주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유원식 목사
포항엘림교회


목-부모의 소원
본문 : 요삼 1:1~4
찬송 : 559장

사도 요한이 영적 자녀인 가이오에게 편지를 쓴다. 자녀를 사랑하여 '사랑하는 가이오'라고 불렀다가 한 번으로 부족하여 '참으로 사랑하는 자'라고 강조하며 부른다.
참으로 사랑하는 자녀에게 바라는 부모의 소원은 무엇일까?
첫째, 건강한 것이다. 자녀를 향한 부모님의 첫 번째 소원은 건강이다. 평소에 공부를 잘했으면 하는 소원도 있고, 화목한 관계를 가지는 좋은 성품에 대한 소원이 있으며, 꿈을 이루는 성공과 행복에 대한 소원이었어도 자녀가 조금만 아프기만 하면 모든 소원이 다 사라지고 한 가지만 남는다. 공부 못해도 되고, 꼭 성공하지 않아도 되니 씩씩하고 건강하게 되라는 것이다. 효를 강조한 우리 조상들은 '신체발부(身體髮膚)는 수지부모(受之父母)'라 했다. 내 몸은 내 것이 아니라 부모님께서 주신 것으로 곧 부모님의 것이라는 뜻이다. 효의 시작은 몸을 아프지 않게 잘 관리하여 건강하게 사는 것이라는 좋은 가르침이다. 부모님이 주신 몸을 건강하게 관리하여 부모님의 소원을 이루어드리기를 바란다.
둘째, 범사에 잘 되는 것이다. 부모님은 자녀가 잘 되는 것이 이 세상 그 무엇보다 가장 자랑스럽다. 범사에 잘 되어 부모님의 소원을 이루어드리자.
셋째, 영혼이 잘 되는 것이다. 이 세상의 부모님들은 건강하고, 범사에 잘되기만 하면 더 이상 소원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 부모님들은 다르다. 건강이 1등이 아니고, 행복이 1등이 아니고, 성공이 1등이 아니다. 그 모든 것보다 영혼이 잘 되는 것이 1등 소원이다. 왜냐하면 영혼이 잘 되면 어떤 형편에서도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형통한 인생이 되기 때문이다. 영혼이 잘 되는 길만이 이 땅에서 뿐만 아니라 영원한 나라에서도 잘 되는 은혜요. 구원이기 때문이다.
영혼이 잘 되는 길이 3~4절에 있다. "형제들이 와서 네게 있는 진리를 증언하되 네가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하니 내가 심히 기뻐하노라. 내가 내 자녀들이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함을 듣는 것보다 더 기쁜 일이 없도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영원히 변치 않는 진리로 예수님과 성경을 주셨다. 길과 진리와 생명이신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사는 자가 영혼이 잘 된다.
특별히 영혼이 잘 되려면 진리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부족하다. 진리 안에서 행하지 않으면 불쌍한 영혼의 소유자이다. 진리이신 예수님과 친밀하게 동행하는 것이 진리 안에서 행하는 것이다. 예수님과 친밀하게 동행하려면 교회를 잘 다니면서 예배를 통해 깊은 은혜를 받아야 한다.
믿음의 부모님을 기쁘게 해 드리는 것은 어렵지 않다. 교회에 잘 다니면서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영혼이 잘 되는 것임을 잊지 말자.

오늘의 기도
부모님의 간절한 소원을 이루어드리는 효자 효녀로 살아가기를 원합니다. 하늘 아버지의 효자 효녀도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조민상 목사
구미시민교회


금-불굴의 신앙
본문 : 단 3:8~23
찬송 : 545장

오늘 말씀은 주전 600년경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유대인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에 관한 이야기이다. 이들의 불굴의 신앙을 통해 내게 하시는 하나님의 음성 듣기를 소망한다.
첫째, 불굴의 신앙은 금같이 귀한 믿음이다. 8절에 왕의 총애를 받는 세 유대인을 늘 시기하고 있던 갈대아 사람들이 금 신상에 절하지 않고 왕의 칙령에 순종하지 않았다는 것으로 참소했다. 격분한 왕은 다시 한번 금 신상에 절을 하도록 회유와 위협을 했지만, 세 사람은 이구동성으로 목숨을 잃을지언정 신상에 절할 수 없다고 한다. 그들은 죄 짓는 것보다 고난을 택했고, 선한 것을 얻기 위한 명분으로 악을 행하지 않았다. 이들은 자신들을 불과 왕의 손에서 건지실 하나님의 권능에 대한 확신이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확고한 어조로 "그리 아니 하실지라도" 하나님이 보실 때 죄악된 일은 하지 않겠다고 말한다. 진정한 신뢰는 기대하고 믿은 대로의 결과가 아니어도 그것이 나의 최선임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둘째, 불굴의 신앙은 환란을 통과하는 믿음이다. 뜨거운 불속에 던져진 세 사람은 조금도 상하지 않았고, 불속에 결박되지 아니한 네 사람이 있었다. 그런데 단호한 의지로 하나님에 대한 신뢰를 고백하고 실천한 세 사람에게 주어진 것은, 기적이 아니라 불가마였다. 이처럼 시련이 계속되고 하나님은 그저 침묵하시는 듯한 상황에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바로 '하나님의 함께하심' 이다. 불속이든 물속이든 시련의 한가운데 있을 때, 바로 그곳에 하나님도 계신다! 모든 것을 잃게 되어도 그분을 변함없이 사랑할 수 있는 신앙이야 말로 성경이 수없이 말하고 있는 '그' 믿음인 것이다.
셋째, 불굴의 신앙은 거룩한 영향력을 끼치는 믿음이다. 풀무 불에서 나온 세 사람을 본 왕은, 위대하신 하나님의 권능을 목격하고 오히려 그 일관성을 칭찬하고 그것을 그들의 명예로 말한다. 왕은 이스라엘 하나님께 대한 비방을 엄금하는 칙령을 반포하여 모든 대적하던 사람의 입을 단번에 봉하였다. 이방의 왕을 사용하여 누구도 거역할 수 없는 힘으로 하나님의 거룩한 영향력은 나타났다.
시련이 닥치면 누구나 그로부터 벗어나기를 기도한다. 그러나 간절한 기도에도 불구하고 상황이 나아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럴 때 우리는 그 고난이 주는 의미를 묵상해 보아야 한다. 만약 그 고난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시는 것이라면, 우리는 이를 감당할 만한 믿음도 주실 것임을 먼저 기억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고난은 그분의 영광을 드러내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불굴의 신앙'이 우리에게 확고히 있을 때, 그분은 영광을 보여주며 우리로 하여금 주님을 체험하고 만지게 하신다. 지금 고난 받고 있다면, 주님의 영광도 보게 될 것이다.

오늘의 기도
말씀에 순종하며 변질되지 않는 신앙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체험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영숙 목사
좋은교회


토-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라
본문 : 골 3:21
찬송 : 202장

자녀들이 분노하고 마음이 낙심하는 이유는 부모들이 자녀를 어른인 자신의 눈높이로 대하기 때문이다. 어른인 부모의 눈에 아직 어린 자녀는 하나에서 열까지 만족할 것이 없다. 그러다보니 계속 잔소리를 하고 강압적으로 대하게 된다. 또 하나의 이유는 자녀의 모습 속에서 싫어하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노여워한다. 자녀는 부모로부터 지적과 책망이 하나둘씩 쌓이면 결국 노엽게 되고 마음이 낙심되며 자존감이 낮아진다.
부모가 자녀를 돌볼 때 나이가 어려도 인격적으로 대해야 한다. 자녀는 우리의 소유물이 아니라 양육을 위탁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이다. 하나님의 뜻을 헤아려 섬기는 마음으로 잘 양육해야 한다.
노엽게 한다는 말은 흥분시키거나 자극한다는 의미로, 나이가 어릴수록 쉽게 감정이 상할 수 있다. 부당한 부모의 요구나 행동은 때로 그 자녀에게 상처와 실망을 안겨 주기 때문에 이런 잘못을 하지 않도록 부모들은 경계해야 한다. 부모는 자식의 존경과 순종을 받아야 하는 권위자이기 이전에 하나님의 선물인 자녀를 주 안에서 주의 교양과 훈계로 올바로 키워야 할 의무를 부여받은 대리자이다.
낙심한다는 것은 자신과 패기를 잃어버리고 무기력하여 정신적인 성장을 못 하는 것이다. 낙심은 마음에 깊은 상처를 준다. 자녀들에게 실망을 주지 말고 모든 일에 희망을 가지고 꿈을 꿀 수 있게 해야 한다. 자존감이 높은 아이일수록 건강한 성인으로 성장할 수 있는데 자녀의 자존감은 부모의 지지와 격려, 칭찬으로 만들어진다. 부모가 자녀와 어떤 관계를 유지 하고 있는가는 그 자녀의 인격이 어떤 모습으로 형성될지, 그가 미래에 자기 자신이나 다른 사람들과 어떤 관계를 갖고 살아갈지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이 된다. 바울은 자녀가 부모로부터 평가를 제대로 받지 못하고 그 결과 자신과 그 잠재력에 대해 실망하게 될 것을 염려하고 있다.
그리스도인의 가정 모든 자녀들이 반드시 경험해야 할 중요한 것 중 하나는 그 부모로부터 즐거움과 기쁨을 경험하는 일이다. 부모로부터 격려와 지지, 칭찬을 많이 받고 자란 자녀는 순종하는 자녀로 성장한다. 불순종은 보통 사랑의 결핍으로부터 나타나는 현상이다. 바울은 부모와 자녀들이 신앙에 뿌리를 둔 상호간의 신뢰를 갖기를 원했다. 자녀는 나의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맡기신 선물이다. 부모는 하나님의 청지기로서 자녀들을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사람으로 세워지도록 도와야 한다.자녀들의 가슴에 새겨야 할 것은 노여움과 낙심이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이다.
 이 땅을 책임질 하나님의 사람으로 양육해야 한다.

오늘의기도
하나님, 내 것이 아닙니다. 잠시 맡겨두신 하나님의 선물인 자녀를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세워지게 하소서. 저희로 선한 청지기의 사명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지혜롭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양승일 목사
꿈이있는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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