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예배]4월 24~29일

[ 가정예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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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04월 20일(목) 16:58

월-복되도다
본문 : 요 20:24~29
찬송 : 170장

친구들과 함께 있지 않아서 빈 무덤을 가보지도 못하고, 주님께서 오셨을 때 뵙지도 못한 도마가 의심하는 것은 당연했다. 왜냐하면 "우리도 주와 함께 죽으러 가자"고 했던 도마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어 장사를 지낸 것을 확인하고는 깊은 회의에 빠졌기 때문이다. 어쩌면 예수님과 함께 죽지 못한 자신의 연약함에 더욱 실망했을지도 모른다. 이리저리 방황하다가 친구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갔다. 그런데 친구들이 주님을 보았다고, 주님이 부활했다고 말한다. 도마는 자신의 이성이나 시각이나 청각으로도 도저히 믿지 못하겠고, 직접 손으로 만져 보고 확인해야 믿겠다고 말한 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도마처럼 믿으려 하고 있다.

예수님은 일주일을 기다리며 도마가 믿음을 갖게 되길 바라셨다. 왜냐하면 다른 제자들은 분명히 보았으므로 확신하리라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른 제자들이 아무리 설득을 하여도 도마는 요지부동이었다. 주님이 8일 만에 도마가 있는 곳에 나타나서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라고 말씀하셨다. 모든 제자들이 있었지만 주님께서 도마를 위해서 오셨다. 가만히 본문을 읽어보면 꼭 도마 때문만은 아니다. 다른 제자들도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보고 믿기는 했으나, 그 믿음이 예수님의 부활을 외치는 증인으로 나설 수 있는 믿음은 아니었다. 연약한 믿음, 부족한 믿음으로 숨어 있을 뿐이다. 이런 제자들에게 주님께서는 다시 오셔서 평강을 선포하셨다.

예수님께서는 8일 만에 나타나셔서 도마를 야단치거나 비판하지 않으셨다. 주님께서는 도마가 원하는 방식대로 그의 의심을 풀어주신다. 예수님께서는 도마에게 그 손가락으로 넣어보라고 하신 후에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고 말씀하신다.

여기서 도마에게 믿음이 없었다기보다는 믿음이 점점 약해져 가고 있었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 것이다. 많은 분들이 종종 말한다. "예전에는 참 순수하게 믿었는데" "전에는 참 열심히 믿었는데"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믿는 자가 되라'는 '네 믿음을 보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 이렇게 해석하는 것도 깊은 의미가 있다. 참다운 믿음을 가진 사람은 그 믿음을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도마는 고백한다.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기독교는 창조주 하나님을 믿고 착한 사람이 되는 종교가 아니다. 교회 다니면서 선한 일을 하면 되는 종교가 아니다. 내 죄 때문에 하나님의 독생자이신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고, 부활하셨다는 진리를 믿는 신앙이다. 나의 옛 사람은 주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고, 나는 부활의 주님과 함께 새 사람으로 사는 삶이다. 도마의 고백은 바로 이 진리를 선포하는 말씀이다.

오늘의 기도
우리의 믿음이 약해질 때에 눈에 보이지 않지만 부활하신 주님께서 함께 하심을 언제나 기억하며 사는 복된 믿음을 갖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조민상 목사
구미시민교회


화-다윗에게 베푸신 은혜
본문 : 삼하 7:8~17
찬송 : 304장

사람이 무엇을 생각하며 사느냐는  매우 중요하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생각이 결국에는 인생을 아름답고 위대하게 만들기도 하고 , 인생을 추하고 부끄럽게도 만드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택한 자녀이기에 언제나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생각, 믿음의 생각, 좋은 생각을 하면서 살아야 한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을 누구보다 사랑했던 다윗이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려는 생각을 가지고 나단 선지자에게 이야기하였더니 그 날 밤에 하나님이 나단 선지자에게 나타나셔서 다윗에게 베푸실 은혜에 대한 약속을 기록하고 있는 말씀이다. 하나님을 생각하고 하나님을 사랑한 다윗에게 어떤 은혜를 베푸셨는지 살펴보고 우리들도 다윗이 받은 은혜를 받으면서 더 하나님을 잘 경외하는 삶을 살아가자.

먼저 하나님이 다윗에게 베푸신 은혜는 다윗의 이름을 위대하게 만들어 주겠다는 약속이다. 다윗이 비록 성전을 짓지는 못했지만 하나님을 사랑하는 다윗의 마음을 받으시고 하나님은 그의 이름을 세상에서 위대하게 존귀하게 만들어주셨다. 오늘 우리가 사는 이 땅에 돈과 권력과 명예를 따라가다가 이름들이 추하게 된 경우를 많이 볼 수 있다. 우리는 어느 자리에 있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을 전심으로 사랑하고 경외함으로 우리의 이름을 위대하게 만들어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은 다윗에게 모든 원수에게서 벗어나 평안을 주시겠다고 약속해 주셨다. 실제로 다윗에게 이루 말할 수 없는 전쟁이 있었고 원수들이 다윗의 목숨을 시시각각으로 노리고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모든 전쟁과 원수들로부터 다윗을 지켜주셨고 평생을 은혜가운데 살게 하셨다. 이 은혜는 하나님을 바라보고 의지하는 자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은혜인 것이다. 또 하나 다윗이 받은 은혜는 하나님께서 다윗의 나라를 견고하게 해 주신다는 약속이다.

오늘 성경에 세 번씩이나 견고하게 해 주겠다는 말씀이 나오는 것은 하나님이 다윗을 얼마나 기뻐하시고 귀히 여기셨는지를 알 수 있다. 사울의 왕권은 한 세대도 내려가지 못했지만 다윗의 왕권은 다윗 이후 솔로몬으로부터 시작해서 예수님에 이르기까지 영원히 이어지는 축복을 받았던 것이다. 오늘 우리는 어려운 시대일수록 하나님을 더 경외하고 하나님을 더 생각하며 살아야 한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 무엇인지, 하나님을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를 찾고 믿음으로 나갈 때 하나님은 우리의 이름을 세상에서 존귀하게 만들어 줄 것이고 우리를 모든 원수와 대적들로부터 보호해 주실 것이고 우리의 삶, 우리의 가정, 이 니라 이 민족을 견고하게 해 주실 것이다.

오늘의 기도
택한 백성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다윗의 진실하고 충성된 신앙을 본받아 우리도 은혜의 주인공이 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유원식 목사
포항엘림교회


수-여호와이레
본문 : 창 22:1~14
찬송 : 455장

여호와이레는 '여호와께서 준비하심'이란 뜻으로, 아브라함이 모리아 산에서 이삭을 번제로 드리려고 할 때, 하나님께서 이삭 대신 양을 준비해 주신 데서 붙여진 이름이다. 그 땅의 정확한 위치는 알려져 있지 않지만, 일부 전승에 의하면 솔로몬의 성전이 세워진 곳으로 알려져 있고, 일부학자들은 세겜에 있는 모레의 상수리나무 성소일 것이라고 추정하기도 한다.

오늘 말씀은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부르시고 약속하시고 25년 만에 준, 100세에 낳은 귀하고 귀한 아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모리아 산으로 가서 번제로 드리라고 명령하신다. 아브라함은 순종의 사람이었다.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서 두 사환과 아들이삭과 번제에 쓸 나무를 가지고 하나님의 지시하신 곳으로 향했다. 아브라함은 삼일 길을 가서, 산 아래 두 사환을 두고, 아들 이삭에게 번제할 나무를 지게 하고 불과 칼을 가지고 산으로 향했다. 하나님이 지시한 곳까지 오자 그곳에 단을 쌓고 나무를 벌여 놓고 아들 이삭을 결박하여 나무 위에 올리고 칼을 들어 아들을 잡으려 했다. 그때 하나님의 사자가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시기를 그 아이에게 손을 대지 말고 아무 일도 하지 말 것을 명하시고, 이어서 "네 아들 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고 말씀하시며, 수풀에 뿔이 걸려 있는 수양을 보게 하시고, 이삭을 대신하여 번제로 드렸고, 그리하여 아브라함이 그 땅 이름을 여호와 이레라 붙이게 되었다. 100세에 낳은 귀한 아들을 바치라 하여 번제를 드리기 위해 길을 간 3일은 아브라함을 원망과 불평으로 얼마든지 몰아넣을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러나 그는 참고 견뎌냈다. 그는 그 고통 속에서도 이삭 앞에서 "번제할 어린양은 하나님이 친히 준비하실 것이라"는 위대한 신앙을 고백했고,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고통의 한가운데서 고백한 그 신앙고백을 사용하셔서, 그 고백대로 역사하시고 이루어주셔서 수풀에 걸린 수양으로 제사를 드릴 수 있게 하셨던 것이다. 그리고 붙여진 이름이 '여호와 이레', '여호와께서 준비하신다'는 그의 신앙고백을, 바로 그 땅의 이름으로 남겨서, 오고 오는 세대의 사람들이 본으로 삼을 믿음의 흔적을 남기게 되었던 것이다. 하나님은 고통의 한가운데서 고백하는 말을 듣고 계시며, 또한 이삭을 제물로 받으시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아브라함의 순종과 믿음의 마음을 제물로 받기를 원하셨던 것이다.

이 사건은 아브라함을 믿음과 이성의 저울대 앞에 세우신 '하나님의 거룩한 테스트'였으며, 또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을 예표 하는 '구약의 갈보리 사건'이었다.
이렇게 믿음은 이성이 끝나는 지점에서부터 시작된다. 아브라함은 절규할 수밖에 없는 부성애를 믿음의 힘으로 억제하고, 떨리는 손길로 이삭을 재단위에 올려놓음으로써 더욱 성숙한 믿음을 소유할 수 있게 되었고, 하나님으로부터 믿음을 인정받아 믿음의 조상이 되었다.

오늘이 기도
아브라함처럼 오직 하나님만 믿고 순종하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영숙 목사
좋은교회


목-구원 이후의 삶
본문 : 엡 2:8~10
찬송 : 312장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변화하겠다는 것이다. 신앙을 갖고 있다고 한다면 구원 전과 구원 후의 변화가 있어야 한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어려움은 구원이후의 삶이다.

구원의 첫 단계는 신분의 변화다. 실제로는 의롭지 못한 데도 하나님의 은혜로 의롭다고 인정해 주셨다. 칭의(稱義)다. 구원의 두 번째 단계는 주권의 변화다. 구원의 확신을 고백할 때 교회는 세례를 베푼다. 세례의 의미는 나를 내려놓고 예수로 살겠다는 약속이고 결단이다.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며 살겠다는 계약이다. 구원 이후의 삶은 성화의 과정이다.

출애굽기를 통해서 보면 1장에서 11장까지는 구원 이전의 삶이다. 구원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애굽(세상)에 있는 이스라엘(자기)백성을 사랑하여 은혜를 베풀어주신다. 하나님의 사람(모세)을 준비시키셔서 싸움도 대신해 주시고 지키시고 보호해 주신다. 12장에서 어린양의 피로 말미암아 유월절을 지낸 후에는 14장에서 홍해(세례)를 지나게 하시고 15장부터는 광야를 지나게 하시면서 훈련을 받게 하신다. 출애굽한 이스라엘이 맨 먼저 겪는 사건은 홍해사건이다. 세례다. 애굽의 습관, 문화, 삶을 죽이고 가나안의 삶을 살겠다는 결단이다. 옛것은 벗어버리고 새로운 삶을 살겠다는 계약이고 결단이다. 홍해를 건넌 이스라엘백성들은 광야에서 훈련을 받는다. 마라(수르광야)의 쓴물 사건을 통해서 십자가를 바라보게 하고, 신광야에서는 만나를 통해서 공급자가 하나님 이심을 알게 하시고, 르비딤에서는 목마르지 않은 생수가 어디서 흘러나오는지, 대적하는 아말렉을 통해서 문제를 만났을 때 기도의 동역자를 세우는 일, 리더십에 문제가 있을 때 권한을 분담하여 동역자를 세우는 일등, 출애굽으로 구원받은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보여 주시고 있다.

구원은 출애굽기 12장에서 어린 양의 피로 해결되었다. 구원 이후의 삶이 있다. 예수님을 믿고 천국 가는 것으로 마친다면 나머지 이 땅에서의 삶이 없다. 구원은 받았으나 불행하다. 예수님을 믿고 구원 받았으면 이 땅에서 누리는 천국이 있어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를 왕 같은 제사장으로 부르셨다. 이 땅에서 살리고 섬기고 도와주는 하나님의 대행자로 세워주셨다. 믿고 구원받는 정도로 끝나서는 않된다. 모세처럼 하나님의 사람으로 또 다른 누군가를 나와 같이 세워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인류 최대의 축복이고 은혜다. 오늘 우리는 은혜 받은 이후의 삶이 있어야 한다. 오늘날 우리의 문제는 구원의 문제는 해결하였지만 구원 이후의 삶을 살아내지 못하여 세상으로부터 질타를 받고 있고 나 자신의 내부로부터도 기쁨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 구원은 죄사함이 전부가 아니다. 죄로부터 씻음 받고 난 이후의 삶에 대한 목적이 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셔서 나를 구원하시고 구원받은 나를 통해서 하나님 나라의 완성을 이루도록 하셨다.

오늘의 기도
이 땅에서 나를 부르신 목적을 깨달아 알게 하시고, 구원 이후의 삶을 살아가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양승일 목사
꿈이있는교회


금-나도 믿고 싶습니다
본문 : 요 20:24~29
찬송 : 170장

주님이 부활하신 날 저녁, 제자들은 문을 걸어 잠근 채 숨죽이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주님이 나타나셔서, 손과 옆구리의 상처들을 보이시며, 부활을 증언하셨다. 그제야 제자들은 막혔던 가슴이 확 뚫렸다. 그러나 아쉽게도 주님은 잠시 후 떠나가셨다. 그런데 하필 그때 도마가 거기 없었다. 나중에 돌아온 도마에게 동료들이 부활하신 예수님 얘기를 했다. 순간 도마는 혼자 바보가 된 느낌이었을 것이다. 또한 몹시 당황했을 것이고, 억울한 생각도 들었을 것이다. '주님은 왜 하필 그때 오셨는지!' 결국 도마 혼자만 주님의 부활을 못 믿는 사람이 됐다. 그는 "내 눈으로 그 손의 못 자국을 보고, 내 손가락을 그 옆구리에 넣어보지 않고서는 절대로 주님의 부활을 믿지 못한다"고 발끈했다. '보다', '넣다'는 말은 의지가 담긴 행동을 뜻한다. 곧 도마는 주님부활에 대해, 확실한 무엇을 요구한다. 바로 여기에 그의 깊은 고민이 담겨 있었다. '나도 당신들처럼, 주님의 부활을 믿고 싶다'는 것이다. 참으로 서글픈 고백이다. 혹시 그의 고민이 우리의 얘기는 아닐까?

하지만 그의 마음만큼은 진지하다. 주님은 그런 도마를 사랑하신다. 8일 후, 다시 오신 주님은 도마에게 말씀하신다.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그 순간 도마는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십니다"라고 고백한다. 멋진 고백이다. 요한복음에 나오는 신앙고백들 중 단연 으뜸이다. 때로는 부정직한 믿음보다 정직한 회의가 낫다. 주님께 진솔한 모습으로 나아오는 그를 주님은 사랑하신다. 주님은 그런 도마를 조용히 기다려주셨다. 우리도 주님 앞에서 진지해질 필요가 있다. 믿는 척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어쩌면 도마는 며칠간 외로운 싸움을 했을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조금씩 자신을 들여다봤을 것이다. '혹시 내가 주님을 신뢰하기보다 내 신념과 가치관에 더 매달리는 것은 아닌가? 주님 말씀보다, 내 경험과 지식에 더 집착하는 것은 아닌가?' 그러다 마침내 깨달았을 것이다. '그래 내가 아니라, 주님이로구나.' 그렇다. 신앙은 나를 부인하는 것이다. 나를 부정하고 주님만을 인정하는 전인격적인 결단이다. 그때 주님의 말씀이 들어오기 시작한다. 도마의 진솔한 고백에 주님은 한마디를 덧붙이신다. "너는 나를 봤기 때문에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이 있다." 신앙은 머리가 아니라, 가슴의 문제이다. 인간지성으로는 예수님의 부활을 믿을 수 없다. 인간의 경험 안에는 부활이 없기 때문이다. 주님을 진실하게 신뢰하는 그 마음에 부활신앙이 뿌리내리게 된다. 따지기 좋아하고, 의심이 많았던 도마! 그렇지만 그에게는 진실함이 있었다. 정직한 회의는 성숙한 믿음으로 나아가는 하나의 발판일 수 있다.

오늘의 기도
진실한 신앙의 사람으로 살게 하소서. 무엇보다 자신에게 정직하게 하시고, 주님의 부활을 확신하며, 진정한 부활의 증인으로 살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광묵 목사
오산찬양교회


토-힘 있는 삶
본문 : 시 18:1
찬송 : 93장

인생 순례의 길을 가는 사람들은 남녀노소, 빈부귀천, 너나 할 것 없이 소원을 가지고 살아간다. 부자, 명예, 권력, 지식, 인기, 자녀, 가문, 사업 등에 관한 다양한 소원을 품고 살아간다. 사람들은 소원을 성취하기 위해서 힘을 갖기를 원한다. 그런데 힘이 부족해서 소원 성취를 할 수 없어 그 꿈이 풍선처럼 터져버릴 때, 사람들은 절망의 늪으로 빠져들고 탄식과 후회의 한숨소리만이 들려지게 된다.

소원은 우리 인간들만 가지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도 소원을 가지고 계신다. 빌립보서 2장 13절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그분의 기쁘신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신다"고 말씀한다. 하나님은 그분의 기쁘신 소원(뜻)을 이루시기 위해서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비전을 주신다. 그리고 그 비전(꿈)을 이루기 위해서 힘을 공급하신다.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소원을 이룬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다윗이다. 다윗은 목동에서 시작해서 이스라엘의 가장 위대한 성군이 되었다. 하나님께서 어리고 보잘것없는 다윗에게 기름을 붓고 "너는 장차 이 나라의 성군이 될 것이다"고 꿈을 주셨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복된 약속의 꿈을 주셨으면 만사형통 해야 할텐데 온갖 어려움과 시련을 겪는다. 모함, 시기, 질투 그리고 생명의 위협을 당한다. 그러나 이러한 고난 가운데서도 다윗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꿈은 흐려지지 않았다. 오히려 고난의 먹구름이 몰려오고, 환난의 폭풍우가 휘몰아쳐도 그의 꿈은 더욱더 확실하고 선명하게 비쳐왔다.

캄캄한 밤중 일지라도 승리의 노래를 부를 수 있었다. 하나님께서 힘을 주셨기 때문이다. 고난이 오면 인간의 꿈은 흐려지거나 사라지지만, 하나님께서 주신 꿈은 흐려지거나 사라지지 않고 더욱 선명해지고 또렷해진다. 이것이 하나님의 꿈과 인간의 꿈의 차이이다.

하나님의 꿈을 품고 어려운 고난 가운데서 사망의 골짜기를 넘나드는 중에 원수의 손에서 구원을 베풀어주신 하나님께 다윗이 감사하며 드리는 신앙고백의 찬송시가 바로 본문 시편 18편이다.

"나의 힘이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힘(게브라) 즉 영원한 힘, 불가능이 없는 힘, 신실한 힘을 주시고,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꿈(비전)을 이루어 가신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아버지, 오늘 하루를 살아가는 데에도 고민과 어려움이 많습니다. 어둡고 캄캄한 인생 길에서 만나는 어떠한 역경과 고난 가운데서도 하나님께서 주시는 영원한 힘, 불가능이 없는 힘, 신실한 힘으로 승리하며 힘있는 삶을 살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세상에서 구별되는 주님의 자녀로 살게 하옵소서. 인간적인 생각과 꿈 보다 하나님이 주시는 비전을 품고 주님의 손을 잡고 그 꿈을 이루어 나가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이청근 목사
전성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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