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 목양칼럼 ]

윤석원 목사
2017년 04월 18일(화) 10:05

천지와 만물을 다 말씀으로 이루신 하나님이 그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고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로 창세기 1장은 마무리 한다. 천지와 만물이 다 하나님 보시기에 심히 좋았다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세상이다.

이 좋은 세상에 에덴동산의 청기지였던 아담과 하와가 창조주 하나님 앞에서 피조물이 가져야할 태도가 파괴된 것이다.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를 볼 때 하나님의 말씀이 우선 생각나야 할 인간이 말씀보다 자기의 생각과 판단이 우선한 것이다.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창 3:6). 하나님의 말씀은 기억하지도 않고 하나님이 보시기에 심히 좋지 않은 태도를 보인 것이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심히 좋은 태도를 보이신 분이 바로 예수님이시다.

예수님은 마 11:29에서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라고 하셨다. 이 온유와 겸손은 예수님이 우리를 향하여 온유하고 겸손하시다는 말씀이 아니다. 이 온유와 겸손은 예수님이 자신의 권위자이신 아버지 하나님을 향하여 온유하고 겸손하셔서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뜻을 다 이루시고 부활하셔서 우리의 주가 되신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의 온유와 겸손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심히 좋은 것이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심히 좋은 세상이 인간의 타락으로 말씀의 권위가 무너지고 하나님을 예배하지 않고 자신을 섬기는 세상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하나님이 보시기에 심히 좋은 세상은 예배와 말씀이 회복되는 것이다.

시편 1편은 말씀의 권위가 회복되어짐을 선포하고 있다.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시 1:2). 이런 사람이 복있는 사람이다. 시편 2편은 경배 즉 예배가 회복됨을 선포하고 있다.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섬기고 떨며 즐거워할지어다 그의 아들에게 입맞추라 그렇지 아니하면 진노하심으로 너희가 길에서 망하리니 그의 진노가 급하심이라 여호와께 피하는 모든 사람은 다 복이 있도다"(시 2:11~12). 복있는 사람 즉 여호와 보시기에 심히 좋은 사람은 바로 하나님을 경배하는 자다.

이 말씀과 경배가 회복된 것이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이다. 그 길을 걸어가신 예수님의 마음이 바로 온유와 겸손이다. 온유한 자만이 옥토가 되어 말씀의 결실을 맺는다. 경배하는 자만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다.

마가복음 14장에서 익명의 한 여자가 예수님께 나아와 순전한 나드 한 옥합을 깨뜨리고 예수님의 머리에 붓는다. 그런데 그 자리에 있던 어떤 사람들이 "화를 내어 서로 말하되 어찌하여 이 향유를 허비하는가 이 향유를 삼백 데나리온 이상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줄 수 있었겠도다 하며 그 여자를 책망하는지라"(막 14:4~5)는 말씀대로 주님께 좋은 일을 행한 여자에 대하여 화를 내고, 허비하였다고 비판하고, 여자를 책망하고 있다.

그것도 주님을 따르며 주님과 함께한 자들이 이런 좋지 못한 행태를 보이고 있다. 이 일을 예수님은 "가만 두라 너희가 어찌하여 그를 괴롭게 하느냐 그가 내게 좋은 일을 하였느니라"(막 14:6) 이 여자의 시기를 놓치지 않고 힘을 다하고 예수님의 장사를 미리 준비한 일에 대하여 예수님은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의 행한 일도 기념하리라고 하셨다. 이 여자는 예수님께 대하여 온유와 겸손으로 말씀에 순복하고 경배하는 자였다.

요한계시록 22장 9절에서 천사가 자신에게 경배하는 요한에게 말하기를 "자신은 종이니 자기를 경배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만 경배하라"고 한다. 이 모습이 하나님 보시기에 심히 좋은 모습으로 요한계시록은 결론을 맺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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