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빌라도의 비극

[ 연재 ] 김희보 목사의 사순절 칼럼 진리와 자유

김희보 목사
2017년 04월 04일(화) 13:59

"이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나는 무죄하니 너희가 당하라"(마 27:24).

본디오 빌라도는 AD 27년에서 36년까지 10년 동안 유대 총독으로 재임하였다. 만일 그가 유대 총독 재임 때 예수의 십자가 사건이 없었다면, 훗날 빌라도를 기억하는 사람은 없었을 것이고, 로마 역사책에 단 한 줄 그 이름이 적히는 것으로 끝났을 것이다. 유대인이 빌라도의 법정에 예수를 끌고 간 것은, 무능하고 우유부단한 빌라도가 사형을 선고하게 하기 위해서였다.

빌라도는 예수에게 죄가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예수를 석방하려 하였다. 더구나 빌라도의 아내는 "저 옳은 사람에게 아무 상관도 하지 마옵소서. 오늘 꿈에 내가 그 사람으로 인하여 애를 많이 태웠나이다"하고 사람을 보내어 말한 터였다. 빌라도는 "무릇 진리에 속한 자는 내 음성을 듣느니라" 하는 예수의 발언에 관심을 가지고 "진리가 무엇이냐" 하고 물었다. 그러나 대답을 들으려 하지 않았다. 여기에 빌라도의 한계가 있다.

빌라도는 예수를 재판하는 과정에서 세 번에 걸쳐 결단해야 하였고, 세 번 모두 잘못된 판결을 하였다. 첫째로 진리인 그리스도를 버리고 민중의 무리(無理)에 굴복하였다. 둘째로 죄냐 구원이냐의 결단에서, 죄인 바라바를 선택하고 구주 예수에게 사형을 선고하였다. 셋째로 가이사(권력)냐 하나님이냐 하는 양자택일에서, 빌라도는 권력에 아부하며 시대에 아첨하였다.

한편 빌라도에게 "그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릴지어다" 한 유대인의 말은 그대로 이루어졌다. AD 70년 제1차 유대전쟁으로 예루살렘은 폐허가 되었고, AD 135년에 끝난 제2차 유대전쟁의 결과 유대인은 자기들의 국토에서 영구 추방되어 '방랑아는 유대인'이 되었다. 전설에 따르면 아스베루스라는 유대인은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로 가는 예수를 저주한 죄로, 죽지도 못하고 영원히 유랑한다는 것이다. 바그너의 악극 '방랑하는 네덜란드인'은 그것을 소재로 한 것이다.

물을 가져다가 손을 씻으며 예수의 피에 대해 책임을 회피한 빌라도의 최후에 관한 기록은 없다. 전해지는 말로는 무능함 때문에 황제 칼리쿨라의 소환이 겁나서, 또는 황제 디베료에게 신을 모독한 죄를 추궁 당하는 것이 두려워 자살하였다고 한다. F. 베이컨은 수필 '진리에 관하여'의 첫머리를 이렇게 시작된다.

"빌라도는 코웃음치며 진리는 무엇인가 하고 물은 후 예수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자리를 떴다".

스위스에 있는 빌라도 산에서는 보름달(예수는 니산달 보름날 처형되었다)이 뜨는 밤이면, 빌라도의 망령이 나타나 피 묻은 손을 씻으며, 탄식하면서 밤새껏 산 속을 방황한다고 한다. 그리고 매 주일 온 세계 교회에서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하고 사도신경을 고백할 때마다, 빌라도는 지옥 불 속에서 펄쩍펄쩍 뛰며 울부짖는다는 전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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