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법에서 길을 찾다 (4)세계교회와 헌법

[ 특집 ] "法에 대한 존중ㆍ확신 필요하다"

서원모 교수
2017년 03월 08일(수) 13:55

서원모 교수
장로회신학대학교

미국장로교(PCUSA)의 헌법은 크게 신앙고백서(Book of Confessions)와 규례서(Book of Order) 등 둘로 나눠진다. 신앙고백서는 니케아 신조(381), 사도신경, 스코틀랜드 신앙고백,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제2스위스 신앙고백, 웨스터민스터신앙고백, 소요리문답, 대요리문답, 바르멘 신학선언, 1967년 신앙고백, 간추린 신앙고백서 등 11개의 신앙고백으로 이루어져 있다. 신앙고백서가 교회의 믿음을 보여준다면, 규례서는 교회정치의 원리와 실제적인 내용을 제시하는데, 현재 규례서는 장로교 정치제도의 기초, 정치형태, 예배모범, 권징조례의 네 부분으로 이루어져있다. 이는 장로교회는 헌법에 따라 다스려진다는 입헌주의의 원리를 잘 표현한다. 중요한 것은 미국장로교는 이러한 교회 헌법을 교인과 직원이 공유하는 기본 문서로 삼아, 모든 차원의 교육, 특히 임직교육과 목사고시에서 집중적으로 교육하고 이에 입각하여 교회를 운영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면 관계상 여기서는 미국장로교의 정치원리와 실제에 초점을 두어 몇 가지 논점만 짚어보겠다. 첫째 2011년 7월 미국장로교는 규례서의 정치 형태를 대폭 개편하였다. 가장 두드러진 것은 '장로교 정치제도의 기초'와 '정치 형태'를 구분하여, 먼저 교회의 선교와 사명, 신앙고백적 교회, 장로회 정치 원리를 분명하게 제시하고, 그 다음에 이 원리를 기초로 교회 운영의 세세한 내용을 규정한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장로교회의 정치원리는 대의주의, 입헌주의, 관계주의로 요약될 수 있는데, 이러한 원리에 따라 일관적으로 교회를 운영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며 교회의 사명에 충실할 수 있다는 것이 미국장로교의 확신이다. 이렇게 교회헌법에서 교회의 비전과 원리를 제시하고 그 원리를 구체적으로 담아내고자 노력하는 것이 매우 인상적이다.

둘째, 규례서 첫 부분에는 '성령의 인도하심에의 개방성'이라는 항목이 있다. 여기에는 장로교 정치형태가 성경에 근거하며 참된 교회의 표지를 중심으로 세워져 있지만, 모든 면에서 교회의 주님에게 종속되어 있다고 선언하고(연속성과 변화)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개혁과 새로운 방향을 찾도록 권한다. 그리하여 장로정치는 성경에 비추어 세워졌지만, 교회에 본질적이거나 모든 기독교인에게 요구되는 것은 아니며(에큐메시티), 장로교인이 된 어느 사람이나 집단에게도 예배, 정치, 생활에의 완전한 참여와 대표성을 보장해야 한다고 강조한다(다양성 속의 일치). 그리고 다음 네 가지 영역에서의 개방성을 지니도록 권고한다: 1) 교회와 사회에서 하나님의 주권과 그리스도에 대해 보다 철저하게 순종, 보다 기쁨에 넘치는 예배를 드리도록, 2) 모든 나이, 인종, 민족, 계층의 남자와 여자들로 이루어진 공동체가 되고 새로운 인류의 가시적인 표지가 되도록; 3) 세상 안에서의 하나님의 활동에 신실하고 유용하도록 장로교의 제도적 형태의 가능성과 위험성을 끊임없이 점검하도록; 4) 세계 교회(the Church ecumenical)를 선교에 보다 효과적이 되도록 지속적으로 개혁하시는 하나님의 사역에 참여하도록 권고한다. 이는 "개혁된 교회는 항상 개혁되어야 한다"는 종교개혁의 구호를 이어받아 개혁의 방향과 비전을 제시한 조항이라고 볼 수 있다.

셋째, 미국장로교는 철저하게 목사와 장로의 동등성을 강조한다. 한국교회도 처음부터 목사와 장로와 집사의 3중직이 아니라 장로(목사와 치리장로)와 집사라는 2중직을 장로정치의 원리로 삼았다. 이는 교회 안의 직제는 직무와 기능의 차이일 뿐이라는 종교개혁적 원리를 더욱 강화시켜, 말씀과 성례의 사역자인 목사와 치리와 돌봄을 담당하는 장로가 '프레스비테로스(장로)'란 명칭으로 동등하게 치리회를 구성한다는 장로정치의 원리를 뚜렷이 보여준다. 2011년에 개정된 규례서는 '사역장로'(Ruling Elder)와 '교역장로'(Teaching Elder)라는 말을 사용하고, 사역장로는 "교역장로(목사)들과 더불어 지도력을 발휘하고, 다스림과 영적 분별을 하며, 규율을 실행하며, 그들은 에큐메니칼 관계를 포함하여 전체 교회와 더불어 개체교회의 삶을 책임진다"고 규정하여 사역장로의 역할을 강조한다. 장로들이 치리회에 모일 때에는 교인들의 의사를 반영하는 것도 아니고 집단이기주의에 따라 움직이는 것도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의 뜻을 구하고 대표해야 한다. 미국장로교에선 사역장로(장로)와 교역장로(목사)의 직무와 권한이 뚜렷하게 헌법으로 규정되어 있지만, 다른 모든 면에서는 목사와 장로가 완전히 동등하게 치리회를 구성하여 교회를 운영하는 집단지도체제를 따르고 있다.

넷째, 미국장로교는 대의정치를 실현하기 위해 각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당회와 교회 직원이 가능하면 성, 나이, 지역, 신념에서 교인 전체의 구성과 일치되도록 하는 것이 미국장로교의 정치 이념이다. 또한 교인뿐만 아니라 교회 직원과 모든 의사결정기구에 여성, 장애자, 출신 지역, 신념, 나이 등 다양한 사람이 참여할 수 있도록 노력한다. 이를 위해 미국장로교는 사역장로와 집사에 시무연한 임기제를 두어 3년을 임기로 하고 6년 이상을 연속으로 시무하지 못하도록 규정한다. 동시에 시무를 중지하더라도 안수 사역의 책임은 지속된다고 밝힌다. 또한 대표위원회를 두어 치리회가 다양하고 포괄적인 교인들의 참여를 보장하도록 하고, 공천위원회는 대표위원회의 조언을 받아 다양한 집단에서 후보자를 공천할 수 있도록 한다. 

다섯째, 미국장로교는 개체교회 차원에서는 제직회가 없고 공동의회를 중심으로 운영된다. 대의정치가 원활하게 운영되기 위해서는 공동의회가 제대로 작동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선 공동의회는 유명무실하고 제직회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서리집사까지도 포함하는 제직회는 한국 교회의 독특한 제도인데, 장로회 정치 이념과 한국 교회의 현실 사이에 고민이 필요한 듯하다. 미국장로교에서 공동의회는 1) 장로, 집사, 재단이사를 선출하는 일, 2) 목사(담임목사, 동사목사, 부목사)를 청빙하는 일, 3) 기존의 목회관계를 변경하는 일(청빙조건 검토, 목회관계 해소 요청, 해소에 동의 혹은 거절), 4) 부동산의 구매, 저당, 매각, 5) 임기제한의 면제 허용 요청 등 다섯 가지 안건을 다루도록 규정되어 있다.

공동의회가 장로, 집사를 선출하고 목사를 청빙하는 권한을 가진다는 것은 장로회 정치의 핵심 원리이다. 어느 특정 조직의 권한을 수행할 제직을 선출하는 권리는 그 단체에 속하기 때문이다. 다만 미국장로교에서는 동사목사와 부목사도 우리나라의 위임목사에 준하는 청빙절차(노회 지도, 청빙위원회, 공동의회 선거, 청빙 조건, 위임예식)를 밟도록 되어 있다. 이렇게 부목사도 위임 목회관계로(무기한과 기한 제한 두 종류가 있다) 규정하는 것이 매우 흥미롭다. 또한 목회관계 해소를 공동의회의 안건으로 보는 것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목회관계는 전교인과 목사(노회 주관)와 맺어지는 것이므로, 목회관계 해소에 대한 의결도 공동의회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도 미국장로교처럼 교회 헌법과 규례서가 단지 형식적인 요건이 아니라 신학적인 내용을 지니고 있으며, 교회정치는 하나님 나라의 현존을 경험할 수 있는 통로이며, 사회적으로도 성숙한 민주시민을 양성하는 훈련소가 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그 이념을 담아낼 수 있는 헌법과 규례서가 만들어, 이를 교회 현장에서 실천하고 신학교육과 교회교육에 적극 활용한다면, 교회를 갱신하고 갈등과 분쟁을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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