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자들의 외침

[ 논단 ]

오현선 교수
2017년 03월 08일(수) 12:01

오현선 교수
호남신학대학교

계속되고 있는 촛불정국은 대한민국 대다수 국민의 개혁의지가 그 어느 때보다 간절하게 드러나고 있는 현장이어서 한동안 지속적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여겨진다. 하루를 성실하게 살아도 일용할 양식을 얻을 수 없는 사람들은 자신의 성실함을 오히려 부족하다고 탓하며 묵묵한 노동의 새벽을 열어가고 있었다. 또한 비록 자신이 가진 수저가 결정돼 있었지만, 열정으로 극복할 수 있다는 희망고문을 달게 받아 들인 사람들은 우리의 친구, 부모, 또한 우리 각자의 모습이기도 했다. 각자 가진 달란트가 달라도 작은 일에 충실하면 주인의 잔치자리에 초대될 수 있다는 말씀(마 25장)은 운명 같은 차별을 이겨 낼 강력한 강단의 메시지가 되었다. 

하지만 지난해부터 드러난 특권 집단의 국정농단 사태는 간혹 우리의 내면을 뚫고 나와 '언제까지 견뎌야 하는 것인가' '희망은 있는 것일까'라는 의혹이 불경한 것이 아니었음을 깨닫게 했다. 오히려 다수의 시민들이, 성도들이 막연하게 참고 기다리며 가졌던 한계 없는 인내와 고문 같은 희망을 내려놓고 개혁의지를 두 손에 모아 촛불로 광장에 서게 됐다. 광장의 촛불은 권력을 사유화한 집단을 수치스럽게 만들 것이며, 역사는 작은 자를 돌보지 못한 시대를 심판하고, 작은 자를 향한 임금의 뜻을 받들게 되는 교회의 개혁의지와 거룩한 입맞춤(고전 16:20)을 하게 될 것이다.

사실 마태복음 25장 달란트 이야기에 등장하는 한 달란트 받은 종은 목숨을 걸고 주인의 악행을 비판한 충성된 종으로 이해돼야 한다. 한 달란트는 성인이 20년 간 노동해 만들 수 있는 가치의 돈이어서 다섯 달란트 맡은 이는 30억원을 받아 60억원으로 만든 것이며, 12억원을 받은 이는 24억원을 주인에게 내 민 사람이다. 또 주인은 금융자본주의 체제에서나 일어났을 부의 증식을 작은 일에 충성한 것으로 치하하며 기뻐한다. 그들이 어떤 노동과 노력을 기울여 그렇게 배나 되는 돈을 만들 수 있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이들의 충성은 주인이 말한 대로 결코 '작은 일'이 아니다. 여기에 한 달란트 받은 종은 자신의 무능을 변명한 것이 아니라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굳은 사람(마 25:24)'임을 비판하며 '본전으로 변리를 취해' 부를 증식하는 주인과 그의 체제에 대한 충성어린 비판을 하고 있다. 한 달란트 받은 종의 최후 진술은 마침내 주인의 수치스런 자백을 이끌어 냈고, 결국 돈과 황금으로 꾸며진 잔치자리 대신 바깥 어두운 곳으로 내쳐지게 된다. 부정한 주인으로부터는 쫓겨났지만 그가 남은 생을 살아간 삶의 자리는 하나님 나라가 우선적으로 임하는 세상의 가장자리(margin)였길 바란다. 

하나님 나라는 성령을 위해 심은 자가 성령으로 영생을 거두며(갈 6:6), 심은 대서 거두고 헤친 곳에서 거두는 것을 넘어, 주린 자에게 먹을 것을 주고 목마른 자에게 마시게 하며 나그네를 환대하며, 벗은 이를 입히고 병든 자를 돌보며 옥에 갇힌 자를 돌보는 자에게 상속될 나라다(마 25:35~36). 광장의 촛불이 한국의 정치와 사회를 개혁할 상징이 될 수 있다면, 루터의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이한 한국교회는 한 달란트 받은 종의 충성된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지극히 작은 자'에 대한 하나님의 우선적 사랑을 선포하고, 그 뜻을 실천하는 교회로 갱신돼야 한다. 

아직도 세월호에는 9명의 미수습자가 남아 있다. 2014년 4월 16일 대다수 한국교회의 수요예배와 주일예배의 설교는 공허했다. 세월호 참사 3주기이기도 한 오는 4월 16일은 주일이요, 부활주일이다. 맘몬과 하나님을 동시에 섬길 수 없고(마 6:24), 길을 잃어버린 양 한 마리를 버리지 않는 목자같은 한국교회로의 회복이 가능할지 우리는 또 한 번의 시험대에 오르게 될 것이다. 한국교회는 머리에 얹은 숯불을 내려놓을 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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