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뷰 '사일런스'/부재 속에 임재하는 하나님의 역설

[ 문화 ]

성현 목사
2017년 03월 07일(화) 14:29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영화 '사일런스'가 사순절을 맞이한 우리에게 찾아왔다. 17세기 포르투갈 출신 예수회 신부 '크리스토바오 페레이라'가 일본에 선교를 하기 위해 들어갔다가 선불교로 개종한 뒤 무신론을 주장하는 책을 펴냈던 충격적인 실화를 바탕으로 한 작품이다.

영화는 그의 제자인 로드리게스와 가루페가 스승의 생존과 배교사실을 확인함과 동시에 중단된 선교의 맥을 잇기 위해 일본에 밀항하며 시작된다. 그러나 이들의 기대는 곧 산산이 부서진다. 천국을 전하고자 찾아간 곳에서 지옥을 만난 것이다. 경건함은 무모함으로, 신앙의 지조는 고집스러움으로 폄하되었다.

신앙적 가치와 의미를 찾을 수 있는 공간과 시간을 찾는 것은 허영이었다. 섬김과 희생의 종이 되기 위해 왔건만, 자신보다 훨씬 위태한 처지의 사람들에게 섬김을 받게 된다.

주님의 말씀을 전하러 왔건만, 믿음 때문에 극한 고초와 죽임을 당하는 사람들에게 해줄 말이 없다. 왜 믿는 자에게 감당하지 못할 것 같은 고난을 허락하시는가? 순교의 피는 어디에서 맺히고 있는가? 불신이 주인노릇하고 있는 이 땅에서 주님은 과연 어디에 계신 것인가? 무수한 마음 속 질문에 주님은 응답하지 않으신다.  

마침내 그분의 음성이 들려왔다. 로드리게스 신부 자신이 성화가 새겨진 동판을 밟고 배교하지 않으면 다른 일본인 신자들이 최악의 고난을 더 겪어야 하는 순간에 말이다. 순교를 통해 순결한 신앙인이 되느냐? 여러 생명을 살리되 배교자가 되느냐? 하는 절체절명의 순간이 되어서야 말이다. '밟아도 좋다. 네 발의 아픔을 내가 제일 잘 알고 있다. 나는 너희에게 밟히기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났고, 너희의 아픔을 나누기 위해 십자가를 짊어진 것이다.' 그 음성을 따라 신부는 성화에 발을 올려놓았다. 그 밤, 베드로가 주님을 부인했던 그날처럼 닭도 울었다.

역전을 기대하며 끝까지 고통의 향연을 지켜본 관객들에게 승리의 싹은 너무나 작고 여리다. 진리가 이겼노라고 말하고 싶은데 그렇게 얘기해도 되는지 확신이 서지 않은 채 극장 문을 나서게 된다. 이렇게 숙연한 승리라니.

템플턴 상을 수상했던 작가 토마시 할리크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것은 그분이 너무 가까이 계시기 때문"이라며 "죽음 앞에서는 신앙이 깊은 이들이라도 분명 예외 없이 비슷한 시련을 겪게 마련이다. 어쩌면 그런 시련은 그리스도의 극심한 고통의 신비에 동참하는 것인지도 모른다"며 부재 속에 임재하시는 하나님의 역설을 말한다.

사순절이설시작됐다. 기쁨이 충만한 부활의 땅에 다다르기 위해 우리는 슬픔이 깊게 배인 사순(四旬)의 길을 걸어야 한다. 다른 길은 없다. 그것이 예수께서 걸어가신 길이고 우리가 걸어가야 할 길이다.

수많은 믿음의 선진들은 이 길에서 승리를 거뒀다. 그들이 그리스도를 위하여 죽었기 때문이다(마 16:25). 죽음의 모양은 참으로 다양하지만, 죽음의 동기는 하나다. 그리스도를 위함이다. 결국 그리스도인은 제각기 부르신 곳에서 부르심을 따라 죽는 사람들이다. 구원과 영원한 생명은 그렇게 찾아오는 것이다.

첨언하자면 영화의 원작인 엔도 슈사쿠의 소설 '침묵'도 함께 읽기를 권한다. 스크린 위로 희미하게 그려졌던 고뇌의 실체가 인과(因果)의 구체성을 띄고 다가오기 때문이다. 본래 러닝타임이 195분인데, 161분으로 편집되었다고 하니 생략된 부분만큼 이해와 공감의 밀도가 떨어진 셈이다.

'그분은 결코 침묵하고 있었던 게 아니다. 비록 그분이 침묵하고 있었다 하더라도 나의 오늘까지의 인생은 그분과 함께 있었다. 그분의 말씀을, 그분의 행위를 따르며 배우며 그리고 말하고 있었다'라며 로드리게스 신부의 독백으로 소설은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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