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터의 교육개혁 이야기<1> 개신교 교육의 아버지

[ 기독교교육이야기 ] 루터의 교육개혁 이야기

양금희 교수
2017년 03월 07일(화) 14:11
▲ '루터의 성경번역', 독일 삽화가 폴 투만(Paul Thumann)의 그림, 1872, 바르트부르크 재단.

루터를 종교개혁자요, 개신교 교회의 아버지로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만, '개신교 교육의 아버지'로 기억하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은 것 같다. 루터의 종교개혁은 단순히 신학의 개혁이나 교회의 개혁을 넘어서서 당시 정치, 사회, 문화 전반을 아우르는 개혁이었고, 그 무엇보다 '교육의 개혁'이기도 하였다.

그의 교육에 꼭 '개혁'이란 말이 붙어야 하는지 물을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개혁이란 단순히 한 두가지의 변화를 추구하는 정도가 아니라 근본적으로 패러다임 자체를 바꿀 때에 쓰이는 말이라고 볼 때, 루터가 시도했던 교육은 '개혁'이라 부르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왜냐하면 그는 단순히 교육 프로그램을 새롭게 시도하는 정도가 아니었고, 당시 사회의 교육 생태계와 지형도 자체를 변화시키고, 교육의 패러다임 자체를 변화시켰기 때문이다.

그는 수도원과 같은 중세적 교육기관을 철폐하고 부모를 '제사장'으로 선포함으로써 '교육하는 곳'으로서의 가정의 의미를 회복하였고, 또한 당시 소수의 귀족과 성직자 희망생의 전유물이었던 학교를 모든 시민들에게로 확대하면서 '공교육의 아버지'가 되었으며, 또한 모국어 성경 및 '교리문답'이라는 최초의 교회교육 교과서를 만들어 보급하였고, 어린이 청소년을 위한 모국어 예배 및 교리문답 교육을 최초로 실시함으로써 개신교 교회교육의 기반을 마련하였다.

그에게서 교육은 그의 종교개혁개념을 구체적으로 실현하는 가장 직접적인 통로 중의 하나였다. 따라서 그의 교육개혁은 그의 종교개혁 없이 생각할 수 없지만, 역으로 그의 종교개혁 또한 그의 교육개혁 없이 구체화 되기 어려웠다고 할 수 있다. 왜 그런가?

# 루터의 종교개혁은
왜 교육개혁이 될 수밖에 없었나?
마틴 루터가 종교개혁을 시작하게 된 핵심사상은 '이신칭의(以信稱義)'이다. 인간의 그 어떤 노력이나 선행, 금욕적 삶 같은 행위들이 우리를 의롭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믿음만이 우리를 의롭게 한다는 사상이다.

루터는 이 정신으로 당시 행위를 중시하고, 면죄부로 구원장사를 하였던 로마가톨릭교회의 잘못을 지적하면서 종교개혁을 단행하였다. 돈으로 구원을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이 은혜로 주시는 믿음으로 우리는 의롭다함을 얻게된다는 이신칭의 사상, 즉 '오직 믿음으로(sola fide)' 사상은 루터의 종교개혁의 가장 핵심적인 신학적 기반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이신칭의' 개념은 구원이 인간의 노력으로부터가 아니라 믿음으로부터 오는 것임을 강조하는 것으로써 어찌보면 인간의 노력이 수반되는 '교육'과는 오히려 상반되는 입장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이 '이신칭의' 개념이 바로 개신교 교육의 방향을 제시하고, 교육의 개혁을 가져오는 역할을 하였다. 왜냐하면 '믿음'을 중시하는 순간, '무엇을 믿는지', 즉 '믿음의 내용'이 중요해 지게 되고, 믿음의 내용을 바르게 알도록 하는 '교육'이 중요해지기 때문이다.

종교개혁 당시 로마가톨릭 교회에서는 교회에 소속되어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구원의 조건이 되었고, 굳이 성도들이 무엇을 믿는지 정확히 알아야 할 필요가 없었다. 그것을 아는 것은 교회의 몫이었기에, 성도들은 성경을 굳이 알 필요도 없었다. 그래서 종교개혁 당시에는 평신도들이 성경을 소유하는 것조차 금지되어 있었다.

그런데 루터가 믿음을 강조하면서, 그와 아울러 믿음의 내용인 성경을 아는 일과 그것을 가르치는 교육이 결정적으로 중요해 지게 된 것이다. 맹목적으로 아무것이나 닥치는대로 믿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무엇을 믿는지를 정확히 '알고 믿는 것'이 중요해지게 된 것이고, 그것에로의 통로인 교육이 필수불가결한 것이 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성도가 '믿음으로 의롭게 된 사람'이라면, 교육 없이 성도도 없는 것이다. 물론 배운 바의 것을 믿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에 달려 있는 것이지만(fides qua creditur), 무엇을 믿는지의 내용(fides quae creditur)을 정확히 알도록 하는 교육은 믿음을 갖는데 필수불가결한 것이 된다. 루터의 종교개혁에 그토록 핵심적인 '이신칭의' 개념은 이로써 종교개혁을 교육개혁이 되지 않으면 안 되게 한 개념이 된다.

루터가 모든 사람들이 성경을 읽을 수 있도록 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한 것, 그리고 믿음의 내용을 이해하기 쉽게 정리하여 '요리문답'을 펴내고 가르치고 보급한 것, 그리고 모든 시민들이 성경을 읽을 수 있도록 학교에 가서 글을 배우게 한 공교육의 개념을 제시한 것 등은 모두 그의 종교개혁 정신인 이신칭의와 관련이 있다. 즉 루터의 교육개혁은 근본적으로 그의 종교개혁의 정신으로부터 출발한 것이며, 또한 그의 교육개혁은 그의 종교개혁을 구체화 하는 통로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루터가 어떻게 그의 종교개혁을 교육을 통해 구체화하는지, 이번 호부터 12회에 걸쳐서 진행되는 '루터의 교육개혁 이야기' 연재를 통해 생생하게 둘러볼 수 있기를 바라며, 독자 여러분들을 이 시간여행에 초대하고 싶다.

양금희 교수   장신대 기독교교육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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