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식구 공동체

[ 땅끝에서온편지 ] <4>가족의 의미

김주용 목사
2017년 03월 03일(금) 18:54

미국 한인 이민교회에 구성원 가운데 세탁소를 운영하는 교인들이 많다. 세탁소를 하는 교인을 찾아가면, 하나같이 "이런 곳까지 힘들게 왜 오셨어요?"라며 반가운 핀잔을 준다. 자신의 일터이지만, 너무 누추해서 목사에게 보여주고 싶지는 않다는 마음인 것이다. 세탁 공장까지 돌리는 세탁소에는 에어컨을 설치할 수가 없어 여름 내내 땀을 흘리며 일을 한다. 또한 손님들의 옷에 냄새가 밸까 한국음식도 거의 먹지 못한다. 그리고 거의 대부분의 세탁소 교인들은 기관지나 호흡기에 잔병을 가지고 있다. 세탁 화학 약품과 옷의 먼지들이 30, 40년 세탁소를 운영한 사람들에게는 직업병을 갖게 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 세탁소 안에는 이민의 삶에 애환이 고스라미 담겨져 있다. 얼마 안 되는 돈을 손에 쥐고 태평양을 건너와 말도 통하지 않고 문화도 다른 미국 땅에서 그들을 유일하게 인정해 준 것이 바로 세탁소였다. 한국인 특유의 성실함과 손재주가 어떤 나라의 사람들보다도 뛰어나 미국의 많은 세탁소는 한국 이민자들의 삶터가 되었다. 실제로 수많은 이민자들이 자신들은 미국 사회에서 허드렛일 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으로 살아 왔지만, 자녀들만큼은 좋은 대학, 좋은 직장을 들어가게 하고 미국 주류 사회에서도 낙오되지 않는 한국인 2세(Korean-Amerian)로 키우게 한 곳이 바로 세탁소였다.

그런데 그 곳에 심방을 가면, 한 가지 더 특별한 것이 있다. 거의 대부분의 세탁소에는 부부가 함께 있다는 것이다. 세탁소는 가족의 작은 기업이자 일터이다. 세탁소뿐 만 아니라, 미국에서 자영업을 하는 이민자들은 거의 대부분 부부나 가족이 함께 일을 한다. 그래서 주중 성경공부를 해도, 이민자로 정착한 교인들은 거의 대부분 부부가 함께 일을 마치고 교회로 온다. 필자가 이민교회의 상황을 모르고, 부부와 가족이 함께 교회 행사와 모임에 참석 하는 모습을 보면서, '미국은 헐리웃 영화처럼 정말 가족적인 나라이구나!'라고 생각했지만, 그것은 '가족적'이라는 미국 문화 때문이 아니라, 이민의 삶에 현실 그 자체가 그렇기 때문이었다. 부부가 같이 일해야 하고, 가족이 함께 땀 흘리지 않는다면, 살 수 없는 이민자 가족의 현실 속에서 나타난 필연적 '문화'인 것이다.

그런데 이런 이민교회의 가족 중심의 문화는 도리어 공동체라는 교회의 본질을 더욱 추구하게 하고 있다. 필자의 교회는 셀가정교회로 작은 공동체 교회를 운영하고 있다. 때때로 셀모임에 초대를 받아 찾아가 보면, 진짜 가족 교회처럼 모임을 진행한다. 한국 명절에 온 가족이 집안 어른의 집에 모두 모이는 것처럼, 이민교회 구역이나 셀모임에서도 어린 아이에서부터 어르신까지 2, 3세대가 함께 모여서, 서로 식사를 나누고 교제하고 말씀을 나누는 공동체가 이뤄진다. 가족적일 수밖에 없다. 또한 교회 안에서 어떤 모임과 행사를 진행해도 '가족'을 위해서 계획하고 준비해야 한다. 음식을 준비해도, '이 반찬은 아이들이 먹기에 맵지 않을까? 이 음식은 어르신들이 먹기에 너무 딱딱하지 않을까?'를 걱정하면서, 모임을 준비한다. 말 그대로 이민교회는 가족교회이고 하나님의 식구 공동체와 다를 바가 없다.

이를 위해 시카고 기쁨의 교회는 작년까지 매월 한 번은 온 가족이 함께 예배를 드리는 '전교인 가족주일예배'를 실시했었다.(현재는 장소의 문제로 당분간 절기 때에만 가족예배로 드리기로 했다.) 영아부에서부터 아동부, 청소년부, 청년과 장년, 그리고 어르신의 세대까지 모든 교인이 함께 모여 예배를 드리는 것이다. 이민교회 자녀 세대는 영어가 편하지만, 1세대 이민자들은 한국어로 예배를 드리기 원한다. 그러나 우리는 가족이기에 함께 예배를 드리는 것이 필요하다. 그래서 언어와 세대에 상관없이 같이 예배를 드린다. 찬양도 자녀들이 좋아하는 영어 찬양을 영어로 함께 부르기도 하고, 어른들이 즐겨 부르는 한국어 찬양을 자녀들은 힘들지만 그래도 함께 따라 부르면서 예배에 들어간다. 할 수 있다면, 대표기도나 성경봉독은 한국어와 영어를 함께 할 수 있는 기도자와 봉독자를 세운다. 그러나 설교만큼은 설교자가 완전히 체화된 설교를 선포하게 하기 위해 각자의 언어로 한다. 자녀를 위한 영어권 설교자가 영어로 설교를 하면서, 때론 1세대 교인들이 은혜를 받기도 하고, 필자가 한국어권 성도들을 위해 한국말 설교를 할 때, 심심치 않게 영어권 자녀들이 함께 웃고 함께 은혜를 받는 모습을 보면서, 교회가 가족 공동체의 출발임을 다시 깨닫게 한다.

이민교회에서는 가족이 재탄생한다. 한국 본토에서 각자 바쁘게 돌아가는 삶을 살다가 이곳 이민의 땅, 미국에 와서 우리는 진짜 가족을 깨닫게 된다. 이민교회는 바로 가족들을 매듭처럼 하나 둘 엮고 짜고 묶는 역할만 하는 것이다. 그런 이민교회 목회자의 사명이 참으로 행복하다.

김주용/ 시카고 기쁨의 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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