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의 품에서 위안과 격려를 얻다

[ 문화 ] 위로하는 거산의 힘, 김영재 화백을 만나다

표현모 기자 hmpyo@pckworld.com
2017년 02월 20일(월) 17:33
   

"늘 산(山)의 감동을 안고 그림을 그려요. 내 눈으로 보지 않은 산은 그릴 수 없죠. 그 감동을 간직하기 위해 되도록 큰 산, 그리고 명산을 찾아요. 큰 산은 대가족을 넉넉하게 거느리고 있죠. 봉우리, 계곡 등 온갖 오묘한 자연의 요소들을 골고루 갖추고 있어요. 산은 바라보는 모든 이들에게 깊은 위안과 격려의 힘을 전해줍니다. 그런 면에서 예수님을 닮았죠."

산(山)의 작가 김영재 화백은 우리나라 미술계의 큰 족적을 남긴 원로화백이다. 지난 9일 한국기독교미술인협회는 영락교회 한경직목사기념관에서 '위로하는 거산(巨山)의 힘-김영재 화백'을 주제로 작가와의 만남의 시간을 가졌다.

이 행사가 열린 영락교회(이철신 목사 시무)는 김 화백이 1956년부터 출석한 영혼의 안식처다.

김영재 화백은 1929년 경북 봉화 출신으로 건국대 정치외교학과와 홍익대 대학원 회화과를 졸업하고, 경희대 요업공예과 교수, 영남대 미술대학 회화과 교수, 미술대학장을 역임했으며, 현재는 명예교수로 있다. 13회 이동훈미술상, 대한민국 미술인의 날 오늘의 미술상, 한국 구상대제전 초대작가상, 제9회 대한민국기독교미술상 등을 수상한 바 있는 명실공히 대한민국 미술계의 중요한 원로다.

우리나라의 산은 물론 전세계의 명산을 두루 다니며 그림을 그려온 그는 평생 산을 오르며 산의 곁에서 산의 마음을 얻고서야 비로소 자기만의 방식으로 산을 화폭에 담아왔다. 김 화백은 산을 만나면 무조건 작업에 착수하는 것이 아니라 산의 마음을 얻기 위해 며칠이고 몇달이고 산 안에 머물며 그 속내를 들여다 본다. 충분히 산을 이해하고 알게 되었을 때 화폭에 담음으로서 그의 작품 안에 담긴 산도 산이 지닌 내적 깊이를 닮아 보는 이들에게 위안과 격려를 주는 것이 특징이다.
그러나 산의 작가로 알려진 김 화백이지만 처음부터 산을 그린 것은 아니었다고 한다. 

"화가는 평생 똑같은 것을 그리지 않고 그리는 대상이 변합니다. 저도 6.25 전쟁 때 군인으로서 복무하며, 전쟁 직후에는 무겁고 어두운 작품을 그렸죠. 이후에는 강의 풍경을 10년 정도 그렸어요. 어느 순간 산의 매력에 빠졌죠. 1970년대 후반부터 산을 그려왔습니다."

그렇다면 거장의 작품에 신앙은 어떤 모습으로 담겨있을까? 그는 "크리스찬이 예술을 할 때 꼭 기독교적인 바탕을 두고는 있지만 거기에 기준을 둘 필요는 없고 생각한다"며 "그러나 나는 모태신앙으로 항상 내 머리 속에 하나님과 예수님이 계시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반영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김 화백의 할아버지는 1907년 봉화 척곡교회를 세운 김종숙 목사로 일제시대 독립자금을 보내는 등 드러나지 않게 독립운동에 참여한 목사다. 현재 봉화척곡교회는 문화재청에 의해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그는 할아버지 때부터 이어진 뿌리 깊은 신앙과 전쟁이 끝난 후부터 자신의 영적인 안식처가 되어준 영락교회로 인해 교회에 대한 사랑도 각별하다고 고백한다.

"세상의 산을 다니다 보면 사람들은 산에 자기가 믿는 우상이 산다고 믿으면서 살아다. 히말라야의 주민들은 자신들의 신이 거주하는 곳이 산이죠. 모든 산들은 그런 요소들을 가지고 있어다. 나는 당연히 우주의 모든 자연은 하나님의 창조물이고 하나님이 주관하는 자연이라고 생각하지요. 산은 정말 매력적인 소재예요."
김 화백은 89세의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창작을 멈추지 않고 있다. "그저께도 작품을 그렸다"는 그는 "젊었을 때보다 작품의 사이즈는 작아지고, 많이 그리지도 못하지만 주님이 힘을 허락하시는 한 붓을 놓을 생각이 없다"고 의지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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