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존 직원의 자리

[ 목양칼럼 ]

김수원 목사
2017년 02월 14일(화) 14:10

▷교회마다 항존직원이 있다. 항존직은 교회가 교회로서의 사명을 온전히 감당함에 항상(恒) 있어야(存) 할 직분이라는 뜻이다. 항존직은 주님 안에서 '교회의 필요'를 따라 세워지기에 자기의 희생과 헌신과 수고가 뒤따른다. 이러한 거룩한 영성의 모습들이 교회로 교회 되게 하고 그 사명을 온전히 이루는 원동력이 된다. 이처럼 거룩한 영성으로 무장하여 교회에 유익을 더하고 덕을 세워야 할 항존직원이 오히려 교회의 걸림돌이 되어서야 하겠는가.

교인을 흔히 십자가 군병에 비유한다. 그렇다면 항존직원은 정예화된 영적 특공대원이라 할 수 있다. 하나님 맡기신 사명을 위해서라면 때론 죽기를 각오해야 하는 막중한 자리다(행 20:24). 그래서 중직(重職)자라 부른다. 그들은 일신의 영달을 꾀하지 않고, 하나님 나라와 주의 교회, 그리고 그의 영광을 위해 헌신한다(고전 10:31). 이러한 항존직은 교회의 온전한 사명을 위해 잠시도 비울 수 없는 존귀한 사명의 자리다. 내게 일이 생기면 다른 일꾼으로라도 채워져야 하는 자리다. 항존직이 '일신(一身)의 항존'이 아닌 '직분(職分)의 항존'이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필자가 나고 자란 시골교회에서 항존직 임직예식이 열렸다. 그 자리에 임직자 가족과 친지들이 대거 참석했다. 한 임직자 친척 되는 어르신이 궁금했는지 옆 사람에게 귓속말로 묻는다. "장로장립이 뭐여?" 그러자 교회에 다니는 동기간이 친절히 설명해 준다. "음, 말하자면 승진하는 거지. 평신도 중에서는 최고의 자리로 올라가는 거라네." "아, 그려? 저 조카가 열심이더니 출세했구먼."

항존직원 됨이 승진하고 출세하는 일인가? 그렇지 않다. 하나님 나라와 주의 교회를 위해 낮아지고 섬기는 일이다. 심지어 자기희생과 헌신이 요구되는 십자가를 지는 일이다. 그래서 임직예식 가운데 축하의 꽃다발을 드리거나 받기가 민망한 자리다. 십자가 지고 골고다로 오르시는 예수님더러 축하한다며 꽃다발을 건넬 수 없는 일 아닌가. 하지만 우리는 아무렇지도 않게 주고받는다. 여전히 승진하고 출세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은 아닌가 싶어 심히 염려된다. 우리에게 있을 영광의 날은 오늘이 아니다. 이 세상에서의 사역을 온전히 감당한 후에 주님 앞에서 의의 면류관을 받을 때라고 사도 바울은 고백한다(딤후 4:7,8).

▷우리 교회에 열심히 출석하던 할머니 집사님이 계셨다. 서리집사로 은퇴하여 팔순을 바라보는 연세에도 주일예배만은 빠지는 법이 없었다. 그런데 어느 날 근심 어린 모습으로 필자를 찾아왔다. "목사님, 제 나이가 이제 여든이 됩니다. 하나님이 부르실 날도 다가오는 것 같은데, 죽기 전에 명예권사 직분이라도 받을 수 없나 해서요. 임직 헌금도 준비해뒀어요."

그 마음을 모르는 바가 아니지만, 당사자의 생각이 궁금하여 그 이유를 조심스레 여쭈어 보았다. 집사님은 자기 생각을 하나하나 꺼내 놓았다. 무엇보다 천당엘 가서도 일반의 집사로 불리는 게 부끄러울 것 같다고 했다. 평생 교회를 다녔다면서 서리집사가 뭐냐며 하나님이 책망하실 것 같다는 것이다. 너무도 진지하게 하시는 말씀이라 마음이 짠할 정도였다. 필자도 이런 상황에서는 솔직히 말씀드려야만 했다. 천당에서는 직분의 이름으로 불리지 않는다는 것과 성도라는 이름만으로도 족한 곳임을 차근차근 설명해 드렸다. 항존직분은 이 세상에서나 필요한 것이고, 저 또한 지금은 목사지만 천당엘 가면 성도나 자녀로 불릴 것이라고 말씀드렸다. 그러고는 다시 한번 여쭈었다. "집사님, 그래도 권사 직분이 필요하세요?" 그제야 집사님은 마음이 놓이셨는지 그러지 않아도 되게 생겼다며 밝은 표정으로 일어나셨다. 그런 일이 있은 지 한 달 후에 집사님은 소천 하였다. 장례 후 자녀들이 필자를 찾아와 어머님이 돌아가시기 전에 맡겨놓은 것이라며 손때 묻은 봉투를 내밀었다. 거기엔 '감사헌금 ***성도'라고 쓰여 있었다.

<후기: 나중에 재정보고를 통해 안 일이지만 집사님은 일전에 임직헌금이라며 귀띔 주셨던 그대로를 동봉하였다. 오해하지 말 것은 우리 교회는 임직 시 임직헌금이 없다. 죽기를 각오하고 십자가 지고 가려는 주의 일꾼 된 자들에게 충성(고전 4:2) 외에 헌금까지 구할 엄두가 나지 않아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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