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예배]1월 16~21일

[ 가정예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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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01월 13일(금) 16:28

월-참빛에 대한 두 가지 반응
본문 : 요 1:6~13
찬송 : 91장

생명의 참빛이신 예수님께서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다. 이것은 형용할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이요, 은혜이다. 그런데 예수님이 육신이 되어 우리를 구원하려고 오셨을 때 사람들은 어떻게 반응했을까? 크게 두 가지 반응이 나타났다.
 
첫째, 세상이 그를 영접하지 않았다.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라고 말씀하고 있다. 집에서 키운 강아지도 주인을 알아보지 못하고 짖게 되면 서운한데, 자신이 창조한 세상이 주님을 몰라보았을 때 얼마나 마음이 아프셨을까? 성경은 분명하게 예수님을 영접하는 자들에게는 모든 죄를 용서해 줄 뿐만 아니라 영생을 선물해주며 천국까지 주겠다고 약속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은 사람들이 있는데 이유가 무엇일까? 먼저는 마귀가 그들의 눈을 가려 복음의 영광의 광채를 보지 못하도록 막고 있기 때문에 참 빛이 왔음에도 영접하지 않는 것이다. 또 하나는 참 빛으로 인해서 자기의 추악한 죄가 드러날까봐 거부한다. 우리는 참 빛 되신 예수님을 아직 영접하지 않은 자들을 불쌍히 여기면서 기도하고 복음을 전해 주어야 한다.
 
둘째, 예수님을 영접한 사람들이다. 12~13절을 보면 사탄이 복음의 영광의 광채를 보지 못하도록 사람들의 눈을 가리우고 있을지라도 영적 눈을 떠서 예수님을 영접하는 사람들도 있다. 요한사도는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고 설명한다. 내 노력이 아니다. 내 결단이 아니다. 창세전부터 나를 구별하셨고, 모태에서 나오기 전에 "너는 내 아들이다 내 딸이다"라고 선택받았기에 예수님을 주님으로 영접한 것이다. 우리는 예수님을 혈과 육의 힘으로 믿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능력으로 영접한 것이다. 그 증거가 무엇인가?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고전 12:3)." 그러면 우리가 예수님을 믿기 때문에 주어진 은혜가 무엇인가? 사도요한은 12절에서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라고 선포한다.



예수님을 영접한 자는 하나님의 자녀의 신분뿐만 아니라 자녀로서 권세까지 얻는다. 많은 사람들이 기도를 많이 하고, 성경을 많이 알고, 영적으로 성숙하고 믿음이 강하면 귀신도 쫓고, 병 고치는 은사도 받고, 기도의 응답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것은 틀린 생각이다. 우리 안에 발휘되는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는 예수님을 영접한 순간 생기는 영적 권세이다.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자녀의 신분과 자녀의 권세를 가지고 담대하게 내가 살고 있는 가정에서, 직장에서,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삶을 살자.
 
오늘의 기도


하나님이 주신 자녀의 신분과 권세를 가지고 환경과 조건을 정복하고 다스리는 승리의 삶을 살겠습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성철 목사
새숲교회


화-풍성한 삶의 열매
본문 : 요 15:1~7
찬송 : 496장

이스라엘에는 세 가지 중요한 나무가 있는데. 무화과나무, 감람나무, 포도나무이다. 특히 포도나무는 성경에서 이스라엘을 상징하는 나무로 묘사되고 있다. 본문은 예수님이 참 포도나무이심을 말씀하시며, 우리에게 풍성한 삶의 열매 맺기를 기대하고 계신다. 열매가 없는 신앙생활은 죽은 믿음이며 믿음도 잘 자라지 않는다. 정신도 육체도 자라지 않는 자식이 있다면 평생 부모의 걱정거리가 되는 것처럼, 자라지 않는 우리 신앙을 보시고 하나님은 마음 아파하신다. 건강한 신앙생활을 하는 그리스도인은 반드시 그 생활 속에 열매가 있다. 풍성한 삶의 열매 맺는 신앙생활을 하려면?
 
첫째, 건강해야 한다. 건강한 나무로 가꾸어야 풍성한 열매를 기대할 수 있기 때문에 농부는 수고를 아끼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풍성한 열매를 맺으려면 농부의 수고가 필요하다. 하나님으로부터 온갖 좋은 것들이 오는 통로를 막기도 하고, 사탄의 올무가 되기도 하는 죄와 상처를 해결해야 한다. 마음과 영혼이 더러운 죄악에 병들어 있거나 상처를 그대로 두면 주님이 기뻐하시는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없다. '깨끗하게 하시느니라'(2) '깨끗하여졌으니'(3) 그러므로 이 모든 것들을 예수님의 보혈로 깨끗이 씻어 내야만 한다. 회개의 눈물로 닦아내야만 한다.
 
둘째, 예수님께 꼭 붙어 있어야 한다. 포도나무가 열매를 많이 맺으려면 가지에 꼭 붙어 있어야 한다. 마찬가지로 가지가 되는 우리는 생명의 참 포도나무이신 예수님께 꼭 붙어 있어야 한다. 예수님과 우리 사이는 절대적인 관계다.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5) 우리의 영혼이 살고 풍성한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예수님께 언제나 꼭 붙어 있어야 한다. 초대교회 성도들이 성령 충만해도 사도들의 가르침과 교회중심의 신앙생활로 불신자들에게 매력을 주고 부흥 성장의 원동력이 되었던 것처럼 교회중심, 말씀중심, 목회자 중심의 신앙생활로 열매 맺는 한 해가 되기를 힘쓰자.
 
셋째, 매일 말씀을 흡수해야 한다. 포도나무는 농부가 주는 거름을 밤낮 흡수함으로 말미암아 건강해지고 탐스러운 포도송이를 맺을 수 있다. 신앙성장은 말씀을 먹어야 성장한다. 강한 말씀도 부드러운 말씀도 잘 받아먹어야 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40년 만나를 먹었던 것처럼 매일 말씀을 듣고, 읽고, 공부, 암송, 묵상해야한다. 주님께서 주시는 은혜의 영양분인 말씀을 많이 흡수해야 한다.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7)' 말씀이 우리 속에 풍성하게 거할 때 우리는 풍성한 열매를 맺을 수가 있다. 말씀을 받고, 받은 말씀대로 순종하여 영육 간에 열매를 많이 맺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한 해가 되자.
 
오늘의 기도
 
주님께 꼭 붙어있음으로 우리의 영혼과 육체가 건강해져서 풍성한 삶의 열매를 주님께 올려 드리는 한 해가 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박해욱 목사
대구열린교회


수-성령의 도우심
본문 : 요 14:6
찬송 : 95장

나의 신앙에 도움을 주시는 분은 성령 하나님이시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나는 길과 진리요 생명이라 하신다. 말씀을 통해 성령님은 어떻게 나를 도와 주시는가? 그것들은 나와 오늘 무슨 상관이 있는가?
 
첫째는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을 알게 하신다. 우리가 돌아갈 곳은 내 아버지가 계신 하늘나라이다. 그러나 어떻게 갈 것인가? 그 곳에는 나를 사랑하시는 아버지가 계신다. 다시 말해 고향인 것이다. 본향을 찾아가는 순례자에게 믿을 수 있는 것은 본향에서 배우고 알았던 기억과 향취이다. 기억해야 하는데 죄로 인해 그 기억들을 잊어버렸다. 길도 모르고 아는 것이 없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예수님을 보내셔서 그 고향 소식을 전해주셨다. 그리고 나를 본 사람은 내 아버지를 본 것이라고 하셨다. 그 분이 길인 것은 그 분을 통해 성화의 과정을 걸어가는 길의 인도자이시기 때문이다. 곧 하나님 아버지께로 돌아가는 것이다. 성령의 도우심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우리를 위해 이 땅에 오셨다는 것을 알게 하신다.
 
둘째는 성경말씀이 곧 하나님의 말씀이며 진리라는 것이 믿어진다.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이다. 그것을 기록해 놓은 것이 성경말씀이다.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시고 우리에게 주시며 생육하고 번성하며 정복하라 하신 뜻을 알게 하신다. (창 1:28절)
 
셋째는 소망을 천국에 두게 된다. 우리들의 소망이 이 땅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 아버지가 계신 천국에 소망을 두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이 땅에 잠시 있다가 없어질 인생에 집착하지 않게 된다. 천국에 소망을 둔 사람은 어려운 일을 만나도 초연해지고 두려울 것이 없다. 사람들은 마치 이 땅에서 영원히 살 것같이 제물과 명예를 쌓으며 살아간다. 성령의 도우심은 우리의 심령이 늘 평안하기를 도우신다.
 
오늘 내가 걸어가는 길은 누구를 따라 걷고 있는지 또한 나의 신앙의 본질은 말씀 안에 있는지를 생각하고 내가 바라보는 곳은 천국이 아닌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지는 않는지를 생각해야 한다. 내가 성령의 도우심을 구한다면 이 땅에서의 성도의 길을 가는 구별된 삶 안에서 성령 하나님은 우리를 끝까지 인도해 주신다. 소망 없이 방황하며 살아가는 이웃이 있다면 오늘 만나는 이웃에게 이 복음을 전하는 것이 예수님이 우리에게 말씀해 주신 뜻을 행하는 것이다.
 
오늘의 기도
 
성령의 도우심을 날마다 사모하며, 보이지 않는 주님의 나라를 세우며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이경자 목사
우리쉼터교회


목-세상의 빛으로 살자
본문 : 마 5:14~16
찬송 : 458장

세상의 빛으로 살기 위해서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거짓을 버리고, 약속을 지킬 수 있는 삶이 되었으면 좋겠다. 2010년 고흥군 소록도에 영국의 필하모니 오케스트라 53명과 가수 조용필 씨가 방문했다. 조용필 씨는 자신의 노래를 두 곡을 부른 후 "꼭 다시 올게요"라고 약속을 했다. 그후 1년이 지난 2011년 4월 15일에 다시 찾아왔고 300여 명의 한센인들 앞에서 14곡의 노래를 열창했다고 한다. 한센인들은 한결같이 "다시 오겠다고 한 사람들은 많았지만 이렇게 빨리 약속을 지킨 사람은 조용필 씨 밖에 없다"라며 감사의 마음을 표했다. 우리는 하루에도 몇 번씩 "밥 한번 먹자, 연락드릴게요"라고 약속하지만 가볍게 여기고 그냥 지나치지나 않았는지 돌아보아야 한다. 하나님은 약속을 신실하게 지키셨다. 세상의 빛으로 살기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할까?
 
첫째로 밝게 살아야 한다. 본문 14절에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고 했다. 빛은 어둠을 물리치고 밝게 한다. 빛은 빨리, 끝없이 비춘다. 하나님은 빛이시다. 우리들도 빛으로서 살아야 한다. 예수님은 참 빛이셨으며, 빛의 근원이셨다. 우리들은 그 빛을 받아 세상에 빛을 비추는 반사체로서의 삶을 살아야 한다. "행복하기 때문에 웃는 것이 아니라 행복하기 위해서 웃어야 한다"란 말이 있다.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항상 기뻐하라." 항상 기뻐하는 것이 자신을 사랑하는 길이요, 세상을 이길 수 있는 긍정적인 에너지가 생기는 일이다. 웃음을 통해 인생이 완전히 바뀐 사람들이 많다. 웃으며 밝게 살아가시길 바란다.
 
둘째로 넓게 살아야 한다. 본문 15절에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 안 모든 사람에게 비치느니라"고 말씀한다. 여기서 말하는 말은 곡식의 양을 재는 나무 그릇으로 8.25리터를 담을 수 있는 그릇이다. 그리고 등경은 등불 받침대이다. 이스라엘은 가옥 구조상 등경은 방 하나에 한 개가 설치되어있다. 때문에 등경위에 등불은 더 멀리 비치게 하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말은 빛을 차단하는 역할을 한다. 우리는 말아래 등불처럼 되지 말고 등경위에 있는 등불처럼 되어야 한다. 우리는 우물안 개구리가 되어서는 안 된다. 더 멀리 보고, 좀더 넓게 바라다 볼 수 있어야 한다.
 
셋째로 착하게 살아야 한다. 본문 16절에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고 말씀한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착하게 살아야 한다. 착하게 살면 좀 손해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착하게 살아야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걸 원하시기 때문이다. 다윗은 미련할 정도로 하나님을 믿고 그 말씀에 순종하였기에 위대한 왕이 되었다.
 
오늘의 기도
 
우리 각자가 세상의 빛이 되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고, 이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오은탁 목사
아름다운교회


금-새 사람된 삶의 모습
본문 : 고후 5:11~19
찬송 : 508장

새 사람으로 변화가 되었다고 하면 변화된 삶을 살아가는 것이 필요하다. 새로운 피조물, 즉 새 사람 된 삶의 모습이 나타나야 한다. 무지개의 빛이 일곱 가지의 영롱한 색깔로 나오듯이 갈라디아서 5장에 나오는 성령의 열매가 아홉 가지로 나타나듯이, 고린도전서 13장(사랑장)에서 사랑의 특징이 15가지 구체적인 내용으로 설명되듯이 새것이 된 사람의 실천적인 삶의 모습이 오늘 본문에서 세 가지로 나와 있다.
 
첫째,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사는 삶이다. 오늘 본문 15절에 "그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살아 있는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그들 자신을 위해 살지 않고 오직 그들을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이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라"고 하셨다. 사람들은 자신을 위해서 산다. 자기만족, 자기 성취를 위해 열심히 살아간다. 그리스도인들도 이렇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그것은 새 사람된 삶의 모습이 아니다. 바울은 변화를 받아 자신을 위한 삶에서 온전히 돌아서서 모든 것을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살았다. 먹어도 그리스도를 위해 먹고 마셔도 그리스도를 위해 마시고 일도 하나님 나라 복음 전파를 목적으로 일했다. 삶의 방향이, 삶의 목적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둘째, 사람을 육신에 따라 판단하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기 쉽다. "내 형제들아 영광의 주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너희가 가졌으니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지 말라 만일 너희 회당에 금가락지를 끼고 아름다운 옷을 입은 사람이 들어오고 또 남루한 옷을 입은 가난한 사람이 들어올 때에 너희가 아름다운 옷을 입은 자를 눈여겨보고 말하되 여기 좋은 자리에 앉으소서 하고 또 가난한 자에게 말하되 너는 거기 서 있든지 내 발등상 아래에 앉으라 하면 너희끼리 서로 차별하며 악한 생각으로 판단하는 자가 되는 것이 아니냐"고 했다. 이것은 초대교회 회당 예배 자리에서 실제적으로 일어난 일들이다. 이런 모습이 오늘 교회 안에는 없겠는가? 모두가 유념해서 마음에 새겨야 할 말씀이다.
 
셋째,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감당해야 한다.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서 났으며 그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으니"라고 했다.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본질상 진노의 자녀요 하나님과 원수가 된 상태에서 살고 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과 원수된 담을 십자가로 소멸했다. 화해의 길은 열려 있다. 이제 이 사실을 알고 손을 잡으면 화해가 된다. 이 사실을 전하는 사명이 새 사람된 사람들에게 있다. 그래서 바울은 이 사명을 깨닫고 복음 전파에 목숨을 걸었던 것이다. 금년 한 해 동안 이 사명을 가정에서, 직장에서, 삶의 현장에서 실천하기를 바란다.
 
오늘의 기도
 
우리에게 새 사람된 은총을 베푸셔서 새 삶을 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이전의 습관을 버리고 새 사람된 삶을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정화종 목사
노인요양원 솔향


토-복을 받기 원하는가?
본문 : 행 16:30~34
찬송 : 268장

감옥에는 갇힌 자와 갇힌 자를 지키는 자가 상존한다. 상식적으로 갇힌 자가 불행하다. 자유가 없기 때문이다. 때로는 고문도 당하고 심하게는 죽임을 당하기 때문이다. 바울과 실라는 감옥 안에서 간수들이 들을 수 있을 정도로 크게 기도하고 찬송했다. 그들은 갇힌 몸이지만 자유했다. 두려움 없이 평안했다. 바울과 실라가 그럴 수 있는 이유는 그들이 예수님을 믿었기 때문이다. 
 
기도와 찬송가운데 옥문이 열렸다. 긴장하고 두려운 사람은 간수이다. 책임을 져야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옥문이 열려 도망갔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바울과 실라는 그대로 감옥 안에 있었다. 간수는 옥문이 열린 것이 두려웠지만 열린 옥문으로 도망가지 않는 이 두 사람 역시 두려움의 대상이 되었다. 자결하려고 하는 간수를 제지하며 몸을 상하게 하지 말라고 하는 죄수 바울의 목소리에 두려울 수 밖에 없었다. 도대체 무엇이 이들로 하여금 도망칠 수 있는 상황에서도 도망치지 않고 의연할 수 있었을까?
 
간수는 무서워 떨며 바울과 실라에게 질문을 했다. "선생들이여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받으리이까." 죄수에게 간수가 묻는 질문으로는 부적합하다. 어떻게 간수가 죄인에게 구원 받은 방법을 알려달라고 할 수 있는가. 여기에 참된 행복이 무엇인가의 답을 알 수 있다. 행복의 유무는 주어진 처지에 의해 정해지는 것이 아니다. 바울은 대답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바울과 실라처럼 갇힌 상황에서도 담대하고 당당할 수 있는, 갇혔으나 자유 할 수 있는, 평안할 수 있는, 구원받은 자로서의 삶을 살 수 있는 길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다.
 
조정민 목사가 쓴 '왜 예수인가?'라는 책에서 그는 이렇게 썼다. "공자에게서 인생을 배우면 착하고 훌륭하게 살 수 있다. 부처에게서 인생을 배우면 물욕을 초월하여 살 수 있다. 그런데 왜 예수인가? 예수는 우리를 죽음과 모든 수고에서 자유롭게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수를 경험하면 그 분을 따를 수 밖에 없다."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셔서 모든 죄를 사해 주시고 의의 옷을 입혀 주셔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셨으며 부활하셔서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약속하신 바로 그 예수님이 우리의 주인이심을 믿으시기 바란다. 행복은 바로 거기에 있다.
 
오늘의 기도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해 주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후 다시 살아나신 예수님을 확실하게 믿는 믿음을 주옵소서. 오직 길이요 진리요 생명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참 자유와 평화를 누리는 복된 삶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석환 목사
증평제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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