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 당선작/고훈목사 문학상/꽃피는 포도나무

[ 제17회기독신춘문예 ]

신양옥
2017년 01월 11일(수) 10:40

폭설과 한파에도
포도나무는 절기의 상속자답게 굽었던 등뼈를 치켜세운다

꽁꽁 언 나무의 손을 잡아주면
도화선을 따라 불이 타들어 가듯 마른 가지에 혈이 트이고
휘청거리던 허리에도 봄의 온기가 번진다

지난해 잘린 가지 끝에
딱딱하게 웅크린 시간의 지문은
방황의 길에서 되돌아오지 못한 탕자의 흔적인가

몸 속을 떠도는 안개가 수없이 변곡점을 편입시키듯
나를 묵인하며 시작된 고백은
발자국을 지우며 따라오는 모래바람처럼
아직 내 안에 고여 있는 어떤 무게도 내려놓지 못했다

바람만 스쳐도 땅을 움켜쥐던 포도나무가
말랑말랑하게 햇빛이 고이는 환부마다 칸칸이 창문을 낸다
따뜻한 흉터는 다시 꽃이 피는 자리
생명의 숨구멍이 햇솜처럼 부풀어 오른다

화석처럼 눌려 있던 마음자리에
환하게 꽃눈을 터뜨려 새날을 품는 포도나무
높은 하늘이 꽃의 입구에 닿아 지천으로 피어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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