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립을 넘어 비전을 향해

[ 땅끝에서온편지 ] <7>선교공동체로서의 발돋움

장황영 목사
2017년 01월 05일(목) 10:58

진정한 교회인 성도들이 어떻게 예배공동체, 선교공동체, 성령공동체가 되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교회로 세워질 수 있을까?
 
성령 하나님께서 그때 교회가 나아갈 방향으로 말씀을 주셨다. 사도행전 6장 7절 말씀이었다.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하니라." 이 말씀은 비엔나 한인 교회에 부임 초창기 3년 동안 '말씀이 왕성한 교회'라는 교회 표어로 삼았을 때 기초가 되었던 말씀이다.
 
필자는 그런 교회가 되는 제1차적인 단계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 바르게 선포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매 설교 때마다 전하는 말씀이 마지막 설교인양 최선을 다하였다. 또 예배에 처음 참여하는 사람들 가운데는 내가 하는 설교가 그 사람이 들을 수 있는 최초의 설교이자 마지막 설교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전했다. 그런 자세로 설교를 준비하고 전하니 주님이 불쌍히 여겨주시고 은혜를 주셨다. 예배가 은혜로웠고, 새로운 사람들이 교회를 찾아왔다, 그리고 처음 우리 교회에 나와 한 번 예배를 드리면 거의 대부분 등록하기를 원했다. 비록 기존에 있었던 장년 성도들은 잘 변하지 않았지만, 새로 등록한 사람들은 은혜를 받고 변화가 되었다. 특별히 청년들의 변화가 제일 빨랐다. 청년들이 변화되고, 그 숫자도 증가함에 따라 교회 분위기도 많이 바뀌게 되었다.
 
어느 날 나의 서재에서 본당을 볼 수 있는 창가에 서서 커텐 사이로 물끄러미 예배당 지붕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말씀이 속에서 올라오는 것이다. "그리스도 예수의 일로 너희 이방을 위하여 갇힌 자 된 나 바울은…" 순간 깜짝 놀랐다. 말씀이 떠오르고 뒤이어 '나 바울은'대신에 그 자리에 나의 이름이 들어갔기 때문이었다. 한 번도 그런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는데, 알고 보니 내가 갇혀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다. 정말 그랬다. 나의 생활은 한 눈팔 다른 여유가 없었다. 3년 동안 비엔나 밖을 나가보질 못했다. 가족들과 드라이브도 할 마음의 여유도 갖지 못했다. 한 주간 내내 다음 주 설교를 구상하다가 본격적으로 토요일 저녁에 주일 설교를 마무리하여 통역자에게 전달했다. 오전에 주일 예배를 드리고 오후에 청년들 성경공부를 인도했다. 그리고 수요일은 온 종일 수요기도회에 전할 말씀을 준비했고, 금요일은 금요기도회 준비로 하루를 다 보냈다. 남은 화요일과 목요일은 심방하거나 다른 교회 일들로 다른 데 신경 쓸 틈이 없었다.
 
시간이 감에 따라 성도들의 숫자도 늘고, 헌신된 자들이 일어났다. 선교공동체로서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선교사 파송 적립금을 모으기 시작했다. 말씀을 통해 선교의 중요성을 깨달은 성도들은 기쁨으로 헌금을 드렸다. 당시 유럽에선 선교사를 파송한 한인교회가 어떤 교단에서도 없었다. 그런 현실 속에서 비엔나 한인교회는 동유럽 12개국 각 나라에 선교사 12가정을 파송한다는 비전을 가졌다. 문제 많던 교회에서 자립을 넘어 그런 큰 비전을 가진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였다. 그와 동시에 오스트리아 내에서 할 수 있는 사역들을 감당하기 시작했다. 성가대의 현지교회 방문 찬양을 비롯 양로원 사역도 했지만 초기에는 주로 난민사역에 치중했다. 물질로 도움을 줄 뿐 아니라, 난민들의 모임에 성가대 혹은 찬양팀이 가서 찬양을 하고, 그들과 함께 하며 복음과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했다. 동절기에는 숙식을 제공하기도 했다. 건강한 선교공동체를 향한 꿈이 구체화되고 있었던 것이다.


장황영 목사
총회 파송 오스트리아 선교사
비엔나한인교회 시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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