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와 언론 (1)이 시대 언론의 자리

[ 교회와 언론 ] 희망 전할 때도, 책임 생각해야

심재철 교수
2017년 01월 03일(화) 15:48

본보 창간 71주년을 맞이해 이시대의 언론의 역할과 사명을 점검하는 '특별기획-교회와 언론'을 1월 특집으로 기획했다. 특히 지난해 최대 이슈로 자리한 국정농단 사태가 언론의 보도에 의해 사작되면서 언론의 중요성을 재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때에 바른 기독정론을 추구하는 한국기독공보의 나아갈 방향도 이번 기획을 통해 점검하고자 한다.  <편집자주>

심재철 교수
고려대 언론대학원장

대한민국 2016년은 촛불시위로 막을 내렸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지난 해 10월 29일 토요일부터 10번의 연속적인 주말 시위에 1000만명이 모였다고 한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은 대규모 광장 집회에서 단 한명의 참가자도 법위반으로 경찰에 연행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그만큼 평화적이었다. 그렇다면 이번 촛불 시위는 대다수 언론이 주장하듯이 '대한민국 개조'를 위한 희망일까.

촛불시위는 전형적인 미디어 이벤트란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보이지 않는 주도자가 있었으며, 막대한 비용이 들었고, 그 공이 앞으로 어디로 튈지 아무도 알 수가 없다. 미디어 이벤트의 성공과 실패는 전적으로 언론보도에 달려있다. 어떠한 프레임으로 보도되는가가 관건이다. 여기에 예외가 있을 수 없다. 성공적인 미디어 이벤트는 폭발적인 영향력을 가지며 그런 점에서 헤게모닉할 수밖에 없다.

현대 민주주의는 언론이 없이 불가능하다. SNS 시대라고 언론의 전통적인 역할이 달라지지는 않는다. 언론을 통한 여론의 광장은 더 넓어졌다. 우리의 일상생활에 즉각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며, 더 깊숙이 침투해 있다고나 할까.

그렇다면 언론의 역할은 무엇일까. 헤롤드 라스웰 예일대 법대 교수는 △주위환경의 감시와 △사회 제 세력의 연결, 그리고 △문화의 세대간 전승을 매스 미디어로 대표되는 사회 커뮤니케이션 시스템의 역할로 꼽는다. 찰스 라이트는 여기에 오락과 동원을 더해서 이를 매스 커뮤니케이션의 오대 기능이라고 부른다.

지난해 최순실(최서원으로 개명)의 국정농단의 진실도 언론에 의해 밝혀지기 시작했으며, 촛불시위와 상호작용을 일으켜 현재형으로 사회변화를 주도하고 있다는 점에서 미디어의 역할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첫째도 정확, 둘째도 정확, 셋째도 정확.

언론 보도는 무엇보다도 정확해야 한다. 저널리즘 스쿨에서는 첫째도 정확, 둘째도 정확, 셋째도 정확하게 보도하라고 가르친다. 미디어학 입문 시간에서 언론의 역할을 논의할 때 무엇보다 먼저 정확한 보도를 강조한다. 저널리즘 수업에선 어머니가 자녀를 사랑한다고 해도 왜 지금 이 순간에 어머니가 자녀를 사랑한다고 말하는 이유를 체크(check)해서 찾아내라고 한다. 기자란 대연각 호텔에서 불이 나 사람이 떨어져 죽는 순간에도 희생자의 정확한 세자 이름을 파악해야만 하는 비정한 업무를 수행해야 한다.

촛불 시위가 점화된 배경을 보면, 최순실 국정농단 이슈의 단초가 언론에 의해 드러나자 대통령은 생뚱맞게 개헌이란 이슈를 꺼내들었기 때문이다. 지난해 8월에 정부가 미르재단의 권력형 비리에 관여한 사실을 TV 조선이 첫 번째로 보도했고, 한겨레 신문이 이러한 비리의 전모를 다시 파악해 보도했고, JTBC가 최순실의 국정농단의 실체적 증거를 제시했다. 최순실 게이트의 실체는 2016년도 관훈 언론상을 함께 수상한 이 세 언론사의 보도에 의해 드러나기 시작해서 촛불시위로 연결됐다. 

하지만 최순실 게이트에 따른 촛불시위가 정확하지 못하고 감정적이며 선동적인 보도에 의해서 이루어졌다면 언론은 마땅히 그 사회적 영향력에 따르는 책임도 동시에 져야한다. 

그래서 언론은 돈의 흐름을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 미국의 역사를 바꾼 워터게이트도 닉슨 재선위원회의 부정한 돈의 흐름을 파악하는 과정에서 그 전모가 드러났다. 마찬가지로 최순실 게이트도 부정한 돈이 어디에서 어디로 흐르고 있었는지를 정확하게 파악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천만 시위자가 광장에 모인 촛불시위의 조직자는 누구이며, 그 비용은 어디에서 나왔는지도 정확하고 충분하게 파악해 보도할 필요가 있다. 여기에 혹시 잘못됐거나 정치적으로 불순한 돈의 흐름이 없었는지도 파악해야 한다. 그래야만 주위환경에 대한 철저한 감시기능을 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현대 민주사회의 구성원이라면 누구나 실증법과 사실에 입각한 언론보도를 존중해야 하며, 국민정서를 나타내는 민심에 역행해서도 안된다. 권위주의적인 군사정부를 종식시킨 1987년 국민대항쟁도 박종철 군 사망 사건의 실체를 언론이 드러내면서 시작됐다. 박 군 고문에 가담한 경찰관계자의 범인축소와 은폐조작의 전모가 들어나는 특종을 동아일보가 하자 당시 남시욱 편집국장에 따르면 "가판에서 20만부 이상의 신문이 팔렸다"고 한다. 이러한 판매부수는 당시의 민심을 나타낸다고 볼 수 있다. 

그 이후 한국 미디어 기업의 신뢰도는 지속적으로 떨어져 언론 보도를 신뢰하는 비율이 10% 정도로 까지 떨어졌다. 권위주의 시대인 1987년도에도 국민의 언론 신뢰도는 조사자의 30% 정도였다. 지난 30년간 대한민국의 언론보도가 선정적이며 에피소딕하며 뒤북을 치는 보도로 언론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그만큼 떨어졌다고 해석할 수 있다. 최순실 게이트 보도로 언론의 신뢰도는 지난해 10월 이후 40%대로 급격히 상승하고 있다. 한국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파헤쳐 대한민국을 개조할 수 있는 희망을 언론보도에서 보았기 때문일까.

그럼에도 최순실 게이트 보도 수준이 낮다는 비판도 있다. 여전히 권력형 비리의 핵심을 찌르지 못하며, 독자나 시청자의 단초적이며 지엽적인 흥미를 자극하기 위해 여성 대통령의 외모나 성형수술에 관계된 의혹을 선정적으로 제기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에피소딕한 언론보도의 단점은 탄핵을 받은 대통령의 시시비비만 가려내서 문제를 해결한다면 비정상적인 우리 사회가 다시 정상화 될 수 있다는 잘못된 희망을 독자나 시청자에게 줄 수 있다는 사실이다. 마치 썩은 사과하나만 골라낸다면 상자에 든 나머지 사과는 괜찮을 것이라는 착각이다.

우리 사회의 구조화된 비리세력은 이러한 선정적이며 에피소딕한 언론보도의 한계를 비웃으며 더욱 더 깊게 뿌리를 내릴 수 있다. 대한민국 개조의 '대장정'을 위해 쟁이들이 명심해야 할 사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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