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관점, 하나님의 관점

[ 땅끝에서온편지 ] <3> 고별 설교

장황영 목사
2016년 12월 08일(목) 13:16

필자는 군포교회 창립 70주년 기념 1호 선교사로 당초 싱가폴로 파송될 예정이었다. 지금은 은퇴하신 손중철 선교사님을 도와 효과적인 선교를 위해 초교파적으로 동남아 일대 각 나라의 선교현황을 조사하고 파악하는 선교연구위원으로 사역하기로 되어 있었다. 선교사 파송훈련을 받을 때도 필자의 선교지는 싱가폴이었다.
 
군포교회에서 마지막 고별설교를 하게 되었는데 고민이 생겼다. 주님께서 분명히 사도행전 16장의 '마게도냐인의 환상'을 통해 유럽으로 부르셨고, 성령님의 내적 음성으로도 계속 유럽이 나의 선교지임을 확신할 수 있었는데 고별설교를 해야 하는 시점까지도 선교지는 싱가폴이었기 때문이었다.
 
설교의 내용은 행 20장 24절의 말씀으로 "비록 한국보다 살기 좋은 싱가폴로 가지만 생명도 아끼지 않고 선교할 터이니 성도님들도 저희가 그렇게 할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십시오"라는 내용이었다. 설교는 그렇게 준비했지만 마음속에는 여전히 나의 선교지는 아시아가 아니라 유럽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그래서 주님께 이렇게 기도했다. "주님, 이제 주님의 부르심을 받고 싱가폴로 간다는 설교를 합니다. 설교하고 나면 이제 끝입니다. 선교지를 유럽으로 변경시켜주시려면 설교 전에 변경시켜주십시오." 설교 직전까지 하나님의 특별한 개입이 있지 않을까 기대감을 가지고 기다렸다. 그러나 설교 직전까지도 아무런 반전의 역사가 없었다. 그래서 준비한대로 설교를 했다.
 
그런데 반전의 역사는 다음 날 일어났다. 당시 선교훈련원 원장이셨던 이광순 교수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지금 총회 선교부 총무님이 김포공항에서 나를 찾는 전화를 하셨다는 것이다. 비엔나 한인교회에 문제가 생겨 해결차 방문하셨지만 해결이 안 되어 급히 다른 선교사가 필요한데 바로 나를 지목하여 찾으셨다는 것이다. 전화를 통해 이 교수님의 말씀을 듣는 순간 온몸에 전율이 왔다.
 
이런 일이 있기 1년 전 서정운 총장님께 인사차 갔었다. 그때는 아직 선교지가 정해지지 않았을 때였다. 총장님은 나를 보시자마자 어디론가 전화를 거셨다. 총회 선교부 총무님께 전화를 하신 것이다. 옆에서 들으니 독일 어느 지역 한인교회에 자리가 났는데 나를 추천하시는 것이다. 그러나 총무님은 이미 그곳에 갈 사람이 정해졌기에 변경할 수 없다고 하셨고, 총장님은 더 적합한 사람을 보내는 것이 좋지 않으냐며 계속 요청하셨다. 그런 일이 있은 날 밤 기도를 드렸다. "주님 저는 다시 주님께 헌신합니다. 아프리카도 좋고 어디든 좋습니다. 다만 어디든 선교부 총무님이 나를 필요로 해서 저를 찾게 해주세요." 그런 기도를 했었는데 정말 총무님이 김포공항에 내리시자마자 전화를 하셨던 것이다. 그것도 유럽에 있는 비엔나 한인교회로 말이다. 총무님이야말로 내게는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는 마게도냐인 역할을 하셨던 것이다.
 
그러나 바로 하루 전에 싱가폴로 하나님이 부르셨다는 설교를 했지 않은가. 그래서 이런 말씀을 드렸다. "저는 총회와 군포교회의 권위 아래 있습니다. 만약 총회 선교부와 군포교회에서 선교지 변경을 하면 그 결정에 순종하겠습니다."
 
그런데 내게 있어 정말 더 큰 문제는 하나님이 인도하셨다면 왜 고별설교 전에 미리 알려주시지 않았는가라는 문제였다. 싱가폴은 유럽과는 전혀 다른 방향에 있지 않은가.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주님의 인도를 받는 삶에 2% 부족한 무엇인가가 있었다. 그래서 이 문제를 놓고 기도하는데 환상은 아니고 생각 중에 지구본이 떠올랐다. 비행기가 싱가폴을 거쳐 유럽으로 가는데 직진으로 가는 것이다. 말하자면 싱가폴은 하나님께서 나의 순종 여부를 테스트하는 도구였다. 싱가폴 이전에는 사모아 섬으로, 중국으로 선교사 지망을 했었다. 이 역시 그때마다 나의 헌신을 테스트하는 도구들이었다. 비록 실현은 되지 않았지만 그때마다 소중한 것들을 포기하며 최선을 다했다. 돌이켜 보니 아내와 내게 주신 행 16장 6~10절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졌다.
 
나의 관점에서 볼 때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일관성 없는 것처럼 여겨졌을 뿐이지 하나님의 관점에서는 100% 일관성이 있었던 것이다.

장황영 목사/총회 파송 오스트리아 선교사/비엔나 한인교회 시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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