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예배]12월 5~10일

[ 가정예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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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2월 02일(금) 11:15

월-주님을 기다리는 자세
본문 : 벧후 3:8~13
찬송 : 104장

대림절 신앙의 핵심은 '기다림'이다. 대림절은 한자 표기로 기다릴 '대'(待)와 예수님의 재림을 뜻하는 임재할 '임'(臨)을 쓴다. 우리는 대림절을 맞이하면서 과연 주님을 맞이할 준비가 되어있는가? 예수님의 재림은 주님께서 친히 하신 약속이요, 초대교회 이후 기독교 역사 내내 믿고 지켜온 약속이다. 신앙의 선진들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도 주님의 재림을 믿고 기다려야 할 것이다. 그러면 우리가 주님을 맞이하기 위해서 기다려야 하는 믿음의 자세는 무엇일까? 
 
첫째로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믿음을 지켜야 한다. 거룩이란 세상에 살고 있지만 하나님 편에 속해 있는 구별된 삶을 의미한다. 오늘날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으로 만신창이가 된 우리의 현 상황은 그리스도인인 우리에게 과연 거룩한 지에 대한 강한 자문을 요구받는다. 거룩을 추구해야 하는 우리는 자신의 신앙을 서로 교회 내에서만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 삶의 모든 자리에서 동일하게 표현되어야만 할 것이다. 그래서 주님은 경건하라고 말씀하신다. 경건이란 모양만 갖추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것으로 그 능력을 소유하는 것이다.
 
둘째로 하나님의 날을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우리는 지금이라도 주님 앞에 설 준비가 되어 있는가? 오늘 말씀에서는 그냥 서는 정도가 아니라 간절히 사모하라고 말씀한다. 하나님의 날, 하나님 앞에 서는 영광의 그날, 우리의 구원이 완성되는 그날, 그리고 이 땅에 뿌려놓은 씨앗을 거두는 그날을 사모하면서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가? 초대교회 성도들은 환란과 핍박 속에 있었지만, 바로 그 날을 사모했기에 세상과 타협하지 않았다. 우리가 사는 날은 천년만년이 아니다. 분명히 끝이 온다. 때가 악한 이 시대에 우리는 그 어느 때 보다도 그날을 대망하며 살자.
 
셋째로 하나님의 의가 이루어지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아야 한다. 새 하늘과 새 땅은 하나님의 의가 이루어지는 곳을 말한다. 하나님의 의란 하나님의 뜻이 온전히 이루어지는 것을 말한다. 로마서 14장 17 말씀을 보면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고 하는데, 의가 가장 먼저이다. 하나님의 의가 이루어질 때 진정한 평강과 희락이 이루지는 것이다. 의가 이루어지지 않으니까 불평하고 원망하고 절망하는 것이다. 우리의 삶의 현장에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고,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지고 있는가? 항상 하나님의 의가 이루어지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자. 참으로 우리는 요즘 사람들이 말하는 말세를 살아간다. 도적같이 오실 주님이 이 땅에 오시는 그 날을 준비하고, 그날 부끄러움 없이 주님을 맞이할 수 있도록 하자.
 
오늘의 기도
 
대림절기를 맞이하면서 주님을 온전하게 기다리는 자세를 갖게 하옵소서. 거룩과 경건한 삶으로 믿음을 지키며, 주님 오실 날을 깨어서 간절히 사모하며, 그리고 하나님의 의가 이루어지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며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병문 목사
울산호계교회

화-기다림
본문 : 룻 1:1~2
찬송 : 292장

룻은 자신의 정절을 고수하면서 시련과 환난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름 없는 시어머니를 위해서 헌신하는 여인으로 기록되어 있다. 사사시대를 배경으로 이 때에 왕이 없음으로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살던 시대에 한 가정이 육신적인 기근을 피하기 위하여 모압에 갔다. 그 가정의 입장에서 보면 기근으로 인하여 베들레헴을 떠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본문은 오늘 우리에게 기근이 들면 가야 하는 것인가를 생각하게 하게 한다.
 
물론 이들은 처음에는 잠시 피난을 간 것이었다. 그런데 2절에서 "거기 살더니"라고 했다. 점점 그곳에 머물러 장착하게 되었다는 말이다. 그 사람이 누구인가? 엘리멜렉(뜻:나의 하나님은 왕이다)이다. 아들에게 '하나님을 왕으로 믿고 살라'는 믿음과 소망에서 부모님이 지어준 이름이다. 당시에는 이스라엘에 왕이 없던 시대였는데 이런 고백의 이름을 지어준 것을 보면 부모님의 깊은 신앙을 볼 수 있다. 하나님이 왕이라고 고백하는 사람은 왕이신 하나님의 말을 들어야 한다. 그리고 일이 잘될 때에나, 반대로 어렵고 힘들 때에도 왕과 상의하고 왕의 결정을 따라야 한다.
 
성경은 엘리멜렉이 모압으로 가서 거주하였다는 것과 그가 아들의 이름을 말론(뜻:병약한)과 기론(뜻:낭비)부르고 있음을 말한다. 아버지 엘리멜렉이 지은 아들들의 이름의 뜻으로 보아 소망을 잃어버린 마음으로 볼 수 있다. 이는 엘리멜렉의 신앙의 상태라고 생각할 수 있다. 왕권을 가지고 살아야 할 자인데 무엇이 이렇게 그를 나약한 상태로 만들었으며 결굴 모압 지방까지 가도록 했는가?
 
외적으로 보면 기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영적인 기근, 육적인 기근으로 인해 소망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나약한 상태가 되었으며, 그 상태에서 아이를 낳아도 약한 것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을 떠나면 안 된다. 어떤 상태에 있든지 베들레헴을 떠나면 안 되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 어디에 있나? 베들레헴을 떠나고 싶은 유혹을 받고 있는 것은 아닌가? 혹시 베들레헴을 떠나 풍성하다고 생각하는 세상을 향하여 가고 있지는 않는가? 나의 발걸음이 아브라함이 흉년 때에 애굽을 향하여 발자국을 옮기듯이 세상을 향하여 한 걸음씩 더 가고 있지는 않은가 생각해보자.
 
12월이 되었다. 여러 가지 어려움이 우리의 마음을 더욱 무겁게 하기도 한다. 주변의 소식을 들을 때에 많이 아프기도 한 상황이다. 그러나 우리는 세상으로 갈 수는 없는 사람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언약을 믿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언약을 성취하려고 독생자께서 육신으로 오심을 믿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시 오실 예수님을 믿음으로 소망하면서 기다리는 자이기 때문이다. 믿는 자는 그 언약 앞에서 성취될 날을 기다리는 것이다. 이것이 대림절을 맞이하는 우리의 마음이어야 한다.

오늘의 기도
 
주변을 둘러보면 힘들고 어려운 상황이오나 하나님의 약속을 믿기에 약속을 기다리는 자로 오늘을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임형진 목사
포근한교회

수-구속사를 위해 살았던 여인, 다말
본문 : 마 1:1~16
찬송 : 104장

마태복음의 족보 가운데 다섯 명의 여인이 등장한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를 잇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러나 그들이 가진 공통점 중 하나는 모두가 완전하지 못한 여인들이었고 출신, 잉태, 출산 등 그 어떤 것에서도 자유로운 사람들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또한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두가 구속사를 이어가기 위해 자신의 삶과 인생을 기꺼이 내어놓았다.
 
첫째로 다말은 원래 유다의 장자였던 엘의 아내였다. 그런데 엘이 악한 행동을 함으로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 일찍 죽게 된다. 다말은 젊은 나이에 과부가 되었다. 당시의 유대법은 아들이 없는 젊은 과부는 남편의 형제 중 한 사람의 아내가 될 수 있었다. 엘의 동생 오난은 다말에게서 낳은 아들이 자기 아들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심지어 자기의 모든 기업까지도 형의 기업으로 넘어가게 될 것임을 알았기에 다말과의 부부관계는 맺었지만 형의 아들이 될 아이를 낳는 것이 싫어서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을 하게 된다. 그 역시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 죽임을 당하게 된다.
 
결국 유다는 당시의 유대법을 따르지 않고 다말을 친정집에 보내게 되고 막내 아들 셀라가 자랄 때까지 기다리도록 했다. 그러나 셀라가 성장한 이후에도 다말을 그의 아내로 주지 않았다. 그러자 다말은 자식을 얻을 생각으로 시아버지가 되는 유다를 유혹하기 위해 창녀의 모습으로 변장해 유다에게로 들어가 동침하게 되고 시간이 흘러 다말이 잉태했다는 소식을 듣게 된 유다는 유대법으로 그녀를 불사르려고 했지만 자신이 맡긴 도장과 끈과 지팡이의 증표를 확인한다. 결국 다말은 쌍둥이를 낳게 되는데 그 중 한 사람인 베레스가 예수님의 계보에 들어오게 된다. 어떻게 이런 부정의 사건을 통해 태어난 아이가 예수님의 족보에 들어올 수 있었을까? 다말의 죄가 어떻게 그냥 넘어갈 수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들 수 있다. 그러나 이 말씀과 사건은 도덕적, 윤리적 관점에서 이해하기 보다는 다말의 중심의 생명을 낳고 생명의 계보를 이어가기 위한 구속사적 관점에서 이해해야 한다. 그것은 창조의 관점에서 하나님의 형상을 이어가기 위한 약속의 결단이었으며 자신을 통해 생명을 출산하기 위한 여인의 사명이었기 때문이다. 그녀의 남편들은 하나같이 생명에 대한 중요성과 생명의 계보에 대한 중요함을 깨닫지 못하고 도망가는 사람들이었지만 다말은 그런 상황 가운데에서도 생명에 대한 열정을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말의 모습을 보면서 영적인 의미에서 우리는 한 생명을 낳기 위한 이 거룩한 몸부림이 우리에게 있는가를 돌아보아야 한다. 성경은 부족하고 힘이 없고 자격이 없는 사람들을 통해 구속사를 이어가는 하나님의 의도를 설명하기 때문이다.
 
대림절 절기를 통해 영적 생명을 낳는 그리스도인이 되고 다말처럼 구속사의 계보를 이어가시길 바란다.
 
오늘의 기도
 
구속사를 위해 영적 생명을 낳는 거룩한 부르심으로 살아가는 날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정성욱 목사
꿈이있는교회

목-치료의 주님이 오신다

본문 : 렘 30:17
찬송 : 96장

우리 인생은 상처가 있다. 드러나는 상처도 있고 드러나지 않지만 때만 되면 서로를 힘들게 만드는 상처들이 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한 가지는 우리가 아플 때 함께 아파하시는 분이 계시다는 사실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이 고통의 이유들로 인해 함께 아파하시고, 더 나아가 우리 가운데 오셔서 우리 상처를 치료하시고 낫게 하기를 원하시는 분이다. 치료하심은 하나님의 의지이다. 오늘 말씀에도 "내가 너를 치료하여 네 상처를 낫게 하리라"고 하셨다. 성도가 되면 주님의 만지심을 경험하여 심령의 상처를 고치고 주안에서 강건하고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성도의 마음에는 심령의 상처의 증거인 열등감과 좌절감과 불신감이 남아 있어서는 안 된다.
 
그러면 심령의 상처를 치료받고 복된 삶을 누리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첫째, 상처를 극복하려면 죄의 문제를 넘어서야 한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모든 상처는 죄로부터 기인한다. 죄의 문제를 풀어내려면 하나님께 가지고 나아가야 한다. 우리의 연약함과 부끄러움을 하나님 앞에 겸손하게 풀어놓고 고백해야 하는 것이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요일 1:9)"라고 했다. 우리는 날마다 하나님 앞에 나아가 감당할 수 없는 죄의 짐을 내려놓고 주안에서 참 자유와 승리의 날을 누려야 한다.
 
둘째, 우리 죄짐을 지시는 분은 예수님이심을 기억해야 한다.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사 53:6)"라고 했다. 하나님은 우리 죄의 짐을 그 아들 예수님께 감당시키셨다. 예수님은 이 치유의 역사를 위해 우리 가운데 오셨다. 그리고 모든 상처를 고치고 낫게 하셨다. "온 무리가 예수를 만지려고 힘쓰니 이는 능력이 예수께로부터 나와서 모든 사람을 낫게 함이러라(눅 6:19)"고 했다. 예수 이름이 우리를 자유하게 한다. 예수님 앞에 나와서 죄 사함을 얻고 그 은혜와 축복을 누리자.
 
셋째, 성도는 하나님의 치료의 역사에 동역자로 서야 한다. 성도는 예수님의 마음으로 모든 심령의 상처를 싸매고 치료하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 어떻게 그렇게 살아가는가? 성도의 사랑이 상처를 치유한다. 성도가 진실로 예수님의 사랑을 품고 섬기고 사랑하면 성령의 감동이 나타난다. 선한 사마리아인은 "가까이 가서 기름과 포도주를 그 상처에 붓고 싸매고 자기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니라(눅 10:34)"고 했다.
 
성도는 아프게 하는 사람이 아니다. 적극적으로 다가가서 마음을 싸매고 돌보아 주어야 한다. 왜냐하면 사랑하는 일이 하나님의 뜻을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는 일이기 때문이다.
 
오늘의 기도
 
욕심과 고집으로 인해 아파하는 것이 우리의 인생임을 고백합니다. 우리를 정결하게 하시사 주님의 영으로 충만하게 채워주시고, 주님의 사랑으로 서로를 치료하며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덕신 목사
영도교회

금-하나님의 뜻
본문 : 롬 8:28~31
찬송 : 455장

우리가 살아가면서 고난을 당하는 것을 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종교의 힘을 빌려서라도 고난을 피해 가려고 기도하고 치성을 드리기도 한다. 그러나 성경을 보면 '고난 당하는 것이 내게 유익'이라고 고백한 시인이 있다. 어떤 의미에서 그런 고백이 가능한 것일까? 먼저는 이 고난을 통해서 하나님께 더욱 가까이 다가갈 수 있고, 그런 하나님과의 영적인 교감을 통하여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는 고난을 통하여 주의 율례들을 배웠다고 고백하고 있다. 두 번째는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겪고 있는 이 고난은 아무리 극심한 것일지라도 장래의 영광에 비교해 보았을 때 작을 수밖에 없다는 믿음의 소망이 있기 때문이다.
 
그럼 본문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선하신 계획이 무엇인지 살펴보고자 한다. 오늘 본문 28절에서 바울사도는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고 말씀하고 있다. 바울사도는 고통 중에서도 하나님 안에서 그의 인생에 선이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바울은 이미 성령 안에서 장래에 이루어질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품고 있는 소망의 성취를 체험했기 때문이다.
 
그럼 이 말씀에서 하나님이 내 안에서 이루시기를 원하시는 선은 무엇일까? 언뜻 생각하면 그 선은 고난이 떠난 평안한 삶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리고 내가 기도한대로 내 소원이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생각되어질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다음절에 이어지는 29절에 보면 그 선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본받는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그것이 평안이든 고통이든 내가 만난 모든 일들을 통하여 내 인격이 예수님을 닮아가고 예수님의 비전이 내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하나님의 선하신 계획인 것이다.
 
왜냐하면 내가 살아가면서 내 인격이나 성품, 그리고 내 삶이 예수님을 닮을 수 있다고 하는 것,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의 최종 목표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성화되어가기를 추구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선한 뜻대로 사는 성도의 삶이다. 문제는 나를 향한 하나님의 선하신 계획이 분명히 있는데 현실은 때로 위기가 있고 실패가 있고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반드시 잊지 말아야할 것은 30~31절 말씀과 같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의롭다하시고 영화롭게 하시기 전에는 우리가 죄인이었다는 사실과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시면 우리를 대적할 자가 아무도 없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때로는 여러 가지 환난을 당할 수 있지만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켜주시기 때문에 낙심하지 말고 오늘도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선하신 뜻대로 살아가는 한날이 되기를 소망한다.
 
오늘의 기도
 
오늘도 말씀 안에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게 하시고 하나님의 선하신 뜻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본받는 삶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이미숙 목사
안식관 원장

토-세월을 아끼는 지혜
본문 : 엡 5:15~21
찬송 : 435장

세월의 빠름을 유수와 같다고 한다. 물 흐르듯이 세월이 지나간다는 말이다. 그렇게 2016년도를 시작했는가 했는데 어느덧 마지막 달이 되었다. 이렇게 빠르게 지나가는 시간 속에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세월을 아끼는 지혜가 필요하다. 시간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은혜며 축복이다. 고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한정된 시간을 어떻게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게 바르고 아름답게 살아갈 것인가를 생각하며 살아야 한다.
 
오늘 본문은 "우리가 어떻게 행할지를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없는 자 같이 하지 말고 오직 지혜있는 자 같이 하여 세월을 아끼라"고 말한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우리가 깨달아야 할 것은 무엇일까?
 
첫째, 세월을 아끼라는 말은 무슨 의미일까? 기회를 잃지 말라는 의미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기회들이다. 그 기회를 잃지 말라는 말이다. 즉 세월을 허송하지 말라는 것이다. 시간을 귀하게 여기라는 것이다.
 
둘째, 왜 세월을 아껴야 할까? 때가 악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때가 악하다는 것은 세월을 지키고 관리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주어진 시간과 기회를 악한 세력들에게 잃어버릴 수가 있기 때문이다. 사탄이 우리를 가만히 두지 않는다. 세상이 우리들을 유혹한다. 이런 것들로부터 믿음 안에서 주어진 시간을 잘 지켜야 한다.
 
셋째, 어떻게 하는 것이 세월을 아끼는 것일까? 먼저 살아가는 동안에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그 뜻을 이루어 드려야 한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시간을 통하여 우리에게 기대하시는 것이 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기대하신 그 뜻이 무엇인가를 바르게 이해해야 맡겨주신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게 살 수 있다. 오늘도 우리 하나님이 나를 통하여 무엇을 하시기를 원하시는지를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면서 살아야 한다. 우리를 구원해 주시고 오늘 하루의 삶을 주신 하나님께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감사하며 찬송하고 살아야 한다. 하나님이 우리들을 이 세상에 보내심은 우리를 통해 영광을 받으시기 위함이다. 고로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으로 예배하면서 영광을 돌리는 것이 세월을 아껴서 바르게 사는 것이다.
 
이렇게 주님의 뜻을 이해하고 그 뜻을 이루어 드리고 감사와 찬송으로 영광을 돌리며 살아가려면 반드시 성령으로 충만해야 한다.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는 것은 성령의 지배를 받고 다스림을 받는 것을 의미한다. 성령에 이끌릴 때 하나님의 뜻을 바로 이해할 수 있고 행할 수 있으며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으로 영광을 돌릴 수 있다.
 
오늘도 우리에게 주어진 하루를 성령에 이끌려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며 감사와 찬송으로 살아가시는 복된 날이 되길 바란다.
 
오늘의 기도
 
우리에게 주신 시간들을 성령에 이끌려서 기회를 살리고, 아껴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조환국 목사
예본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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