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진 한국교회와 사역지 상황

[ 땅끝에서온편지 ] <9> 선교지에서의 자원 창출

차훈 목사
2016년 11월 25일(금) 11:21

지난 한 달이 넘도록 나는 두문불출하며 방안에 틀어 박혀 거의 우울증 환자와 같은 모습으로 지내 왔네. 아마도 겁 없이 믿음을 앞세우고 시작한 건축을 못 끝낸 채 통장이 바닥나자 그동안 나름 꿋꿋하게 버텨 오던 다리가 풀려 주저앉게 된 게지. 소위 번 아웃(burn out)이라는 증세일 수도 있겠지. 한국에서 마지막 건축지원비를 받아올 때는 "그만큼만 있으면 끝을 내보겠다"하고 받아 왔지만 기실 그 정도로는 안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너무 크게 요청하면 그나마 지원받기가 힘들 것 같아 그렇게 얼버무리고 받아 와서는 예상대로 끝을 내지 못한 채 그렇게 주저 앉아있었던 거지.
 
선교 현장은 참으로 다양하고 한국에 비해 다른 것이 참 많다네. 그래서 한국 교회에서는 현지 사정을 잘 모르기도 하고 또 어떤 때는 들어 알고 있어도 이해가 잘 안되는 경우가 많지.
 
실제로 현지에 있는 우리 선교사들조차 받아들이기 힘든 현실이 종종 있으니 한국에서야 오죽하겠나? 이를테면 대부분 노동비용이나 농수산물은 한국에 비해 턱없이 싼 것이 사실이지만 건축 자재 같은 공산품은 거의 수입에 의존하고 있으니 오히려 한국보다 비싼 것이 많은데 누가 이런 것을 어찌 쉽사리 이해할 수 있겠는가.

 
자동차 값만 해도 같은 차가 후진국인 필리핀이 한국에 비해 거의 두 배가 비싼 것을 저항감없이 어찌 납득할 수 있나 하는 것이지. 그래서인데, 요즘 부쩍 선교사들의 관심분야가 BAM(Business As Mission)에 쏠려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네. 사실 나도 그 중에 한 사람이고. 그 내용인 즉슨 이젠 더 이상 모국 교회에 의존하지 말고 현지에서 자원을 만들어서 사역에 충당하자는 것과 사업을 통해 만나며 교류하는 사람들을 통해 복음의 접촉점을 만들어 가자는 것이겠지. 사실 BAM은 종교비자가 나오지 않는 적성국가 혹은 무슬림 및 기독교를 허용하지 않는 타종교권 사역을 위해 비지니스 비자를 들고 선교지에 들어갔던 선교사들의 전략이었지만 이제는 선교에 관하여 사뭇 달라진 모국교회의 상황과 선교지의 자원 창출이 하나의 선교전략으로 대두되면서 매우 긍정적으로 BAM을 평가하고 있는 분위기가 되었다네. 오래전 선교학 시간에 회자되던 네비우스의 선교의 3자 원리 중 자급의 원리(self supporting)가 떠오르는 것은 참으로 새삼스럽지 않나?
 
목사가 목회 이외의 다른 직업을 갖는 것이나 선교사가 선교지에서 이윤창출이 결부되어 있는 사업을 한다는 것을 감히 상상도 언급도 못했던 시절이 불과 몇 년 전이었을텐데 말이야. 이제는 한국교회나 선교지에서 많은 의식의 변화가 진행되고 있고 우리는 그 현장의 중심에 서 갑자기 다가온 낯선 환경에 전전긍긍하는 자화상을 바라보면서 한편으로는 그동안 모국교회의 후원에 의존하며 안이하게 사역해온 것에 대한 반성도 하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선교의 주체이신 주님의 뜻을 읽으면서 능동적으로 대처해 가자고 다짐하는 기회로 삼고 있다네.
 
여보게 요즘 한국 교회 상황과 목회적 환경이 많이 달라져 자네 역시 많이 힘들 것이라 생각하네. 아무쪼록 우리 힘 내세나. 우리 젊은 날 주님의 첫 사랑에 감격하여 울며 밤을 지새웠던 그 날들을 기억하나? 결국 우리의 발걸음은 한강의 칼바람 불던 선지동산을 향했었지. 이 세상을 바라보며 가슴에 품었던 그 모든 나의 꿈을 버리고.
 
우리 첫 사랑을 가슴에 품고 다시 일어서 보세나. 무엇을 하든지 주의 영광만을 위해 남은 생을 살겠다고 크게 소리치면서.

차훈 목사
총회 파송 필리핀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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