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종, 자유로 들어서는 통로

[ 기독교교육이야기 ]

김용재 목사
2016년 11월 15일(화) 15:16

"자유요. 자유롭게 좀 살고 싶어요."
아이들에게 가장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물어보면 대부분 '자유'를 달라고 말한다. 어이없다. '갇힌 것도 아니면서 무슨 자유를?' 사는 게 답답하단다. '말도 안 돼! 어린 것들이.'

때로는 숨 쉬는 것이 버겁게 느껴질 때도 있단다. '어! 아이들 심각하네.' 그래서 웃음기 뺀 얼굴로 물었다.

"무엇이 그토록 너희를 힘들게 하니?" 아이들은 무척 유익한 내용을 매우 기분 나쁘게 말씀하시는 부모님의 잔소리 때문이라고 한다. 아이들이 그렇다고 말 하는데 어쩌겠나. 잔소리에 대해서 연구(?)를 시작했다.

잔소리는 '비슷한 내용을 잘게 썰어서 반복적으로 던지는 말'이다. 말의 용량에 비해서 내용은 매우 단순하다. '시간'과 '태도'다. "일찍 들어와라" "학교 늦지 마라" "예배 마치면 바로 와라" "50분 공부하고 10분 쉬어라" 시간에 관한 것이다.

"어른 보면 인사해라" "인상 쓰지 마라" "동생 때리지 마라" "다리 떨지 마라" 태도에 관한 것이다. 어른들은 알고 있다. 정글 같은 사회에서 사람 구실을 하려면 시간과 태도가 중요하다는 사실. 이제 곧 사회생활을 시작할 사랑하는 아이들이 사람구실 하도록 돕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은 거다. 조급해진다.

뇌 과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사람은 같은 소리를 세 번 이상 들으면 그 일이 말하는 사람의 일이라고 인식하고 수동적으로 반응하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어 아침에 "좋은 아침이네" "일어나"라는 말을 들은 아이는 '일어나서 학교 가야지'라고 느낀다. 하지만 "일어나라" "밥 먹어야지" "학교 안 가?" "니 인생이지 내 인생이야?" 이렇게 비슷한 내용을 반복해서 2, 30번 들은 아이는 '일어나 학교 가는 것은 엄마 일이야'라고 느낀다. 몸이 안 움직인다. 잔소리는 '아르바이트 청년이 오토바이크 타고 달리면서 뿌리는 홍보 명함'같다.

그토록 자유를 원하는 아이들은 자유를 '내가 원하는 것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상태'라고 생각한다. 권위에 반항하고 질서를 무시하는 행동을 자유롭다고 느낀다.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는 친구들 앞에서 자랑삼아 반항과 일탈을 말한다.

그것은 자유가 아닌데…. 줄이 끊어지면 잠시 바람에 춤추다 곤두박질하는 연처럼 참담함을 겪게 될 것이다. 이제 아이의 답답함 속에 숨겨진 자율에 대한 갈망을 연민의 눈으로 바라보자. 우리의 조급함 속에 숨겨진 아이에 대한 사랑을 더 성숙하게 표현하기 위해 노력하자.

진정한 자유는 '하나님께서 세우신 권위에 순복하므로 시작되는 신뢰관계 안에서 얻는 자율권의 확장'에서 시작된다. 아이들에게 자유를 선물하고 싶다면 우리는 아이들이 순종하고 싶어 하는 어른이 되기 위해 참된 권위에 대해서 고민해야 한다.

<다세연 대표ㆍ숲속샘터교회 시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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