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의 불씨를 지피자

[ 논단 ]

김남교 장로
2016년 11월 15일(화) 14:02

붉은 빛으로 너울대던 단풍은 숱한 사연을 가슴에 안고 깊은 계곡 속에 쌓여 간다. 그래도 남아 있는 파란색 잎들 때문에 붉은색이 더욱 곱게 보이고, 노란색 은행잎은 주황색 감나무와 조화를 이루며 가을 바람에 함께 춤추고 있다. 만개해 기울어진 국화꽃과 낙엽이 돼 딩구는 단풍들 사이를 주님은 여전히 따뜻한 빛으로 채워주고 계신다.


필자는 어릴적 교회 장로님을 무척 존경스러워 했다. 코흘리개였던 나의 이름을 기억하고 불러주실 때 얼마나 좋고 기뻤는지… 또한 필자의 눈에는 목사님과 장로님이 '형', '동생' 하고 부르는 형제로 보였다. 그분들의 가방 속에 들어 있는 커다란 성경책이 왜 그리 보물처럼 보였는지, 한번 만져보고 싶고 읽어 보고도 싶었다. 넉넉하지 못한 때였으니 겨울이 되면 감기든 친구들의 코에서 콧물이 두줄로 나왔다 들어갔다 했고, 그러면 장로님이나 목사님이 신문지 뜯어 부드럽게 비빈 후 한 손으로 아이의 머리를 잡고 "자 흥흥 해봐"하시면서 코를 닦아 주셨다. 검붉은 잉크 자국을 남기긴 했지만 친구들의 코를 깨끗이 닦아주는 모습은 영락없는 우리네 아버지였다.

항상 교회 일에 관심을 두시고 긍정적으로 일하시는 모습과 인자한 미소는 어린이들의 믿음을 올바로 자라게 하셨고, 우리도 멋진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용기와 희망을 품게 했다. 필자 역시 아무 것도 모르던 어린 시절 막연히 '장로님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행복해하곤 했다. 

가끔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지금의 교회학교 아이들을 바라보곤 한다. '과거와 현재의 다른 점은 무엇일까?' 항상 자신에게 질문하면서 그 때의 좋은 것과 지금의 좋은 것을 합쳐보기도 하고, 부족한 것을 개선하려는 생각도 해 본다.

교회 공동체 안에서 직분의 의미가 무엇인지 알기 어려울 때가 있다. 과거 충성된 항존직들을 통해 한국교회가 많이 부흥됐음을 잘 알고 있다. 요즘은 기독교인과 비기독교인 모두가 분주한 삶을 살고 있다. 

생긴 모양만큼이나 생각도 제각각이며, 하나님과 자신의 능력을 믿지 못하고 부와 권위가 있는 자들의 말에 흔들린다. 때로는 생각이 다른 것과 틀린 것을 구별하지 못해, 상대를 인정하지 못하고 고개를 돌려버린다. 작은 일을 하고도 자신을 과도하게 드러내다가 허영의 물살에 휩쓸려 돌이키기 힘든 몰락의 길을 걷기도 한다.

교회 공동체에서 직분은 결코 높고 낮음을 따지기 위한 것이 아니라, 주 안에서 복음을 전하며 은혜를 나누고, 화평을 이루어가는 주님의 도구로만 사용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모두가 자신이 감당해야 할 일을 올바로 감당하게 될 때, 교회는 진정한 주님의 몸 된 교회로 서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

매일 아침 거울을 보는 것처럼, 우리 모두는 주님의 거울에 자신을 비춰볼 필요가 있다. 높은 위치보다 온유한 자세로 하나님의 임재와 사랑을 경험하고 구원하시는 영원한 사랑을 마음 속에 깊이 새겨야 할 것이다. 기름 부음을 받은 사역자로서 교회 공동체의 회복을 실천하는 데 앞장서야 한다.

우리는 먼저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여 우리에게 주신 재능을 가지고 무엇을 하든지, 지는 자 같으나 이기는 자가 되고 약한 자 같으나 강한 자가 되어 하나님께 영광 돌리기에 힘써야 한다.

깊어가는 가을! 길 위에 쏟아져 융단처럼 깔려있는 노란색 은행잎과 색색의 낙옆을 밟으며 걸어본다. 하나님이 원하시고 이 시대가 요구하는 '거룩한 교회'로 다시 회복되고 실천되기를 바라며 가슴에 묻어둔 신앙의 불씨를 지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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