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회 총회 주제해설 ⑦종교개혁과 목회

[ 특집 ] 그리스도의 몸, 소통 안돼 썩는다

한국기독공보 webmaster@pckworld.com
2016년 11월 15일(화) 13:52

종교개혁과 목회:친교 공동체

생명력 있는 교회는 코이노니아 영성이 살아있는 공동체이어야 하는데 한국교회는 그것을 상실해 가고 있다. 의례적인 행사 정도로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이해도 될 만큼 오늘 한국교회의 상황은 한가롭지 않다. 


진정한 코이노니아 회복을 통해 종교개혁자들의 정신을 회복하고 다시금 거룩한 교회로 거듭남이 필요할 것이다. 코이노니아의 출발점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나누어 받는 것이며, 빈것을 또한 이웃과 나누는 삶이다. 

1. 종교개혁자들의 코이노니아
종교개혁자들에게 있어서 목회는 그리스도와의 교제를 회복하게 하는 것이었고, 교회는 성령과 말씀을 통해 세상으로부터 모여 한 몸을 이루며 각각 서로의 지체들이 되기 위해 그리스도이신 예수 안에서 연합된 사람들의 모임과 공동체였다. 
루터에게서 성도들이란 은혜에 의해서 부름을 받은 모든 지상의 성도들을 의미하는 것이요, 그 공동체는 은혜에 의해 이룩된 것이다. 성도의 교제는 성례전인 주의 만찬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루터의 만인제사장론은 은혜와 신앙으로 구원 얻은 모든 평신도들이 서로가 서로를 위하여 제사장이 될 수 있다고 하였다. 루터는 세상에 존재하는 교회는 성도의 교제를 통해서 완성되는 것으로 보았다. 

칼빈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는 무엇이든 서로 나눈다는 원칙 아래 성도는 그리스도의 공동체로 부름 받은 것임을 강조하였다. 

가시적 교회 안에서 성도들이 성령의 각종 은사들을 함께 나누면서도 '하나의 몸, 하나의 성령, 하나의 소망, 한 아버지, 한 머리'를 갖고 있다고 했다. 성도의 교제는 궁극적으로 성령의 역사에 의하여 그리스도와 연합하게 된다. 

이처럼 성도의 교제 역시 칼빈의 구원론에 흐르는 핵심 개념인 그리스도와의 신비적 연합을 이루는 구성요소가 되고 있다. 교회는 성도의 교제를 통해서 그리스도와 새롭게 연합되는 구원의 공동체로서 구원을 전파하는 기관인 것이다.

2. 코이노니아를 회복해야 할 교회
코이노니아는 서로 나누어 주는 것이다. 유산을 공동으로 소유하는 것 뿐 아니라, 서로 나누어 주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성도들의 쓸 것을 서로 공급해야 한다.(롬 12:13) 교회 울타리 밖에 관심을 갖지 못하고 있는 오늘날의 한국교회는 초대교회와 종교개혁자들의 정신을 회복하여 참된 코이노니아를 이루어야 한다.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으며 다시 거룩한 교회로 거듭나야 할 한국교회는 개 교회 중심의 성장주의에서 벗어나 지역 사회의 중요한 일원으로 자리 매김하며, 지역과 소통하며 함께 삶을 만들어야 한다. 최근 위기의식을 가지고 있는 한국교회가 교회 울타리를 넘어 세상의 친구가 되고, 코이노니아의 사명을 잘 감당할 때 세상 속에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고 다시 거룩한 교회로 거듭나게 될 것이다.

3. 친교 공동체로 거듭나기 위한 제언
교제와 친교가 단순히 교인들끼리 사귀고 친교하는 장을 마련하자는 것은 아니다. 
그동안 한국 교회는 자체 조직의 유지나 자기 확장적 조직 구조에 맞추어져 관리되어 왔고, 코이노니아의 역할도 교회 내 교인들 간의 친교에 초점이 맞추어져 왔던 것이 사실이다. 이는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며, 성경이 말하고 있는 진정한 사귐과 나눔이 이루어지는 코이노니아는 반드시 회복되어야 한다. 

세상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다하며,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한 진정한 교제가 이루어 질 수 있도록 코이노니아를 위한 소그룹 운동을 제안한다.

 

종교개혁과 목회: 선교와 봉사

1. 탄식과 아쉬움으로 맞는 종교개혁 500주년
지난 세기 말부터 분명한 조짐을 보인 한국교회의 정체 및 쇠퇴는 지금까지의 한국교회가 쌓아온 모든 성취와 명성을 흔들며 무너트리는 양상이었다. 
탄식과 아쉬움으로 맞는 종교개혁 500주년은 한국교회에게 남은 마지막 회복의 기회일지 모른다. 교회의 위상을 회복하고 교회와 사회를 향한 새로운 지도력을 구축하기 위하여 교회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Let the church be the church). 

2. 봉사의 실천에 있어서 루터와 칼빈의 재발견
특별히 루터와 칼빈 두 개혁자가 중요한 것은 개혁의 의미 있는 출발이 이들 두 사람들로부터 비롯되었을 뿐만 아니라 종교개혁의 이론과 실천에 있어서 가장 뚜렷한 족적을 남기고 이후 개혁신학의 발전과 교파의 형성에 있어서도 중심적 역할을 했다고 보기 때문이다. 

1) 마르틴 루터의 칭의론과 두 왕국사상 : 루터의 칭의론은 루터 신학의 출발이요 중심이다. 칭의론은 '면죄부를 통한 선행'에 대한 비판이었다. 루터는 인간이 면죄부로 의롭게 되거나 구원을 얻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의를 이룬다고 천명하였던 것이다. 둘째로 두 왕국 사상이다. 루터의 종교개혁의 발상지인 독일의 교회와 독일 사회가 루터를 제대로 이해하여 그의 근본적이면서도 급진적인 개혁이 우리 시대의 그 어떤 혁명적 이론보다 혁명적이라는 것을 깨닫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2) 칼빈의 그리스도의 몸으로서의 교회와 집사직 : 칼빈의 교회의 사회봉사의 초석은 모세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두 돌판의 계명에 놓여 있다. 칼빈은 그 두 돌판, 즉 하나님께 대한 사랑과 인간에 대한 사랑은 결코 분리 될 수 없는 것이었다. 즉 그 두 돌판에서와 같이 케리그마와 디아코니아는 같은 하나님의 말씀의 양면이다. 둘째로 칼빈의 사회봉사에 있어서 중요한 점은 집사직무의 중요성에 대한 강조이다. 칼빈의 집사론에서 주목해야 하는 다른 한 가지는 여성 집사직에 대한 견해였다.

3) 머리되신 그리스도의 몸으로서의 교회 : 교회는 '그리스도 안에서의 존재'(in Christo-Sein)이다.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백성을 선택하셨고 이러한 선택은 무오한 것이다. 우리가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으로 이해한다면 우리는 그리스도를 머릿돌로 서로 연결된 공동체이다. 

3. 한국교회의 위기와 통합
한국교회의 위기는 우연히 온 것이 아니다. 한국교회가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한국교회는 통합되어 있지 않다. 우리가 종교개혁자들의 정신을 제대로 잇지 않은데서 문제가 시작되었다. 오늘 우리사회의 주제는 공존이 되어야 한다. 우리 한국사회의 기반인 독존은 있으나 공존은 없다. 독존의 재능과 열정으로 지금까지의 것들을 성취해왔다. 

우리사회의 해체 상황을 생각해볼 때 오늘날 한국교회의 선포의 주제는 명료해진다. '공존'이다. 그런데 문제는 오늘날 한국교회 역시 해체되고 있는 중이라는 사실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한국교회는 이 사회보다 더 빠르고, 더 철저하게 해체되고 있다. 

존재의 외연화, 예배와 봉사, 선포와 사회봉사는 구분될 수 없는 것이다. 우리는 루터와 칼빈을 재발견해야 한다. 우리는 그들과 너무나 동떨어져 있다. 그들은 우리가 지금 이야기하는 어떤 개혁보다 개혁적이다. 우리가 그 어떤 개혁을 이야기해도 그들이 개혁적이었던 것보다는 고루하다. 그래서 우리는 다시 제대로 그들을 이야기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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