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예배]11월 14~19일

[ 가정예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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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1월 11일(금) 17:00

월-많은 열매를 맺으라
본문 : 요 15:1~8
찬송 : 496장

1929년 미국에서 대공황이 한참 몰아칠 때의 일이다. 어렵고 힘든 대공황의 시기에 유독 한 극장만 성황을 이뤘다. 이유를 알아보니 극장 앞에 내걸린 현수막 때문이었다. '무료입장!' 당시 일거리가 없는 실업자들이 그 극장으로 몰려갔다. 무료입장이니 편하게 연극을 관람했다. 그런데 연극이 다 끝나고 밖으로 나가려는데 덩치 큰 사내가 출구를 막아섰다. "아니 무료입장이 아닙니까?" 사람들이 거칠게 항의했다. 그러자 덩치 큰 사내가 말했다. "물론 무료입장입니다. 하지만 지금 받고 있는 건 퇴장요금입니다." 누구나 이 땅에 올 때는 무료로 입장했다. 그러나 이 땅을 퇴장할 때는 결코 무료가 아니다. 누구든지 하나님 앞에 서 반드시 결산을 해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땅을 살아가는 동안 많은 열매를 맺으며 살아야한다.
 
많은 열매를 맺는 비결은 무엇일까?
 
첫 번째로 많은 열매를 맺으려면 주님 안에 거해야한다. 요한복음을 기록한 사도 요한은 주님과 이스라엘의 관계를 포도나무와 가지로 비유한다. 포도나무가 좋은 열매를 맺으려면 가지가 튼튼하게 붙어 있어야 한다. 사도요한은 포도나무인 주님 안에서 거할 때 풍성한 열매를 맺는다고 말한다. 오늘 본문 15장 4절은 말한다.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또 5절은 말씀한다.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많은 열매를 맺나니." 날마다 주님 품안에 거함으로 풍성한 열매를 맺을 수 있기를 바란다.
 
두 번째로 많은 열매를 맺으려면 말씀 안에 거해야 한다. 사도요한은 우리가 주님의 말씀 안에 거하면 우리가 원하는 것이 이루어질 것이라 말한다. 주님의 말씀은 지친 우리 영혼에, 방황하는 우리 영혼에 새 힘을 부어줄 수 있다. 그러므로 날마다 진리의 말씀 안에 거함으로 많은 열매를 맺어갈 수 있기를 바란다.
 
세 번째로 많은 열매를 맺으려면 하나님의 영광을 구해야 한다. 본문 8절에서 사도 요한은 우리가 열매를 많이 맺어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영광 때문이라고 말한다. 마태복음 6장 33절은 말씀한다.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때때로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산다고 하면서 자신의 영광을 먼저 구한다. 그러나 바른 믿음의 성도는 하나님의 영광을 먼저 구해야한다. 우리는 많은 열매를 맺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한다. 에베소서 5장 9절은 말씀한다.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 빛으로 부름받은 우리는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의 열매를 풍성히 맺어 하나님께 영광돌려야 한다. 오늘도 바른 믿음으로, 바른 삶으로 많은 열매를 맺어가는 축복의 성도가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오늘의 기도
 
날마다 하나님의 따스한 품안에 거함으로 많은 열매를 맺으며 살아가게 하옵소서. 풍성한 열매를 통해 영광돌리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이윤근 목사
창원우리교회

화-감사하는 자가 되라
본문 : 골 3:15~17
찬송 : 587장 


감사는 신앙의 지표다. 은혜입은 증거는 감사다. 감사를 특별한 것으로 여기면 감사할 수 없다. 은혜로 구원받은 자에게 감사는 일상이 되어야 한다. 열심히 헌신 봉사했는데 감사하는 마음을 잃어버리는 경우가 있다. 탈진한 것이다. 바른 헌신의 증거는 탈진이 아니다. 감사다. 성도에게는 감사만 남아야 한다.
 
감사하는 자가 되려면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라는 말씀에 순종해야 한다. 새번역은 '그리스도의 말씀이 여러분 가운데 풍성히 살아있게 하십시오'라고 권면한다. 감사하려면 우리 안에 그리스도의 말씀이 풍성히 살아있게 해야 한다. 듣고 잊어버리는 말씀으로 그치게 해서는 안된다.
 
메시지 성경은 말한다. "그리스도의 말씀이 여러분의 삶을 마음껏 드나들게 하십시오. 말씀이 여러분 삶에 속속들이 스며들도록 충분한 자리를 만드십시오." 우리가 감사하지 못하고 메마른 이유는 여기에 있다. 그리스도의 말씀이 내 삶을 마음껏 드나들게 하지 못했기 때문이요, 말씀이 삶에 속속들이 스며들도록 충분한 자리를 만들지 못했기 때문이다. 논에 모내기를 할 때면 아낌없이 물을 채워야하듯, 감사하는 자가 되려면 말씀으로 삶을 충분히 채워야 한다.
 
감사의 방해꾼은 분주함이다. 우리는 너무 분주하다. 여유없이 바쁜 것을 미덕으로 삼고 있다.바쁘다는 이유로 말씀이 우리 속에 풍성히 살아있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여유없다는 이유로 말씀이 삶속에 속속들이 스며들 자리를 마련하지 못한다. 어리석은 일이다. 말씀이 없으면 감사가 사라진다. 감사를 잃는 것은 생명력을 잃는 것이나 다름없다. 말씀은 우리에게 밥과 같다. 먹고 살기 위해 일한다면서 끼니를 거르며 죽을 듯 일만하는 사람이 있다. 밥 안먹고 밤새워 일하며 건강을 바라는 것은 모순이다. 말씀은 우리를 건강하게 살리는 생명의 양식이다.
 
말씀이 내 삶에 마음껏 드나들도록 마음 문을 활짝 열라. 말씀을 사모하라. 그래야 말씀이 머문다. 말씀이 머물 때 감사의 삶이 회복된다. 말씀이 감사를 지속시키는 원동력이다.
 
누구나 멋지고 후회없는 인생을 꿈꾼다. 누가 품격있고 향기로운 인생을 사는가? 감사하는 사람이다. 감사를 훈련하라. 감사는 단순한 자기긍정이 아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생각과 입술을 채우자. 말씀을 일상의 생활방식으로 삼을 때 비로소 인생은 감사로 가득차게 된다.
 
다윗은 언약궤가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올 때 먼저 감사했다. 느헤미야는 무너진 성벽을 재건 후 봉헌할 때 감사를 드렸다. 성도는 감사하는 사람이다. 가장 아름다운 인생의 꽃은 감사다. 감사를 꽃 피우자.
 
오늘의 기도
 
하나님 아버지, 비어있는 마음을 말씀으로 풍성히 채우소서. 말씀이 삶을 마음껏 드나들고, 속속들이 스며들도록 충분한 자리를 마련하게하소서. 항상 감사하는 자로 살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유상진 목사
영암교회

수-기도하게 하신 하나님
본문 : 삼상 1:12~18
찬송 : 559장

에브라임산지 라마다임소빔의 엘가나와 한나와 브닌나의 집이 있다. 엘가나는 자식이 없는 한나를 더 사랑해주었는데 한나는 괴로웠다. 가슴에 한이 많이 있었다. 적수 브닌나가 구박하여 한나는 격분한 감정이 쌓이고 쌓여 있었다.
 
왜 한나는 고통스런 여인이 되었는가? 이 고통은 남편 엘가나에게서 온 것인가? 아니면 적수 브닌나에게서 온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으로부터 온 고통인가? 왜 한나는 자녀가 없는 것도 서러운데 적수 브닌나에게 구박과 시기를 당해 마음과 정서적으로 격동하기까지 고통 속에 떨어져야 했는가?
 
왜 한나는 남편이 실로 성전에서 더 사랑해줄 때 성전에서 올라가서 성령충만하여 열심히 기도하며 통곡하다 엘리 제사장으로부터 술 취해 책망 받을 정도로 간곡히 기도하며 오직 만군의 여호와께 서원하며 아들을 주시면 여호와의 영광을 위해 바치겠다고 서원기도를 올렸을까? 그녀의 기도는 한을 풀기 위한 기도였는가? 아니면 기도의 사람을 하나님께서 찾고 계셨을까? 왜 한나는 서원하며 억울함을 만군의 여호와 앞에 토로하며 기도 올렸을까?
 
하나님께서는 그 시대에 기도하는 사람을 찾고 계셨다.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나갈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을 주시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기도하는 사람을 찾고 계셨다. 그런데 마침 한나가 하나님 앞에 나와 간절한 기도를 하고 있었다. 한나에게 기도하게 하신 분도 하나님이시며 울부짖으며 기도하는 것을 듣고 계신 분도 하나님이셨다. 하나님께서는 슬픔과 가슴에 한을 거룩한 하나님의 전에서 간절히 기도하는 한나의 기도를 주목하시며 듣고 계셨다. 기도를 들으시고 그녀에게 이스라엘 사람들 중에는 받을 수 없는 엄청나고 놀라운 자비를 베풀어 주셨다. 하나님은 한나의 태를 닫아 말할 수 없는 학대를 당하게 하셨고 고통 속에서 기도하게 하셨고 한나를 성전에서 간절히 기도하게 하시며 만군의 여호와를 부르며 서원하여 기도하게 하시고 한나의 슬픔과 고뇌와 가슴의 한을 모두 뽑아내시고 놀라운 축복으로 바꾸어 주셨다. 무자했던 여인이 사무엘을 얻었다. 아들 사무엘은 존경받는 대제사장, 거룩한 선지자, 군대장관으로 이스라엘의 최고 지도자중의 지도자가 되었다.
 
한나는 착하고 얌전한 여인만은 아니었다. 울분과 통한의 한을 품은 여인이었다. 그런데 울분과 통한을 적수에게 분풀이 하지 않고 하나님께 나와 기도로 토로하는 여인이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기도를 시키실 때가 있다. 하나님께서 시키시는 기도를 거부하지 않기를 바란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아픔을 기쁨으로 바꾸고 우리의 고통을 환희로 바꾸고 우리 가정의 저주를 축복으로 바꾸기 위해서 나에게 기도하기를 바라고 계시는지 모른다. 하나님 앞에 나와 무릎을 꿇고 기도할 때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놀라운 자비와 긍휼과 은총을 받는 우리가 되길 바란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아버지, 고통과 괴로움을 당할 때에 더욱 주님 앞에 나아가 기도로 나아가기 원합니다. 그리하여 고통을 축복으로 바꾸시는 주님을 체험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주명갑 목사
부여교회

목-지금 나는 어디에 속해 있는가?
본문 : 민 26:12~14
찬송 : 350장

민수기 26장은 2차 인구조사를 하는 장면이다. 광야 40년 동안 사람의 수가 증가된 지파도 있고 감소한 지파도 있다.40년 같으면 한 세대가 지난 것이라 인구가 늘어야 정상이다.
 
유다 진기에 속한 지파는 모두 증가한 반면, 르우벤 진기에 속한 지파는 모두 감소했다. 특히 시므온 지파의 감소가 뚜렷하다. 시므온 지파는 1차 조사 때에는 거의 6만 명에 달했는데, 2차 조사 때에는 2만 2200명으로 1차 조사 때보다 무려 4만 명 가까이 줄어든 셈이다. 왜 이렇게 줄어들었을까?
 
가장 최근의 이유는 시므온 족장인 시므리 사건으로 염병이 돌면서 시므온 지파의 사람들이 유독 많이 죽은 것 같다. 가문의 역사에서 그 이유를 찾아보면 시므온은 동생 디나가 강간을 당한 것에 앙심을 품고 세겜 사람들을 비겁하게 학살한 잔인한 성품이었다. 창세기 37장을 보면 요셉을 죽일 계략을 세울 때 주동한 사람이 시므온이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장남 르우벤은 요셉을 구하려고 했고, 르우벤을 제외하면 차남인 시므온이 가장 형이었고 평소 성품으로 보아 그가 계략을 주동했을 가능성이 많다. 시므온은 이런 나쁜 성품과 행실로 인해 야곱이 12아들을 축복할 때 오히려 저주의 말을 듣는다. 그 후에 신명기 33장에서 모세가 죽기 전에 이스라엘의 각 지파를 축복할 때 유독 시므온 지파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안하는 것을 보면 시므온 지파는 불순종의 대표적인 지파였음을 알 수 있다. 결국 시므온 지파는 복을 받지 못했다. 또 르우벤지파도 서모를 범한 죄로 인해 복을 받지 못했다.
 
반면 유다는 창세기 37장에서 요셉을 죽이자는 형제들을 설득하여 이스마엘 상인들에게 팔자고 제안하여 요셉의 목숨을 건져주었다. 창세기 44장에서 아버지가 아끼는 아들 베냐민 대신 자신이 인질이 되겠다고 해서 요셉을 감동시켜 요셉을 짓눌렀던 과거의 한과 상처를 깨끗이 씻게 한다. 결국 유다는 야곱이 열두 아들을 축복할 때에 르우벤 대신 실질적인 장자권을 얻는다. 또 유다 지파는 광야 40년 생활에서 항상 선봉장 역할을 하며 선두에서 행군을 했다. 그러면 제일 먼저 공격을 받기 때문에 가장 많은 사람이 죽고 다쳐야 하는데 오히려 늘어 12지파 중에서 가장 많은 지파가 되었다. 유다는 자기 목숨을 내놓고 희생할 줄 아는 사람이었고, 유다 지파는 희생과 헌신으로 생육하고 번성하는 지파가 되었다.
 
인구조사에 유다진기에 속한 지파들은 모두 인구가 증가했고, 시므온지파가 포함된 르우벤 진기에 속한 지파들은 모두 감소했다. 이 사실이 암시하는 중요한 진리는 '누구와 함께 어울리느냐'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이다. 신앙이 좋고 긍정적인 자와 어울리면 내가 복을 받고, 내 후손이 복을 받는다. 그러나 부정적이고 잘못된 자를 따라 가면 나도, 나의 후손도 복을 잃어버린다. 지금 나는 어디에 속해 있는가?
 
오늘의 기도
 
헌신적이고 긍정적인 무리들과 어울려 살아서 나도 복을 받고 자손들에게도 복을 주는 인생이 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형곤 목사
다사교회

금-심어야 응답이 온다
본문 : 행 10:1~8
찬송 : 440장

심는 것은 단순하게 보이지만 미래의 기쁨을 좌우한다. 자연의 원리도 심어야 열매를 거둘 수 있듯이 하나님 원리도 심어야 응답을 받는다. 사람들은 이율배반적인 사고와 행동을 많이 한다. 응답받기 원하면서 기도하지 않는다. 12년 혈루증의 여인도 자신의 생각을 뿌리며 살아왔다. 그곳에 응답도 평안도 없었다. 그러나 주님을 만나고자 하는 믿음을 심었을 때 "네 믿음대로 되리라"고 선포하셨고 치유가 일어났다. 말씀대로 잘 심는 것이 믿음이고 자기를 축복하는 영혼의 지혜이다. 예배도 기도도 찬양도 다 심는 원리가 작동된다.
 
우리는 수많은 편견의 지배를 받는데 그 중 순종에 대한 편견이 있다. '순종하는 자들은 무지하다. 단순하다. 지위가 낮다'라고 생각하는 부정적 사고를 갖고 있는 사람이 있다. 그러나 고넬료는 지혜로운 자이며 남을 다스리는 지위에 있는 사람이었다.
 
고넬료는 하나님 나라에 심는 삶의 모습을 보여준다. 첫째, 온 집안과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을 심었다. 둘째, 백성을 많이 구제하는 사랑을 심었다. 셋째, 항상 기도하는 성결의 삶을 심었다. 이 세 가지의 공통점은 잘 심었다는 특징이 있다. 고넬료의 삶을 통해서 잘 심는 것이 아름다운 믿음이요, 전도의 비결이요, 주님 사랑의 원리임을 가르쳐 준다. 고넬료는 심는 일에 순종했고 하나님의 축복 출발점을 가르쳐 준다. 그 축복을 살펴보자.
 
첫째, 주님 사자의 음성을 듣는 축복을 받았다. 살면서 가까운 사람, 부모의 음성을 듣지 못한다면 불행한 일이다. 성도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거나 깨달음은 최고의 복이다. 사무엘도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지만 엘리 제사장은 듣지 못했다. 신앙의 역전이 일어났고 부끄러운 일이다. 그런데 이런 축복을 고넬료가 받았다. 주님의 음성에는 미래에 대한 확신과 평안을 주신다.
 
둘째, 심는 자에게 사람을 붙여주시는 축복을 받았다. 고넬료는 주님의 음성을 통해 욥바의 베드로를 청하라는 말씀을 받는다. 이때 베드로와 고넬료는 알지 못하는 사이였다. 당시 욥바에서 죽었던 다비다를 살아나게 함으로 욥바에서 영적 대 부흥이 일어났다. 하나님은 베드로를 만나게 하셔서 욥바의 영적 대 각성을 고넬료 가정에서 일어나게 하셨다. 베드로를 통해 말씀을 들었는데 성령이 말씀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오는 영적 대 부흥을 일으키셨다. 그 결과 친척 가까운 친구들이 성령의 사람이 되는 놀라운 축복이 일어났다. 고넬료 가정의 영적 대 부흥은 베드로란 사람을 붙여 주심으로 알게 하시고 체험하게 하셨다.
 
우리는 무엇을 심고 있는가?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위하여 심는 것을 잃어버리고 사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보자. 자신의 썩어질 욕심을 기도로 심고 있지는 않은지….
 
오늘의 기도
 
사랑의 주님, 심지 않고 응답받으려 하는 어리석음을 회개합니다. 그의 나라와 의를 위하여 심는 지혜로 살게 하시고 고넬료의 삶에 동행하신 축복을 누리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정종주 목사
광주대인교회

토-가장 가까운 곳에서부터
본문 : 행 1:8
찬송 : 505장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고 말씀하셨다. 복음을 전할 때 먼저 깨달아야 할 중요한 2가지 사실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첫째는, "성령이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즉 제자들이 주님의 증인이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 전에 성령이 임하셔서 권능을 주셔야만 한다는 사실이다. 권능을 받지 않으면 참된 복음의 증거자가 될 수 없다. 왜냐하면 복음이란 인간의 말과 재주로 증거 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복음은 신령하다. 그래서 그 신령한 능력에 의해서만 이해되고 받아들여 질 수 있다. 바울은 "신령한 일은 신령한 것으로 분별하고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지 않는다"고 말했다. 아무리 유창하게 말을 잘하고, 복음을 듣는 사람들과 친밀하다 해도 성령께서 주시는 권능을 힘입지 못한다면, 결코 진정한 복음의 증거자는 될 수 없다. 전하는 복음이 윤리적, 도덕적 교훈은 될 수 있겠지만, 생명을 살리는 영혼의 양식은 될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가 진정 주님의 증인이 되려면, 하나님께 성령을 부어 달라고, 권능을 힘입을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두 번째로, 예수께서는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고 말씀하셨다. 예수께서는 복음 전파의 영역을 말씀하시면서, 단순히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될 것이라고 말씀하지 않으셨다. 이는 복음이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가까운 곳에서부터 먼 곳까지 증거될 것을 예언한 말씀이다. 사도행전의 기록을 보면, 실제로 복음이 예수님의 말씀처럼, 예루살렘과 그 인근에서 증거되기 시작하여 점차로 먼 곳으로 확장되어 갔음을 알 수 있다. 자신의 주변 사람은 외면한 채, 다른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려고 하는 것은 원칙에서 벗어난 일이다. 예수님께서 각 영역간의 순서를 분명하게 말씀하셨다는 사실은 복음을 전함에 있어서도, 분명한 순서와 원칙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주님도 동족인 유대인들에게 먼저 복음을 전하셨다.


바울은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아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라고 했다. 따라서 우리가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라면, 마땅히 나에게 있는 가장 좋은 것, 즉 복음을 자신의 가족들과 친족들, 그리고 가까운 이웃들에게 먼저 전하시기 바란다. 그럴 때 우리는 비로소 땅 끝을 바라보며, 성령의 능력을 받아 기도하고 선교하는 진정한 하나님의 일꾼이 될 수 있다.
 
오늘의 기도
 
복음을 전하기 위해 먼저 성령의 능력을 받게 하시고, 가장 가까운 곳에서부터 복음을 전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서영희 목사
함해노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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