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국에 가려진 우리 이웃

[ 논설위원 칼럼 ]

김종생 목사
2016년 11월 09일(수) 10:40

최순실 국정개입사건으로 온 나라가 벌집을 쑤신 듯 시끄럽다. 그동안 유언비어처럼 시중을 떠돌던 소설같은 이야기들이 하나 둘 사실로 그 민낯을 드러내고 있다. 기업들이 800억원이나 되는 많은 돈을 성큼 내놓았고, 기금조성에 청와대 관계자가 개입되었을 뿐만 아니라 이일의 최종 지시자가 대통령이었다는 고백이 나왔다.

이러한 작태는 연일 터져 나오는데 앞다투어 보도하려는 특종경쟁으로 대한민국의 시계는 최순실 모녀에게서 멈춘듯하다. 이 사건이 가져올 향후 파장에 대한 전망으로 다음 총선과 차기 대권에 대한 유불리를 따지는 정당과 대권주자들, 역대 대통령 가운데 가장 낮은 지지율 경신, 새로운 개각과 비서 인선 등 온 나라의 관심은 사건의 진상에 집중하고 있다. 나라의 존폐가 걸린 중대사안임에 분명하지만 그늘진 이웃에 대한 관심은 밀려나고 있다.

우리의 관심이 대형사건에 매몰된 사이 이 땅 곳곳에 허탈해하며 눈물 흘리는 이웃들이 잊혀져 간다. 출석하지 않아도 좋은 점수가 나오는 대학의 이해 못할 학사관리 앞에 조소하며 자학하는 학생들, 대학을 나와도 취업이 되지 않아 손꼽아 취업 소식을 기다리는 취업준비생들, 비정규직이라도 다행스럽게 생각하며 직업전선에서 땀흘리는 비정규직의 불안하고 씁쓸한 고뇌, 120만명의 청년실업자, 600만명의 비정규직, 자영업자들의 몰락. 열심히 일하고 눈물로 씨를 뿌리면 기쁨으로 단을 거둔다는 성경말씀은 오래 전 옛날이야기에 지나지 않는다.

이런 엄청난 파괴력을 가진 뉴스에 빨려 들어가 아픔과 눈물조차 삼켜버린 이 추운 계절에 600만명이나 되는 외로운 노인들, 낯설고 물설은 곳에 꿈을 앉고 이 땅을 찾아온 200만 다문화이주민들, 연탄 걱정하며 이 겨울을 스산하게 맞이하는 연탄가구들의 애환은 이제 국민들 관심 밖 이야기가 되고 말았다.

세월이 지나도 잊혀지지 않고 풀리지 않는 세월호의 깊은 슬픔과 분노의 이면에는 영적인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 한국교회가 이념의 포로가 되어 보수와 진보의 진영논리에 빠져 경건의 모양가지고 선명성 논란을 벌이는 동안 사이비 종교는 이번 사건에서 보듯 그 외연을 넓혀 온 것이다.

우리 주님은 많은 사람들이 유월절 행사에 빠져 아무도 관심 갖고 찾지 않는 베데스다 연못의 38년 된 병자를 찾아가셨다. 모두가 밀물처럼 한쪽에 쏠리고 쓰나미처럼 경도되어 있을 때 그늘에 누워 울고 있는 땅의 사람들을 찾아 그들의 안타까움에 공감하시며 위로와 희망이 되셨다.

성육신을 뜻하는 '카네이션(carnasion)'은 라틴어로 살 혹은 살갗인데 이 카네이션 앞에 in을 붙이면 살속으로 살갗 속으로가 된다. 이는 하늘에서 땅속으로 영원이 시간 속으로 역사가운데 육화된 것을 뜻한다. 우리 주님이 성육신을 인간구원의 방법으로 사용하신 것은 말씀이 육신이 되는 것만이 구원의 길이기 때문이었으리라.
이 난리 속에도 약자들을 찾아 자신과 동일시하신 주님의 사랑을 구현하는 교회가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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