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공보 기획> 서울강북노회장 강무영 장로

[ 교계 ]

신동하 기자 sdh@pckworld.com
2016년 11월 01일(화) 13:59

'하나님 나라 확장'이라는 대명제를 가슴에 품고 자신에게 맡겨진 사명은 어떻게든 완수하는 뚝심의 사나이가 있다. 최근 서울강북노회 노회장에 선출된 강무영 장로(서울소래교회)가 그 주인공이다.

강 장로는 경남 밀양에서 3남매 중 맏이로 태어났다. 신실한 신앙인이었던 어머니 김복순 권사는 강 장로를 정결하고 거룩하게 구별된 사람으로 키우려 노력했다.

▲ '뚝심의 사나이' 강무영 장로.

어머니는 마을의 미전교회에서 '종치기 권사'로 불렸다. 목사가 새벽녘에 교회종을 치는 수고를 덜어주고자 누구보다 먼저 교회로 나가 새벽을 깨우는 종을 쳤다.

"어머니는 종을 치기 전에 항상 줄을 잡고 오랜 시간 기도를 드렸어요. 어머니는 저에게 늘 '남에게 대접받고자 하는대로 너가 먼저 대접하라'고 가르치셨습니다. 특히 주의 종과 굶주리고 위로받기 원하는 사람들을 극진히 섬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강 장로는 학창시절 교회학교의 모든 성극에 주인공을 도맡을 정도로 성경의 인물들이 좋았고, 언변이 뛰어났고, 매사에 자신감이 넘쳤다.

초등학생 때 이미 신앙생활에 불이 붙어 "교회학교 선생님이 되어 예수님 말씀을 가르치겠다"는 다짐을 했을 정도다. 그 소망은 중학교에 진학하며 이뤄졌다. 교사 수가 모자란 상황에서 중학생으로 반사를 맡았다.

이후 50년을 강 장로는 교회학교 교사와 다음세대 지도자로 헌신해오고 있다. 1997년에는 총회 교회학교 아동부전국연합회 회장을 맡았다.

아동부전국연합회 회장 시절에는 지금의 종로5가 한국기독교연합회관 내 사무실을 만드는데 견인차 역할을 했다. 당시 6만5000명 교회학교 교사들의 중심축인 아동부전국연합회는 변변한 모임공간 조차 없었지만 강 장로의 강력한 리더십으로 전용 사무실이 생겼다.

▲ 초등학생 때 교회학교 선생님이 되기를 결심한 강 장로는 이후 50여 년 간 교회학교 교사와 다음세대 지도자로 활동해왔다.

일부 만류가 있었지만 하나님 한분 믿고 밀어붙였다. 강 장로가 한평생 고수하는 신앙철칙은 '안된다 하지말고 되도록 만들자'는 것이다.

전국을 돌며 강 장로는 사무실 마련의 비전을 교회학교 교사들에게 일깨웠다. 그 결과 교사수련회 등을 통해 교사들의 자발적인 헌금이 모아져 지금의 사무실을 마련했다. 당시 한 교사는 헌금봉투에 금반지를 넣은 미담도 있다.

또 강 장로는 총회 '교회학교 교사주일' 제정에 주도적으로 기여했다. 총회석상에서 주일 제정에 대한 반대여론이 나오자 김연근 장로, 장세규 장로, 서보림 장로 등 아동부 선배들과 지지발언으로 총대들을 설득하며 결국 통과시켰다.

강 장로는 건축계통의 특수도장 일로 사회생활의 첫 발을 디뎠다. 처음에는 정치인의 꿈을 안고 서울로 입성했다.

강 장로는 "대학생 때부터 국회의원의 출마 찬조연설사로 활동했다"며 "정치인에 대한 포부가 있었다"고 밝혔다.

▲ 강무영 장로는 (재)한국찬송가공회에서 일하며 교게 연합과 일치를 이룬 공로로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 창립 104주년 기념예배에서 공로패를 받았다.

하지만 우연히 특수도장 일을 맡으며 정치인의 꿈을 접을 정도로 그 일에 매력을 느끼게 됐다. 그러다 아예 자기사업으로 건축회사를 차렸다.

그러나 1990년대 후반 IMF가 터지는 상황에서 강원도 양양에 연건평 3500평짜리 공사를 진행하다 발주사의 부도로 돈을 한푼도 못건지고 사업을 접었다. 강 장로는 자신도 피해자였지만 신의를 지키고자 함께 벼랑끝에 몰린 하청업체를 모르쇠로 일관하지 않고 어떻게든 자기 돈으로 수습했다.

강 장로는 "30명 가량의 하청 파트장들에게 돈을 지급해야 하는 상황에서 때로는 시달림도 당하고 심지어는 건달들에게 목숨의 위협을 느끼는 순간들도 있었다"며 "내가 만약 신앙인이 아니었다면 당시 엉뚱한 길로 빠졌을 것이란 생각을 해본다"고 말했다.

또한 강 장로는 "아무에게도 털어놓지 못하는 고백을 하나님께 하니 속이 시원해졌다. 울부짖으며 하나님께 한참 매달리고 나면 헤쳐나갈 길과 앞으로의 방향성이 정리됐다"고 지난날을 회상했다.

사업 부도로 정신없는 와중에 교회학교 아동부전국연합회 회장에 피선됐지만 관계자들에게 일절 힘든 기색을 하지 않은 일화가 있다.

▲ 지병으로 고생한 부인 김정자 권사의 쾌유를 위해 눈물의 기도로 '여호와 라파'의 기적을 일군 가족들.

고난을 슬기롭게 대처하고 다시 새로운 일상에 적응할 무렵 부인 김정자 권사가 뜻하지 않은 질병을 떠안았다. 교회 꽃꽂이를 도맡고 봉사에 열심이던 김정자 권사가 주일날 교회에서 갑자기 뇌출혈 증세로 쓰러졌다.

이후 반신불수 상태에서 식물인간처럼 될 정도로 극한 상황을 치닫다 기적적으로 깨어나 휠체어를 타고 다닐 정도로 병세가 회복된 간증이 있다. 언제끝날지 모를 병간호를 하면서도 원망하지 않았다.

부인이 질병 후유증으로 말을 할 수 없게되자 어린이 그림책을 읽어주며 말하는 연습을 시켰고, 결국 말문이 트이는 '여호와 라파'의 기적을 체험했다.

이후 어느 정도 말도 하고 걸어다닐 수 있게 됐지만 최근 신장 기능 저하로 신장이식 수술을 받았다. 현재는 후유증으로 또다시 힘든 상황에 처해있지만 강 장로는 기도하며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있다.

오랜 병간호 중에도 평소 책임감이 투철한 강 장로는 자신에게 맡겨진 '하나님 일'은 누구에게도 떠넘기지 않는다. 평신도 지도자로 교계 연합에 기여해온 강 장로는 한국찬송가공회를 오랜 기간 섬겼다.

현재 (재)한국찬송가공회 총무권한대행인 강 장로는 찬송가문제에 대한 교계연합과 일치를 이룬 공로로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 창립 104주년 기념예배에서 표창장 및 공로패를 받았다.

이뿐만 아니라 교계 전반에서 두루 활동한 강 장로는 총회 부회계라는 중책을 역임하고 현재 서울강북노회장, 한국교회평신도지도자협회 사무총장을 맡고 있다.

한편 강무영 장로의 가족 관계는 부인 김정자 권사와 1남 1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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