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공원 설악산을 그대로

[ NGO칼럼 ]

이진형 목사
2016년 10월 26일(수) 10:42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여행을 좋아하지 않는다. 여행 중에서도 산행은 정말 내키지가 않는다. 차를 타고 가만히 앉아서 돌아다니는 여행도 영 불편한데, 내 발로 가파른 산을 헉헉거리며 걸어 올라갔다가 다시 비틀거리며 걸어 내려와야 하는 산행은 오죽하겠는가.

하지만 문제는 주위에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특히 산행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수두룩하다는 것이다. 다들 산에 못 가서 안달이 났는지, 이 핑계 저 핑계로 요리조리 빠져나가더라도 일 년에 한두 번은 어쩔 수 없이 이들에 산행에 끌려갈 수밖에 없다.

특히나 산행 중에서도 겨울 산행은 정말 고역이다. 언젠가 갑작스럽게 겨울 북한산을 올라가게 되었었다. 등산화도 아닌 운동화를 신고, 아이젠과 스틱도 없이 눈이 쌓인 북한산을. 이리 미끌, 저리 미끌 거리며 간신히 정상에 올랐다가 엉금엉금 기다시피 하며 천신만고 끝에 북한산을 내려와야 했다. 그 뒤로 겨울 산행은 피해야 할 여행 일 순위가 되었다.

아마 누군가가 나와 비슷한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저 높고 위험한 산을 그리 끙끙 거리면서 올라가야할 필요가 있을까? 좀 더 편하게 산을 올라가는 방법이 있지 않을까? 그래, 산 입구에서 산꼭대기까지 케이블카를 설치하면 되겠네. 사람들은 힘들게 산행을 안 해도 되고, 케이블카를 운행하면 지역 경제도 살고. 이거 꿩 먹고 알 먹고네.'하며 자신의 놀라운 생각에 스스로 감탄을 했을 지도 모른다.

아마 누군가는 그 옆에서 "맞습니다. 전국의 모든 유명한 산에 케이블카를 설치해서 산행을 싫어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희망을 전해주십시오"라고 맞장구를 쳤을 지도 모른다.

그런데 문제는 전국의 크고 유명한 산들은 대부분 절대보전구역인 국립공원이라는 것이다. 국립공원에 케이블카 같은 인위적 시설물을 설치하는 사업을 추진하려면 경제적인 측면의 사업 타당성 조사와 함께 지역 환경청의 환경영향평가와 문화재청의 문화재심의를 받아야 한다.

대부분의 국립공원 지역은 생태적 보전 가치가 아주 높은 천연기념물의 집단 서식지이며 유구한 역사적, 셈할 수 없는 문화적 가치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제대로 된 환경영향평가와 문화재심의를 받는다면 국립공원의 케이블카 사업은 허가가 날 수가 없다.

하지만, 케이블카를 설치하는 게 좋겠다는 생각을 한 사람이 아주 큰 권력을 가진 사람이라면, 그리고 케이블카 사업을 추진하려는 지자체 공무원들이 거짓말로 사업 타당성 보고서를 작성해서 제출한다면, 그리고 환경청이 자격 미달의 전문가들이 엉터리로 작성한 환경영향평가서를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받아들여준다면, 문화재청이 형식적인 심의로 사업을 통과시켜준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우리나라 최초의 국립공원인 설악산국립공원의 오색 케이블카 추진 사업이 지금 이 모양이다. 지자체 공무원은 보고서 조작으로 검찰에 고발이 된 상태고, 환경영향평가서는 천연기념물 산양의 서식 분포를 축소하는 등 엉터리 투성인데도 환경청은 별 문제가 없단다.

이 일을 알리고 바로잡기 위해 창조세계의 걸작품인 설악산을 아끼고 사랑하고 이들이 함께 모여 매주 한 번 씩 모여 기도회를 갖고 있다. 그리고 이제 이 생명과 평화를 지키는 기도회가 300여 차례에 이르게 되었다. 설악산 케이블카 사업은 중단되어야 한다. 국립공원 설악산은 그대로가 더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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