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개혁과 한국장로교회의 예배갱신

[ 논설위원 칼럼 ]

유갑준 목사
2016년 10월 26일(수) 10:39

10월 31일은 종교개혁기념일이며, 내년이면 루터가 비텐베르크 성문에 95개조항의 반박문을 붙이면서 종교개혁의 기치를 올린지 꼭 500주년이 된다.

사실 종교개혁의 발단은 결코 요란하지 않았으며 사회를 개혁하자고 하는 거창한 뜻도 없었다. 다만 진실하고 용기있는 믿음의 사람 루터의 신앙적 양심이 발화가 되어 엄청난 파장을 일으켰으며 그 결과 전혀 새로운 형태의 교회가 태동하게 되었다.

더 나아가 종교개혁은 교회개혁뿐만이 아닌 사회와 문화에 커다란 변혁을 일으키게 되었으며 무엇보다도 기독교신앙의 핵심인 예배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따라서 499주년 종교개혁기념일을 맞이하면서 한국장로교회가 새롭게 개혁해야 할 예배갱신에 대해 생각해 본다.

교회가 진정한 교회가 되려면 16세기 종교개혁자들의 표현처럼 '항시 개혁되는 교회 (Ecclesia Semper Reformanda)'가 되어야 한다. 그래서 개혁교회는 새로워지기 위해서 부단히 갱신되어 왔다. 그렇다면 교회의 생명력은 어디에 있으며 무엇으로 유지되는 것인가?

여기에 대해서 예배학자인 Allmen은 교회의 생명력이 예배에 의해 유지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만일 예배를 중단하면 공동체는 죽게 되며, 교회의 생명력은 예배에 의해서 유지되기 때문에 예배는 교회의 심장부에 해당된다. 따라서 "만일 예배가 갱신이 되지 않으면 교회는 다른 어느 부분에서도 갱신이 되지 않는다"고 한 칼 바르트의 주장은 정당성을 가진다.

그런데 문제는 개신교의 예배갱신은 종교개혁 이후 계속해서 예배의 의식이나 예배 기구의 개혁보다는 예배자 자신의 갱신에 있었다. 그러나 기독교 예배는 단순히 한 개인이 하나님과의 개인적 교제를 갖는 예배가 아니고 그리스도를 머리로 삼고 함께 지체가 된 신앙공동체라는 큰 틀 속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기독교 예배 갱신의 중요한 과제는 예전의 정당성, 예배의 회중참여, 예배의 신학적 균형을 지향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한국 장로교회는 16세기 종교개혁을 통하여 세워진 개혁교회의 전통을 이어받은 교회로서 개혁교회의 진정한 탄생은 하나님을 어떻게 믿느냐는 교리적인 싸움보다는 하나님을 어떻게 예배할 것인가 하는 예배개혁의 과정에서 맺어진 결실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한국 장로교회의 뿌리는 유럽에서의 박해를 피해서 신대륙으로 건너온 청교도들이며, 장로교회 예배의 근간은 1644년 만들어진 웨스트민스터 예배모범이다. 그래서 한국 장로교회 예배는 '웨스트민스터 예배모범'과 '청교도적 경건주의' 그리고 초기 선교사들이 전해준 유산 위에 한국교회 고유의 토착적인 관습이 가미된 복합 형태를 갖게 되었다.

다만 한국 장로교회 예배 모범의 아쉬운 점은 웨스트민스터 예배모범과 미국 장로교의 예배모범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장로교회의 아름다운 예배전통은 잘 보존하고 계승해야하겠지만 한국적 상황과 오늘의 시대에 맞는 예배를 개발해야 날마다 새로워진다고 하는 '개혁교회'의 정신과 일치할 뿐만 아니라 생동감 넘치는 참다운 예배를 드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 교단의 예배모범은 각론적으로는 자세하게 언급하고 있으나 예배의 신학과 정신에 대한 총론적인 내용은 매우 취약하다. 우리들이 왜 예배를 드려야 하고, 어떤 자세로 드려야하고, 예배의 의미는 무엇인가에 대한 분명한 이해가 선행되어야만 바른 예배를 드릴 수 있기 때문에 예배모범의 총론부분은 예배학자들에 의해 대폭 보완해야 할 것이다.

아무튼 바른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 생명까지 바치며 혼신의 힘을 다 기울였던 종교개혁자들의 예배정신과 유산을 소중히 생각하며 그 바탕위에 질서 있고 바른 신학으로 세워지고, 한국적 토양을 살린 장로교 예배예전을 계발해 나가는 것이 예배갱신의 주요과제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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