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서, 자기를 받아들이기

[ 기독교교육이야기 ]

김용재 목사
2016년 10월 26일(수) 10:23

"목사님… 저 더 이상 못하겠어요."

예배 때마다 회중 앞에서 그 긴팔을 올리고 찬양하던 아이, 주님이 그리워 붉어진 눈시울로 예배당 천장을 바라보던 아이. 찬양 가사를 영혼으로 되새김질하듯 곱씹어 부르던 그 아이가 내게 찾아와 말했다.

"목사님,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없고 주님에 대한 감정도 메마르고, 가슴에 사막 바람이 부는 것 같아요. 그런데도 사람들 앞에서 은혜로운 표정으로 노래하는 것이 너무 힘들어요." 긴 여행에 지친 순례자가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벽난로 곁에 스러지듯 아이는 그 동안 몸 깊이 꼭꼭 숨겨둔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예수 믿으면 근심 걱정 사라진다"라고 들었다. "죄와 죽음의 권세가 사라져서 기쁨과 평안이 넘친다"고 말했다. 우리는 교회 건물에 머물며 밝은 표정을 짓는 것이 익숙해졌다. 내면에 슬픔이 차오를 때, 현실 앞에 막막함이 덮쳐올 때, 당혹스러워 우리에게 어울리지 않는 것 같은 정서를 빨리 처리하려고 했다. 의도대로 안 되면 덮어두고 없는 것처럼 지냈다. 그렇게 우리의 표정은 밝고 맑았다. "아니 왜 우리 주님 계신데 그렇게 우울해 하세요? 저처럼 다 맡기세요"라고 허세(?)를 부렸다.

한편 아이들은 따스한 돌봄 가운데 적절한 훈육을 받지 못해서 외롭다. 치열한 경쟁 사회 속에서 지긋지긋한 순위에서 뒤쳐져서 서럽다. 아무리 마음을 다잡아도 반복해서 실수를 하니까 지겹다. 그런데 항상 밝고 맑은 표정으로 당당하게 서 있는 사람들이 "너희도 당당하게 서라."고 말한다. 아이들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게 될까? '내 생각은 왜 이렇게 복잡할까?' '마음은 왜 이렇게 추잡할까?' '아직 구원 못 받은 거겠지?' 매 순간 일어나는 정리되지 않은 감정과 정서들 사이에서 탄식하는 아이들. 자신을 부적절한 존재로 인식하지 않을까?

성경은 "천국은 밭에 감춰진 보화"라고 가르친다. 하나님의 다스림은 밭처럼 건조하고 투박한 일상에 숨겨져 있다. 너무 수치스러워 숨기고 싶은 것, 너무 당혹스러워 피하고 싶은 것 속에서 겪는 생각, 느낌에서 비롯되는 생경한 정서는 영혼의 자양분이 되어 우리가 하나님의 임재를 갈망하도록 한다.

그렇게 사람은 어른이 되어 간다. 이에 C. S. 루이스는 "사람의 모든 정서는 피아노 건반과 같다"라고 말한다. 훌륭한 지휘자에 의해 모든 음은 조화를 이루어 아름다운 음악이 되는 것처럼 하나님의 손길 아래서 우리의 모든 정서 조화를 이루어 아름다운 영혼의 결이 된다.

이제 아이들이 자기 정서를 그대로 인정할 수 있도록 돕자.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자신이 아는 단어와 문장으로 표현할 수 있도록 돕자. 그것이 기도가 되도록 안내하고 그런 자신을 있는 모습 그대로 사랑하시는 하나님 앞에 머물 수 있도록 돕자. 그렇게 하려면 먼저 우리가 자기를 그대로 인정하는 연습을 해야 한다.


<다세연 대표ㆍ숲속샘터교회 시무>

이 기사는 한국기독공보 홈페이지(http://www.pckworld.com)에서 프린트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