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의 생활화'

[ NGO칼럼 ]

김주윤 목사
2016년 10월 19일(수) 13:45

개성공단의 교회는 컨테이너 숙소에서 시작되었다. 병원로비를 거쳐 의류업체가 세운 교회에서 예배를 드렸다. 북한에서의 신앙 활동은 예상대로 쉽지 않았다. 공개적으로 예배장소나 시간을 알리지 못했다. 그래서 공단에 온지 몇 달이 지난 다음에야 교회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놀라서 오는 사람들도 있었다.

예배당에 교회라는 표시도 못해서 강당동이라고 붙여 놓았고 십자가도 달 수 없어 교회라는 사실을 알 수 없었던 것이다. 북한에도 종교의 자유가 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마지못해 예배는 허락하지만 북한 근로자들에게 영향을 줄까봐 제재를 하는 것이었다.

병원에서 예배드릴 때는 옆에 있는 마트 북한 근로자가 고발해 총국의 경고를 받기도 했다. "김 선생. 병원에 무엇 때문에 오셨습니까? 본연의 임무에 충실하십시오." 초창기에 개성교회라고 현판을 달았다가 "누가 허락한 교회입니까? 조선그리스도교연맹에 가입하면 정식교회로 인정하고 평양에서 목사를 파송하겠습니다"라고 해서 할 수 없이 현판을 떼었다. 강단 벽에 십자가를 달 수 없어 이동 문을 만들어 십자가를 부착하고 감추어 놓았다가 예배시간에만 나오게 하였다.

설상가상으로 예배당을 관리한다는 이유로 두 명의 북한여성을 배치해 교우들과 예배활동을 감시했다. 세월호 사건이 일어났을 때 남한 지도자들의 반성과 회개를 촉구하는 기도회를 가졌다. 그런데 감시하던 여성들이 북한 지도자의 반성과 회개를 요구했다고 보위부에 고발해 어려움을 당하기도 했다. 개성공단에서는 남한 근로자들에게조차 공개적으로 전도를 할 수 없다.

그러니 북한 근로자들에게 신앙적으로 접근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할 것인가? 의류업체의 법인장이신 장로님이 "이곳에서는 북한 근로자들을 예수님의 사랑으로 대함으로 믿음의 기업이 뭔가 달라도 다르고 교회 다니는 사람은 좋은 사람이라는 인식을 심어주는 것이 전도가 아닐까요?"라고 했다.

그렇다. 말로 못하면 몸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신앙의 생활화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런데 그렇게 쉽지 않은 것이 신앙과 생활의 일치이다. 많은 분들이 개성공단의 환경이 어렵기 때문에 남한에서 신앙생활을 잘 못하던 사람들이 교회에 열심히 나올 것 같다고 말한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공단의 좁은 공간에서 24시간 생활이 다 드러나기 때문에 남한에서는 예배에 빠지지 않던 사람이 개성공단에서는 자유롭게 생활하려고 아예 나오지 않거나 나오다가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나오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마트의 점장이 남한으로 내려가면서 고백하였다.

"목사님, 저는 사실 모태신앙입니다. 남한에서는 주일성수를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곳에서는 매일 목사님 앞에서 담배피우고 술 취해 있는 모습을 보이다가 예배드리러 갈 수가 없었습니다. 남한에 내려가면 열심히 신앙생활 하겠습니다."

요즈음 한국교회가 위기라고 말한다. 교회의 미래가 없다고 걱정한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난 것인가?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근본적인 이유는 신앙과 생활이 일치하지 않아 교회와 교인들의 신뢰도가 땅에 떨어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남한선교는 물론이거니와 북한선교도 신앙이 생활로 그대로 이어질 때 가능하게 될 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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