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 선물의 뒷맛

[ 경제이야기 ]

박병관 대표
2016년 10월 18일(화) 09:41

박병관 대표
독일국제경영원ㆍ가나안교회

유럽의 기차역과 공항이 힌두교의 신 '크리슈나'의 추종자들로 북적이던 때가 있었다. 붉은 천을 몸에 걸친 젊은 크리슈나 교도들이 지나가는 행인들에게 이곳 저곳에서 꽃을 나눠 주었다. 받지 않으려 하면, 한껏 미소를 지은 젊은이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받으세요, 이것은 당신께 드리는 선물입니다"라고 속삭였다. 그런데 일단 받아든 꽃을 버릴지 가지고 가야할지 망설이고 있으면, 곧 다른 젊은이가 다가와 미소를 머금고 헌금을 부탁했다. 많은 사람들이 거절하지 못하고 돈을 주게 되자, 급기야 공항측에서는 크리슈나 교도들의 출입을 금지하기에 이르렀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남에게 빚지는 것을 싫어한다. 독일의 경제 전문가 '롤프도벨리'에 의하면 인간은 다른 사람에게 받은 호의를 반드시 돌려주려는 습성을 가지고 있다. 이를 '상호성의 법칙(Reciprocity)'이라고 하는데, 과거에는 인간 사회를 유지하는 중요한 방식이기도 했다. 고대 수렵사회에서는 사냥을 나가 항상 성공한다는 보장이 없었다. 사냥에 성공한 날에는 먹을 것이 풍족했지만, 아무것도 잡지 못한 날에는 배를 주려야 했다. 냉장고가 없었기에 먹고 남은 고기는 자연스럽게 이웃에게 나눠주게 됐고, 사냥에 실패한 날에는 반대로 남이 나눠주는 고기를 먹게 됐다. 다른 사람의 위장이 일종의 냉장고 역할을 한 셈이다. 이처럼 상호성에 의존한 관계는 인간의 생존을 도우면서 사회성으로 발전하게 됐다.

오늘날 많은 기업이 상호성의 법칙을 마케팅과 영업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 선물이나 식사 초대를 자연스럽게 할 수 있다면 이미 반은 비즈니스에 성공한 셈이다. 남에게 빚지는 것을 못견디는 상대방이 어떤 형태로든 보답할 것이기 때문이다. 명절이 되면 많은 선물이 오가는 이유이기도하다. 

지난 추석은 소위 '김영란법'으로 불리는 청탁금지법이 입법예고된 후 처음 맞는 명절이었다. 이제 공직자는 명절 선물을 받을 때에도 엄격한 법의 규제를 받게 됐다. 아무리 작은 선물이라도 상호성의 법칙이 작용하면 공정한 업무를 방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성경에서도 "피차 사랑의 빚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말라(롬 11:7)"고 했다. 많은 우려와 혼선에도 불구하고, 이 법을 통해 우리 사회에 공정한 문화와 관행이 자리잡아 가기를 기대해본다. 

명절 선물이 줄어들어 서운한 이들도 있을 것이다. 관계에 메마른 세태가 비인간적으로 느껴지는 심정도 이해는 된다. 그러나 추석 선물을 받지 못한 데 따른 장점도 있다. 다른 사람에게 빚진 것이 없다면 매사에 자신의 이성에 따라 명철한 판단을 내릴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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