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예배]10월 10~15일

[ 가정예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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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0월 05일(수) 17:54

월-여호와의 이름
본문 : 출 20:7
찬송 : 91장

아이를 낳으면 출생신고를 해야 한다. 신고를 하려면 이름을 지어야 한다. 부모는 자식들의 이름을 부른다. 그러나 이름을 지음받은 자식이 부모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않는다.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시고, 그 분의 형상을 따라 사람을 만드시고, 그에게 아담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셨다. 하나님은 피조물인 인간들의 이름을 부르신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의 이름을 사용하는 것,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은 삼가 조심해야 한다. 하나님이 요구하신다.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지 말라." 어느 누가 하나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를까?
 
첫째, 불신자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멸시하며 함부로 부른다. 불신자들이 하나님을 없다고 말할 때, 불신의 말 가운데 하나님의 이름이 사용될 때, 그리스도인들은 가슴에 고통을 느낀다. 하나님의 이름이 조롱받는 이름이 될 때, 칼로 뼈를 찌르는 것과 같은 아픔을 느낀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위대함을 모르는 자들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
 
둘째, 거짓선지자와 삯꾼 목자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하나님의 이름을 사용할 때이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자신의 행동과 결정을 정당화 시키려할 때, 자신을 위해 하나님의 이름을 사용하는 것이라면 큰 죄를 짓는 일이다. 예수님은 주의 이름을 부르며 불법을 행한 자들을 꾸짖으시며 떠나가라 명하셨다. 그들은 선지자 노릇하며, 귀신을 쫓아내고, 권능을 행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자신들의 것으로 취했다. 주의 이름으로 행하고, 주께서 받으실 영광을 가로채는 것은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하는 죄이다.
 
셋째, 옳지 않은 마음과 태도로 예배에 참석할 때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것이다. 말라기에서 하나님은 패역한 성도들의 예배를 꾸짖으신다. 하나님은 "내 이름을 멸시하는 제사장들아"라고 꾸짖으셨다. 예배드리는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을 전심으로 향하지 않을 때에 그것은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전심을 다해, 최상의 것으로, 최선의 것으로 하나님께 드리며 예배해야 한다.
 
넷째, 우리는 존귀하신 하나님의 이름을 참되게 불러야 한다.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는 자들이 받을 벌은 결코 가볍지 않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아는 자들, 그 하나님을 믿는 자들이 하나님의 이름을 존귀하게 부르게 된다.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의 이름을 부르며 찬송하고 기도하게 하시려고 우리에게 오셨다. 천국은 우리의 영원한 도피성이다. 거기로 가는 동안 숱한 어려움이 있을 때 우리가 할 일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다. 우리는 참되게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예배하기 위해, 찬양하며, 기도하기 위해 존재한다. 하나님은 그 이름을 높이는 찬양을 받으신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의 이름을 참되게 부르며 찬송하며, 기도하며, 예배하게 하옵소서. 그 이름의 영광을 알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최성인 목사
영산포중앙교회

화-산 믿음에 대한 증거들
본문 : 삼하 15:24~31
찬송 : 542장

공기는 눈에 안보여도 생명의 활동을 보면 공기의 상태를 알 수 있는 증거가 된다. 믿음도 그 자체는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지만 산 믿음에도 반드시 그 증거들이 있는데 본문은 세 가지를 들고 있다.
 
첫째, 산 믿음은 은혜를 의지하는 것으로 증거가 된다.
 
다윗은 아들이 반역을 일으켜서 급하게 피난을 가는데 제사장들이 하나님 임재의 상징인 법궤를 메고 따라 나섰다. 그러자 다윗이 그 법궤를 다시 돌려보내면서 법궤가 자신을 따라 다녀야 하는 것이 아니라 "만일 내가 여호와 앞에서 은혜를 입으면 도로 나를 인도하사 내게 그 궤와 그 계신 데를 보이시리라"고 고백한다. 다윗은 비록 피난길을 떠나면서도 하나님이 법궤 앞으로 도로 돌아오게 하실 여호와의 은혜를 온전히 의지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만이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돌아오게 하며, 삶의 무너진 것들이 도로 회복되게 하며, 영광의 천성으로 인도하신다.
 
둘째, 산 믿음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으로 증거가 된다.
 
26절에 '그러나'는 무엇에 대한 것인가? 25절에 "만일 내가 여호와 앞에서 은혜를 입으면 도로 나를 인도하사 내게 그 궤와 그 계신 데를 보이시리라. '그러나' 그가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를 기뻐하지 아니한다 하시면 종이 여기 있사오니 선히 여기시는 대로 내게 행하시옵소서." 마치 겟세마네 동산의 주님을 보는 듯 하다. 나의 기대도 있고 소망도 있지만 그보다 더 하나님의 뜻 앞에 100%을 순종하셨던 예수님의 모습과 다윗의 모습이 겹쳐진다. 산 믿음은 나의 기대보다도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이다.
 
셋째, 산 믿음은 기도하는 것으로 증거가 된다.
 
"여호와여 원하옵건대 아히도벨의 모략을 어리석게 하옵소서." 이렇게 기도했다. 그러자 아히도벨이 좋은 모략을 냈지만 반역자들에게 어리석은 모략으로 받아들여져서 그 모략은 폐기되고 아히도벨은 고향에 내려가 죽고 말았다. 결국 압살롬의 반역은 실패하고 다윗의 왕국은 더 견고하게 되었다. 진실로 하나님을 믿는다면 기도는 가장 본능적인 욕구이며 본능이 작용된 기도는 믿음에서 가장 큰 무기가 된다. 내가 기도하면 하나님이 하신다. 천사들을 움직이시고, 응답의 사람들을 붙여주시고, 환경을 변화시켜 주신다. 기도가 산 믿음의 증거이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아버지, 다윗같이 산 믿음의 증거가 분명한 믿음을 더해 주옵소서. 오늘 하루도 주님의 은혜를 의지하옵고 기도 가운데 하나님의 뜻을 따라 순종있는 삶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박주태 목사
성지교회

수-너는 아이라 하지 말라
본문 : 렘 1:4~10
찬송 : 325장

수많은 만남 가운데 가장 가치 있고 중요한 만남은 하나님과의 만남이다. 성경은 하나님을 만남으로 변화를 경험한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소개하고 있다. 예레미야도 그 중의 한 사람이었다. 어느 날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너를 여러 나라의 선지자로 세웠노라"고 말씀하셨다. 순간 예레미야는 걱정과 두려움에 휩싸이게 되었다. 당시에 선지자로 산다는 것이 어떤 삶인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에 그는 하나님께 "저는 아이입니다"라고 말했다. '나는 경험도 능력도 자격도 없다'는 의미였다. 그때 하나님께서 "너는 아이라 하지 말라." 하나님은 우리에게도 "너는 아이라 하지 말라"고 말씀하신다.
 
첫째,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이다. 모세와 함께 하셨던 하나님은 여호수아와도 함께하셨다. 모세 그리고 여호수아와 함께 하셨던 하나님은 다윗과도 함께하셨다. 그 하나님이 예레미야와도 함께하셨고 오늘의 우리들과도 함께하신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으리라." 여호수아에게도 말씀하셨다.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다윗에게도 함께 하셨다. 그래서 그의 삶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한 삶이었다. 하나님은 예레미야에게도 말씀하셨다. "내가 너와 함께 하겠다." 그 하나님께서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말씀하신다.
 
둘째, 하나님께서 나로 하게 하시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의 입에 손을 대시며 말씀하셨다. "보라. 내가 내 말을 네 입에 두었노라. 내가 오늘 너를 여러 나라와 여러 왕국 위에 세워 네가 그것들을 뽑고 파괴하며 파멸하고 넘어뜨리며 건설하고 심게 하였느니라." 예레미야가 "나는 아이입니다"라고 말하자 하나님은 그를 향해 '괜찮아. 걱정하거나 염려하지 마. 그건 내가 시키는 거야. 너는 그냥 내가 시키는 대로 하기만 하면 돼. 네가 할 수 있도록 내가 도와줄게'라고 하셨다.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와 함께 하시고 예레미야로 하게 하셨을 때, 하나님께서 모세와 함께 하시고 모세로 하게 하셨을 때 그리고 그들이 순종했을 때 그들은 위대한 선지자, 위대한 지도자가 될 수 있었다.
 
"나는 못합니다"라고 말하지 말자. 나는 비록 아이같이 연약하고 부족하고 무능하지만 하나님이 함께하신다. 하나님이 하게 하신다. 우리를 향해 어떤 계획을 갖고 계신지, 우리를 통해 무엇을 이루길 원하시는지 발견하자. 그리고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확신하며 담대하게 세상으로 나가자. 그리고 하나님이 맡겨주신 일에 최선을 다하자.
 
오늘의 기도
 
"내가 너와 함께 한다. 내가 너로 하게 할 것이다"라고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날마다 듣게 하옵소서. 그 말씀을 신뢰하며 영적전투에서 승리하게 하시고 우리를 통해 이루시려는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성취하는 삶이 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이삼균 목사
대성교회

목-끝까지 변치 않는 믿음
본문 : 욥 2:1~10
찬송 : 342장

욥의 인생을 설명하자면 그는 동방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이었고, 가정적으로도 훌륭한 가장이었다. 다복한 가정을 꾸리고 자녀들로부터 존경과 사랑을 받는 아버지이자, 훌륭한 남편이었다. 무엇보다 욥은 인격과 신앙에 있어서 완벽했다.
 
본문은 "그 사람은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라고 소개하고 있다. 또 잔치가 끝난 후에도 욥은 자녀들이 밤새 여호와께 죄를 범하지는 않았을까 하여 자녀들의 수만큼 자녀들의 죄를 속하는 번제를 드리곤 했다. 이러하듯 하나님께 온전한 삶을 살려고 힘써 노력했던 사람이다.
 
그렇게도 완전한 삶을 사는 욥은 한순간에 재산을 잃고, 자녀를 잃고, 건강도 잃은 채 거리에 나앉는 노숙자의 신세가 된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욥처럼 평온한 삶에 오는 고통은 그 상황 속에서도 이유와 원인을 모르니 고통스러움은 더욱 힘들기만 했다.
 
그 상황 속에서도 사탄은 계속적으로 집요하게 추궁한다. 언제까지 하나님을 경외하는지를 지켜보자고 한다. 원인 없이 닥친 삶의 절망 앞에서 욥의 신앙은 더욱 깊어진다. "내가 알몸으로 나왔으니 알몸으로 돌아갈 것이며, 주신이도 거두신 이도 하나님이시다."
 
욥은 여호와 하나님께 자신을 이끌고 주관하시는 주인이라고 고백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탄은 의혹과 추궁을 멈추지 않는다. 욥의 몸에 고통을 가하고 하나님은 또다시 욥의 고통을 허락하신다. "사탄이 이에 여호와 앞에서 물러가서 욥을 쳐서 그의 발바닥에서 정수리까지 종기가 나게 한지라. 욥이 재 가운데 앉아서 질그릇 조각을 가져다가 몸을 긁고 있더니…"
 
욥은 고통 앞에서의 보다 정직한 인간의 모습이 어떤 것인가를 보여 주고 있다. 욥의 아내는 욥에게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고 말한다. 이 말은 너무나도 불신앙 적이요 윤리적으로 불손함을 드러낸다. 이 말은 우리가 고통을 겪을 때 유사한 경험을 내포하고 있지 않은가?
 
극단적으로 말한 욥의 아내의 말은 악한 상황 속에서의 삶의 모든 기반이 찢겨진 현실을 말하고 있다. 이제 결실과 추수의 시기가 찾아왔다. 감사보다는 원망을 하고 있지는 않은지 자신과 가정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야겠다. 욥은 이에 뭐라고 답하고 있을까? "그대의 말이 한 어리석은 여자의 말 같도다.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았은즉 화도 받지 아니하겠느냐."
 
우리가 하나님을 창조주로 고백하는 신앙의 진실은 우리의 삶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니 복을 받든지 화를 받아도 이 모든 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왔다고 고백하는 진실한 욥의 고백이다. 오늘 우리는 여전히 하나님을 찬양하고 경배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항상 우리의 삶을 다스리시는 주인 되심을 고백하는 삶이 진정 하나님을 기쁘게 하기 때문이다.
 
오늘의 기도
 
아무리 어렵고 힘들어도 욥처럼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을 갖기를 소망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조미형 목사
생명비전교회

금-기도응답의 즐거움
본문 : 요 15:7
찬송 : 364장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이들의 가장 큰 즐거움 중의 하나는 기도응답이다. 우리는 주 안에서 하나님 앞에 나아가 기도할 특권을 부여 받았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도하여 응답받는 기쁨을 누리는 삶을 살아야 한다. 본문에는 응답받는 기도의 조건이 명시되어 있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기도응답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첫째, 주 안에 거해야 한다. 주 안에 거한다는 것은 그리스도와 의식적인 교제가 계속 유지되는 것을 의미한다. 포도나무와 그 가지를 생각해 보면 거한다는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 있다. 가지는 포도나무와 연결되어 있을 때 늘 포도나무로부터 영양분과 수분 등을 공급받아 생생하게 열매를 맺을 수 있게 된다. 이것을 요한은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의 안에 거하나니"라고 했다. 그리스도의 살과 피는 우리를 위해 십자가의 돌아가신 주님의 몸을 의미한다. 즉 그리스도께서 베푸신 모든 은혜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계속 주님과 교제하는 삶이 바로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삶이다. 또한, 전적으로 그리스도만 의지하는 것이다. 가지가 포도나무에서 떨어지면 더 이상 생명을 연장할 수 없는 것처럼 우리도 전적으로 그리스도를 의지하고 살아야 한다. 마지막으로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 안에서 지체된 성도들과 계속적인 관계를 유지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주셨느니라 교회는 그의 몸이니." 그리스도 안에 거함은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 안에서 서로의 짐을 져주고 서로 자신의 허물을 고백하며 교제하고 그로 인해 그리스도를 배우며 다른 이들의 모습 안에서 그리스도를 보는 것을 의미한다.
 
둘째, 주의 말씀이 우리 안에 거해야 한다. 이는 우리의 생활이 늘 성경에 의하여 조정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을 지적하는 것이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우리가 늘 그리스도와 교제하며 또한 그분의 말씀에 주목하여 늘 말씀의 요구대로 살아간다면 우리의 생각은 말씀에 의해서 조정될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소망도 말씀에 의해 형성될 것이다. 이런 상태가 되면 우리는 개인적인 욕망 속에서 더 이상 기도하지 않게 된다.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무너뜨리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하게 하니…" 이런 상태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다음과 같은 놀라운 약속을 주시는 것이다.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오늘 말씀에는 세 가지 중요한 요소가 있다. 첫째, 기도의 기회이다. 둘째, 기도의 자유로움이다. 무엇이든지 구하라는 것은 제한이 없다는 것이다. 셋째, 기도응답의 약속이다. "그리하면 이루리라."
 
오늘의 기도
 
내 안에 높아진 모든 것이 무너지고 그리스도에게 복종하는 삶이 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대훈 목사
창성교회

토-깨어 기도하라
본문 : 눅 22:39~46
찬송 : 321장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 감람산에 올라 가셔서 기도하셨다. 예수님은 늘 기도하는 분이셨고, 예수님의 사역 자체가 기도요 기도의 연속이었다. 뿐만 아니라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 마지막 순간에도 예수님은 감람산에 가셔서 기도하셨다.
 
예수님의 기도, 특별히 감람산에서의 기도는 어떤 기도였는가? 예수님은 이렇게 기도하셨다.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거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한 마디로 예수님의 기도는 자기의 뜻을 내려 놓고 전적으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기도였다. 이 기도를 통하여 예수님은 십자가의 길을 걸으실 수 있었고, 이제 예수님의 십자가는 피할 수 없는 무거운 십자가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적극적 사랑의 사건이 되었다. "일어나 함께 가자. 보라 나를 파는 자가 가까이 왔느니라."
 
감람산 기도를 통해 예수님은 기도란 무엇인가를 우리에게 보여주신다.
 
첫째, 기도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로 세우는 것이다. 기도를 놓치면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로 세울 수 없다. 한 무명의 그리스도인의 말처럼, 언제나 실패의 원인은 기도 없음에 있다. 우리의 실패의 원인은 능력이나 환경, 상대방의 문제가 아니다. 기도 없음에 있다. "너희가 얻지 못하는 것은 구하지 아니하기 때문이요 구하여도 얻지 못하는 것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시는 분이시다. 그러나 우리가 응답받지 못하는 것은 잘못 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로 세워져야 한다. 감람산에서의 예수님의 기도는 나의 뜻이 아닌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기도였다. 바른 기도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기도다.
 
둘째, 기도를 통하여 우리 위에 있는 하나님의 섭리를 발견할 수 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부조리와 모순으로 가득 차 있다. 빌라도의 거짓된 재판, 가야바의 음모. 그러나 예수님은 이 모든 상황 속에서 침묵하고 순종하신다. 이 엄청난 모순과 부조리를 통하여서도 하나님의 뜻은 이루어지고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여기에 오늘 우리의 신앙고백이 있다. 때론 우리가 모순과 부조리와 억울한 상황에 놓일 때가 있다. 그러나 낙심하지 말고 그 속에서도 하나님은 일하시고 계심을 믿으라. 그 가운데서도 하나님은 일하시고 주님의 뜻은 이루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오늘의 기도
 
깨어 기도하며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삶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오상현 목사
염광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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