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 카예타노 추기경-교회갱신의 한계

[ 김인주 목사의 이주의인물 ]

김인주 목사
2016년 10월 04일(화) 13:56

1518년 10월 12일 아우그스부르크에서 카예타노(1469-1534) 추기경이 마틴 루터를 만났다. 사흘 동안 연속으로 만남 혹은 청문이 이루어졌다. 심문관이 아니라 아버지의 심정으로 대한다는 약속은 지켜졌다. 카예타노의 상황 보고서나, 다음 달에 출간한 루터의 행적기록(acta augustana)으로 진행과정을 살펴보면, 우호적인 분위기에서 대화가 오간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서로 주장을 굽히지 않고 팽팽하게 버티면서 절충의 가능성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카예탄은 당시 매우 뛰어난 신학자였다. 자신의 지식과 언변으로 루터를 압도하고 설득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 하지만 루터도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었다. 과거 천주교에서 만들어진 교령의 허점을 지적하였고, 심지어는 성서 안에서도 베드로가 실수하고 책망 받은 장면들이 있음을 상기시켰다. 겉으로는 대화하는 척 하면서 체포하고 재판에 넘길 것이라는 소문도 나돌았다. 루터는 일주일 정도 체류한 다음 20일에 도망하다시피 탈출하였다.

이 만남은 종교개혁사에서 정상회담으로 불리울 만하다. 지위로 보나, 학식으로 보나, 이 수준의 대화는 다시 이루어지지 못하였다. 천주교의 신학자, 주교, 그리고 영주들 중에서 루터와 비슷한 고민을 하였던 흔적을 많이 보게 된다. 차이가 있다면, 교회를 그대로 두고서 갱신을 시도할 것인지(reform), 아니면 새로 판을 짜야 하는지(reformation), 여기서 갈라진다. 마치 고려 말에 정몽주와 정도전이 다른 길을 택한 것과도 비슷하다. 

이 결별을 아쉬워하고 다시 복원하는 작업은 20세기 말이 되어서야 이루어졌다. 천주교회와 루터교회가 이신칭의 교리에 관하여 합의문서를 작성하면서 최종단계에서 연합예배를 아우그스부르크에서 모인 것은 이러한 뜻을 담은 것이다.


<봉성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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