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약할 때 곧 강함이라'

[ 논설위원 칼럼 ]

김훈 장로
2016년 10월 04일(화) 13:45

요즘 정치판이 참으로 이상하다. 대통령이 국회의 장관해임 결의를 거부하고 여당대표는 국회의장 해임을 요구하며 단식농성에 돌입하는가 하면 여당이 국정감사를 거부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왜 이렇게 됐을까. 한마디로 지난 총선이후 정치판의 갑을관계가 뒤바뀌었기 때문이다. 법안 하나 반대하기 위해 192시간이라는 초유의 필리버스터 릴레이를 해야 했던 야당은 하루아침에 을이 아닌 갑의 위치에서 집나간 여당을 향해 국회로 돌아오라고 손짓하고 있다. 

민주주의는 인류가 만든 정치 원리 중 가장 보편타당한 제도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 중심에는 다수결의 원칙이 있다. 다수결의 원칙은 말 그대로 다수의 의견에 따르는 것이다. 말뜻만 놓고 본다면 민주주의와 다수결은 결코 같은 배를 탈 수 없는 성격이다. 다수결에 의해 승자가 모든 것을 차지하는 제도는 사실상 반민주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너무도 쉽게 다수결의 원칙을 만고진리의 법칙인양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다수결의 원칙이 민주주의의 근간이 되고 있는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다수결이 민주주의의 완성이라고 할 수는 없다. 다수결이 민주주의를 꽃피우려면 다수결로 결정된 의견이 소수결에 속한 사람들에게 피해가 돌아가지 않도록 배려하고 이해를 구하는 노력이 반드시 필요하다. 만일, 다수결로 결정된 사항이니 생각이 다른 소수들은 무조건 따르라고 강요하게 된다면 이는 다수에 의한 폭력에 지나지 않는다.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정치는 기본적으로 약자 편에 서는 것이다. 그것이 정치의 본질이다. 그런데도 현실 정치는 강자만을 추종한다. 약자를 허물어뜨리기 위해 강자 편에 서는 지배논리를 정당화한다. 그러다보니 사회에서도 '더불어 함께' 정신이 사라지고 내편 네편으로 편 가르기와 약육강식의 정글논리에 함몰되어 있다. 다수의 힘에 기대는 패거리 정치는 추태이지 진정한 정치라 할 수 없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강자보다는 약자의 편에 서려는 선한 본성을 심어주셨다. 기독교야말로 그 어떤 종교보다 약자의 편에 서는 종교이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미련한 것이 사람보다 지혜 있고 하나님의 약한 것이 사람보다 강하니라"(고전1:25)고 기독교의 역설성을 지적한 바 있다. 하나님은 스스로 인간의 몸으로 세상에 오심으로 강자가 아닌 약자의 모습으로 친히 약자의 친구가 되셨다. 그것이 기독교 교리의 핵심이다.

그런데 한국교회는 차츰 약자를 버리고 강자 편으로 옮겨가려 하고 있다. 힘을 가져야 선교도 할 수 있고 사회도 변화시킬 수 있다는 논리가 한국교회 강단에서 아무런 거리낌 없이 통용되고 있다. 거대한 예배당을 건축하고 그 안을 교인들로 가득 채운 대형 교회 목회자들을 '성공'이라는 수식어로 부러워하고 추켜세우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내년 종교개혁 500주년을 앞두고 한국교회 연합기관 통합론이 탄력을 받고 있다. 교회 일치와 연합 측면에서 교회의 하나됨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문제는 반드시 통합해야 하는 이유가 강한 힘을 가지고 그 힘을 사회 앞에 발휘하기 위함이라는데 있다. 한국교회가 힘이 있어야 동성애와 차별금지법, 이슬람 등도 막아낼 수 있고, 정부를 향해 할 말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일면 맞는 말인 것 같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여주신 삶과는 거리가 있다.

한국교회에 부여된 사명은 예수 그리스도의 가치를 버리고 약자가 아닌 강자의 면모를 갖추는데 있지 않다. 강한 힘으로 정치를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약자 편에서 대신 매 맞고 아파하고 함께 울어주기를 주님은 원하시기 때문이다.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핍박과 고난을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할 그 때에 곧 강함이니라"(고후12:10) 하신 말씀을 한국교회 지도자들이 부디 잊지 말기를 바란다.

김 훈 장로
전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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