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관심'

[ 논단 ]

김학란 장로
2016년 09월 21일(수) 08:32

김학란 장로
성내교회

현대란 어떤 시대일까? 독일의 철학자 야스퍼스는 '현대의 정신 상황'이란 책에서 현대의 시대적 특징을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첫째, 현대는 경제와 기술과 대중의 시대로서 인간의 생명이 파괴되고 인간성이 멸시 받는 시대이다. 둘째, 인간은 목적이나 관심 대상이 아니라 하나의 수단(도구)으로 전락한다. 셋째, 인간은 생각 없이 살아가는 일에만 몰두하고, 이용당한다. 넷째, 인간은 기만과 허위를 거듭함으로써 어디에서도 신뢰를 찾아볼 수 없다. 있는 것은 위기의식뿐이다.

그런데 이런 야스퍼스의 시대 비판은 지금까지도 그대로 적용되는 것 같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소외감을 지니고 살아가는 이 시대에선 인간성의 회복, 생명 존엄성의 회복 등이 시급한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인간이 인간에 대한 관심을 갖는 것은 이 사회를 유지하는 데 있어 가장 귀한 것 중 하나다. 이 관심을 성경에서는 '인정' 또는 '동정' 나아가서는 '사랑'이란 말로 표현하고 있다. 

마태복음 8장 5~13절은 한 백부장이 자기 하인에게 보여준 아름다운 관심에 대해 기록하고 있다. 이 관심은 보통 우리가 말하는 '인정'이나 '의리'보다 훨씬 깊고 높은 것이었기에 예수님은 이 사람이 한 일을 크게 칭찬했다. 필자는 여기에 현대인들의 고민인 '인간 소외'를 극복하는 길이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 백부장의 인간에 대한 관심은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만나보지 못했다"고 칭찬하실 정도로 거룩한 면이 있어, 오늘날까지 많은 사람들을 감동시키고 있다. 

그 백부장이 관심을 가진 하인은 당시 관심을 받을 인간적인 조건은 갖추지 못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주인이 수하에 있는 사람의 거취는 물론 생사까지도 좌우할 수 있는 것이 당시의 관습이었고, 그는 남의 집에서 종살이를 하는 천한 사람이었다. 또한 백부장이 관심하고 있는 이 하인은 중풍이란 병에 걸려 오랫 동안 주위 사람들의 도움을 받았을 것이며, 살아날 희망도 거의 없었을 것이다.

이런 여러 조건을 따져보면 백부장이 종의 문제를 자신이나 자녀의 문제처럼 소중히 여기며 예수님께로 나아왔다는 것 자체가 놀라운 '인간 관심'이라고 할 수 있다. 그 관심은 자기의 지위나 신분까지도 낮은 곳에 내려놓는 것이었다. 

참된 인간 관심은 예수님의 관심과 통하는 면이 있다. 그의 순수한 인간 관심에 귀기울이신 예수님은 "내가 가서 고쳐 주리라"는 즉각적인 응답으로 백부장의 '인간 관심'에 관심을 주었다. 

예수님이 "이만한 믿음을 보지 못했다"고 칭찬하시며, "네 믿음대로 될 찌어다"라는 말로 '믿음이 문제를 해결했다'는 확신을 주셨다고 해서, 백부장의 인간 관심이 문제를 해결하게 만든 모든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그의 문제를 해결해 주실 수 있는 예수님에 대한 관심이 있었기에 그의 인간 관심은 열매를 맺었다. '백부장이 예수님에게 나아왔다'는 것이나, 그의 친구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찾아와 그의 문제를 가지고 나왔다는 것은 곧 백부장의 인간 관심이 예수님에 대한 관심으로 옮겨간 것을 설명해주고 있다. "주여, 내 하인이 중풍 병으로 집에 누워 몹시 괴로워하나이다"는 비교적 간단한 호소이다. 그런데 주님의 관심을 구하는 간절함이 이 기도에 나타난다. 우리에 어떤 관심이 먼저 있어야 하고 또 그 제일의 관심이 무슨 관심과 연결돼야 하는지를 보여준다. 

첫째는 내 주위 사람들에 대한 인간 관심을 갖고 있느냐이다. 만약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인간 관심이 무엇인가를 바라는 조건부의 것이라면 그것은 제대로 된 관심이라고 할 수 없다. 그리고 인간 관심은 거기에서 그치고 만족할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 나아가는 '예수 관심'으로 승화돼야 한다. 

교회와 기독교인이 이 시대에 존재하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아마도 어그러진 '인간 관심'을 바로잡고, 또 그 관심을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관심'으로 발전시키는 것이라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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