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와 자서전

[ 논단 ]

김운성 목사
2016년 09월 09일(금) 16:40

김운성 목사
땅끝교회

초등학교 시절 가장 힘든 방학숙제는 '일기쓰기'였다. 일기(日記)란 '날마다 쓴 삶의 기록'인데, 그 이름이 무색하게 밀렸다가 몰아 쓰니 엉터리일 수밖에 없다. 선생님의 꾸중을 피하기 위한 면피용일 뿐이었다. 그 일기를 남에게 보여주기 부끄러웠던 이유도 내용 때문이 아니라 엉터리로 써 치운 글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철이 조금 들어 중학생이 되자 일기가 조금 달라졌다. 그 때도 일기를 보여주는 것은 여전히 힘든 일이었는데, 그 이유는 초등학교 시절 일기처럼 급조된 엉터리였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너무 솔직하고 적나라한 기록이어서 남에게 보여주는 것은 마치 벌거벗은 영혼을 보여주는 것과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위로가 되는 것은 적어도 그 내용만은 거짓은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이렇게 보면 일기는 초등학교 시절의 것이건, 사춘기 때의 것이건 남에게 보이기 힘든 글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자서전은 어떤가? 자서전의 사전적 정의는 '어떤 사람이 자신의 생애를 기록한 전기'인데, 자신이 자신의 이야기를 쓴다는 점에서 일기와 공통점이 있다. 그런데 참 이상한 것은 일기는 남에게 보이지 않고 숨기는 반면, 자서전은 원하지 않아도 남들에게 보내 읽게 한다는 것이다. 필자의 사무실에도 곳곳에서 보내 온 자서전들이 여러 권 쌓여 있다. 

일기나 자서전 모두 자기 삶의 기록인데, 왜 이처럼 다를까? 

그 이유는 일기에는 부끄러운 내용이 들어 있는 반면, 자서전에는 그런 이야기들이 빠져있어 '보여주어도 괜찮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심각한 문제다. 일기와 자서전이 모두 자신에 대한 기록인데, 어떻게 내용이 다를 수가 있단 말인가? 일기와 자서전이 다르다면 둘 중 하나는 거짓일 것이고, 아마도 그것은 후자일 것이다. 

일기는 진실을 담고 있지만, 자서전은 거짓을 담고 있을 개연성이 크다. 그렇다면 진실을 드러내고 거짓은 숨겨야 할 텐데, 오히려 오늘의 세상은 거꾸로 돼 진실이 담긴 일기는 숨기고, 거짓이 섞인 자서전은 남에게 읽게 하니, 참으로 난감하다. 또 사람들은 자서전의 상당 부분이 거짓과 과장임을 알면서도 "아, 참 훌륭하게 사셨습니다"라고 하며, 마음에도 없는 인사를 한다. 거짓과 거짓이 버무려진 채로 서로를 적당히 속이며 사는 세상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리스도인의 최대 강점이 진실에 있음을 알고 있다. 성경 자체가 많은 인물들의 수치스런 부분을 그대로 담고 있지 않은가? 하나님은 미화된 거짓보다 부끄러운 진실을 원하신다. 장차 우리 각자가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설 때(롬 14:10), 각자 자신의 삶을 하나님께 직고하게 될 것이다(롬 14:21), 그리고 그 때에는 우리 삶을 숨길 수도 미화할 수도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 중요한 것은 날마다의 삶에서 한 줄 한 줄 진실한 모습을 고백하듯 적어 내려가는 것이다. 아울러 그 내용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내용으로 채워지도록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이어령 선생님은 시집 '어느 무신론자의 기도'의 제2장 제목을 '혼자 읽는 자서전'이라고 했다. 그렇다. 자서전은 남에게 보이기 위해 쓰는 것이 아니라, 혼자 읽는다는 마음으로 쓰는 게 맞다. 그리고 그것을 후에 하나님께 보여드려야 할 것이다. 이 혼탁한 세상에서 우리만이라도 진실하게 살고, 진실하게 고백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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