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모-영혼의 등불

[ 기독교교육이야기 ]

김용재 목사
2016년 09월 06일(화) 14:04

청소년에게 외모는 영혼의 등불과 같다. 이 등불은 보통 10살에서 15살 사이에 점화가 된다. 한 번 붙으면 좀처럼 꺼지지 않는다. 이 불이 붙으면 아이들은 갑자기 변한다. 안 씻어서 머리에서 닭똥냄새 나던 아이가 씻기 시작한다. 얼굴에 물 이외에는 바르지 않던 아이가 이것저것 골라 바르기 시작한다. 몸 들어가면 뭐든 걸쳐 입던 아이가 "저런 건 안 입어" 한다.

화장실에 한 번 들어가면 한 시간 이상 나오질 않는다. 아무리 기다려도 안 나온다. 나오라고 소리를 쳐도 안 나온다. 어른의 얘기를 무시하는 게 아니다. 남자 아이들은 머리를 세우고, 귀 옆에 붙이고, 자연스럽게 흘러내리게 하려면 한 시간이 부족하다. 여자 아이들은 화장 안 한 것처럼 화장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른다. 마무리는 역시 옷차림 인데 너무 신경을 쓴 것이 티 나지 않고 자연스러워야 한다.

외모를 포기한 아이들은 없다. 포기한 것이 아니다. 다음을 기약하고 있는 거다. 방학이 오기를 기다린다. "목사님, 안녕하세요?" "누구…신지…요?", "어머, 목사님도 참, 저 OO예요" 이제야 어렴풋이 알아볼 것 같다. "너… 왜… 이렇게 된 거니? 어쩌다 이렇게 된 거니? 도대체 누가 널 이렇게 만든 거니?" 아이가 쑥스럽게 대답한다. "저 '쌍수' 했어요." 아이들이 그렇다. 시술과 수술 사이를 오가면서라도 "예쁘다"는 소리를 듣고 싶어 한다.(나는 아이에게 '보정' 수술 할 때는 꼭 같이 가자고 약속했다. 서약서도 쓰게 했다.)

아이들에게 외모의 기준은 연예인이다. 그 옷과 머리 모양을 하고 걷는 모델이 기준이다. 새 옷을 사 입었는데 모델 같은 모양이 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게 안 되니까 괴롭다. 다리를 잡아서 늘이고 싶다. 엉덩이를 덜어내고 올려붙이고 싶다. 지방을 태우고 머리가 조금 더 작았으면 좋겠다. 아마 미치기 일보 직전일 거다. 왜 그럴까? 노력해도 안 되는 부분이 아이들을 못 견디게 만들기 때문이다.

"너 왜 그렇게 외모에 신경을 쓰니? 주님은 십자가를 지셨어. 아무것도 못 입으시고…." 이렇게 말하는 어른을 보면 아이들은 자기 영혼의 불꽃을 꺼뜨리려고 위협하는 사람으로 느낀다. 변화는 위협으로 오지 않는다. 아이들이 자기 외모를 받아들일 때까지 기다리자. 당신과 내가 그랬던 것처럼, 그 날이 오고 있다.

대신 아이의 외모를 연구하라. 칭찬 할 구석을 찾아라. 억지로라도 만들어라. "눈빛이 좋다." "피부가 밝다." "귓 볼이 근사하다." "이마가 멋진데." "턱 선이 예술이군."
당신이 어릴 때, 외모에 관해서 듣고 싶었던 말을 아이들에게 해줘라. 

 

<다세연 대표ㆍ숲속샘터교회 시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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