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처럼

[ 목양칼럼 ]

이상은 목사
2016년 09월 06일(화) 14:01

도시에 있던 교회가 시골로 들어오니 많은 변화가 생겼다. 일상적으로 사방 푸름과 밤마다 별이 보이고 새소리 바람소리가 가까워졌다. 더없이 조용함과 갑자기 한적해진 느낌에 다른 세상에 온 듯했다. 교회적으로도 할 일도 다양해졌다. 풀을 뽑고 나무를 가꾸고 주변을 관리하는 일 등 이제껏 일상과의 다른 삶이 주어졌다.

'푸름'이라는 생태적ㆍ신앙적 가치와 마을이라는 공동체적인 내용을 꿈꾸면서 '푸른마을'이라는 교회이름부터 먼저 짓고 시작한 목회에 어느 정도 걸맞은 생활이 되어진 셈이다.

변화의 첫 번째는 생전 해 본 일이 없던 농사다. 오래전 총회 전주생명농업학교를 8기생으로 마치고 교회 앞에 있는 600여 평의 땅에 주말농장을 운영하고, 교우들에게 생명농업의 중요성과 농사일을 가르쳤다. 그리고 자연양계도 시작했다.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보전하는 생태적인 삶의 내용들이 하나씩 하나씩 구체화된 것이다. 더불어 푸른마을자연학교도 시작됐다. 농사와 자연을 따르는 삶을 배우고 체험하는 프로그램인데 지금은 여기 저기 흔해졌지만, 우리가 시작할 때는 거의 '독보적'이었다.

이것이 어렵지 않았던 것은 교우들이 가지고 있는 재능(도예, 천연염색, 바느질, 한지공예 등)들을 나눴기 때문이다. 나는 목공을 가르쳤다. 이러한 자연학교가 벌써 열세살이다.

내가 목공을 하게 된 것은 계획적인 것은 아니었다. 교회를 돌보다 보니 여기저기 이것저것 필요한 것들이 있었고, 그때마다 뚝딱뚝딱 만들다보니 점점 기술과 흥미가 생겼다. 게다가 나무를 만지고 만드는 게 내 적성에 아주 잘 맞는다는 걸 알게 되었다. 처음에는 간단한 야외의자, 책꽂이, 신발장… 이런 것들을 만들었는데, 이제는 나름 목수(?)라고 불러도 부끄럽지 않을 만큼, 생활용품부터 전통짜맞춤까지 하게 되었다.

이러다보니 나와 교인들은 자연스레 '나무'얘기를 많이 하게 된다. '이거 무슨 나무에요?' '어떻게 만들어요?' '어디서 온 나무에요?' 이렇게 얘깃거리가 있다는 것이 삶을 얼마나 풍요롭게 하는가, 또 관계를 얼마나 부드럽게 하는가, 나는 나무얘기를 할 때가 가장 즐겁다.

처음 나온 새가족 심방을 할 때도 내가 만든 십자가나 접시 등을 선물로 가져간다. "이것은 예수님의 보혈을 상징하는 '파덕'이라는 나무로 만든거예요." "이 나무의 향기를 맡아 보세요" 처음 만난 분들과도 자연스럽게 많은 대화를 나룰 수 있어서 여간 즐거운 것이 아니다. 나무는 정말 매력적이다. 이렇게 목공은 처음에는 필요에 의해서 시작됐지만 이제는 없어서는 안될 아주 중요한 부분이 되었다.

이왕 나무 얘기가 나왔으니 한마디 더 해본다. 나무는 결이 좋아야 필요한 재료로 잘 사용할 수 있다. 결이 좋지 않으면 좋은 재료로 사용되기 어렵다. 또 대패질을 할 때는 반드시 결을 따라 해야 깔끔하다. 만약 결을 거스려서 대패질을 하면 면이 거칠어져 쓸모없게 된다. 그리고 나무의 가장 큰 장점은 오래 쓸수록 품격이 더해지고 정감이 간다는 것이다.

나는 이런 나무의 성질을 보면서 사람과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한다. 이를테면, '신앙은 인격이다'라고 말하듯이 그 사람의 인격이 좋지 못하면, 하나님이 좋은 재료(일꾼)으로 쓸 수 없다는 것이다. 또 목회라는 것도 결을 따라 대패질 하듯 순리를 따라 자연스럽게 되어야 아름다운 결실을 얻게 될 것이다.

오늘날 목회 현실이 갈수록 거칠어지는 것은 혹 결을 거스르기 때문은 아닌지 생각해 볼 일이다. 또 조금 거친 나무도 오래 쓰고, 만지다 보면 매끄럽게 되고, 품위 있게 되고 정감이 있게 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될 일이다. '나무처럼' 목회라는 것도 만지기 나름으로 매력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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