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또 다른 자기 정체성

[ 기독교교육이야기 ]

김용재 목사
2016년 08월 30일(화) 16:38

"아빠, 그 아이, 그렇게 나쁜 아이 아니예요. 좋은 아이예요." 약속 시간보다 늦게 귀가한 아들에게 "너는 그 아이를 만나면 꼭 늦게 들어오더라"라고 뱉어버린 나의 말을 듣고는 눈물을 참지 못하고 울먹이며 했던 아들의 대답이다. 아이들은 자신을 탓하는 말은 웬만하면 참는다. 어릴 때부터 들어서 익숙해졌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친구를 탓하는 말은 참기가 어렵다. 친구는 아이들에게 자기 정체성과 같다. 아니 어쩌면 그 정체성보다 더 소중하다.

아이들은 급격하게 변화되는 자신이 낯설다. 사람을 대하는게 어색하고, 상황을 대처하는게 어설프다. 그러니 어른들이 볼 때는 얼마나 더 낯설까? "낯설다"는 말은 많이 순화시킨 것이고, 사실은 "속 터진다". 속이 터지니까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을 것 같지만, 인간이 영적인 존재이니 아이들도 어른들의 마음을 읽는다. 부모의 눈에서 '너 언제 사람답게 살래?', 학교 선생님의 눈에서 '너 그 성적으로 어떻게 할라고 하니?', 교회 선생님의 눈에서 '너 영적인 것에 관심 좀 가져라'를 읽는다.

어린이, 청소년을 대상으로 '자기 신뢰도'를 측정 조사한 연구에서 우리나라가 OECD 국가 중에서 최하위를 차지했다. 우리 아이들이 자기를 신뢰하지 못한다. 다른 사람도 신뢰하지 못한다. 그래서 하나님도 신뢰하지 못한다. 왜그럴까? 어른들로부터 신뢰를 받아본 경험이 없기 때문이다. 신뢰하는 것이 무엇인지 잘 모른다. 그래서 아이들은 자신을 '못 마땅한 존재'로 인식한다. 그래서 어른들과 함께 있는 것이 불편한거다.

친구들은 다르다. 서로 심한 욕을 섞어 가며 비난 하는 것 같아도 기껏 해야 얼굴 표정, 옷 차림새, 꼬인 말투, 엉성한 몸짓 등 겉모양에 관한 것들이다. 성품, 내면, 본질, 미래 등 존재 자체에 대한 비난은 거의 없다. 서로를 그냥 놔둘 줄 안다. 그래서 같이 있으면 편하다. 별일 없어도 만나고, 할 것 없어도 만난다. 한 번 만나면 헤어질 줄 모르고, 헤어졌다가도 금방 다시 만난다.

그래서 아이의 친구를 비난하는 것은 절대 삼가해야 한다. 아이들은 누군가 자신의 친구를 비난하면 절벽 아래로 떨어지는 듯한 느낌이 든다고 한다. 부모는 아이의 친구들과 좋은 관계를 맺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아이 친구의 부모와도 알고 지내는 것이 좋다. 집으로 초대해서 함께 시간을 보내고, 다함께 어울려 운동하고, 나들이를 가는 것도 좋다.

교회학교 교사도 마찬가지다. 반 아이들의 친구와 알고 지내는 것이 좋다. 아이의 친구들과 함께 만나고 식사를 하고 대화를 나누면 좋다. 가능하면 여행을 하는 것도 좋다. 당신이 아이의 친구들을 존중할 때, 아이들은 당신의 모습 속에서 우리 아이들의 친구가 되신 예수님에 대한 힌트를 얻는다.
<다세연 대표ㆍ숲속샘터교회 시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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