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예배]8월 29일~9월 3일

[ 가정예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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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08월 25일(목) 10:23

월-셋방에서 이룬 기적
본문 : 행 28:30~31
찬송 : 461장

"어떻게 살아야 할까?", "나도 행복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안데르센은 이렇게 대답했다. "사람의 인생은 하나님에 의해 쓰여진 한 편의 동화랍니다. 그 사실을 깨닫는 순간 당신은 행복해질 수 있습니다."
 
깨달음은 깨어짐이다. 깨어짐 없이 깨달음은 없다. 안데르센은 "나의 역경은 정말 축복이다. 가난했기에 성냥팔이 소녀를 쓸 수 있었고, 못생겼기에 미운 오리 새끼를 쓸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


재능이 있다고 다 행복한 것은 아니다. 삶을 불행하게 만드는 재능도 있다. 삶을 행복하게 만드는 재능은 깨어지며 깨어나는 것이다. 아픔에 깨어지고, 오해에 깨어질 때 보석처럼 깨달아지고, 고난에 깨어지고, 역경에 깨어질 때 담금질 당한 쇠처럼 강해진다. 가난에 깨지고, 질병에 깨질 때, 우리는 어떤가? 깨지기만 하고 깨달음이 없는가? 아니면 깨졌기에 깨달았는가? 깨닫는 사람은 깨지지 않는다. 깨어난다. 험담에 깨지고, 감옥에 깨지고, 폭풍에 깨졌지만, 사도 바울은 깨지지 않았다. 깨달았다. 껍데기를 깨고 나왔다. 감옥에서 나오고, 폭풍 속에서 나왔다. 마침내 꿈에 그리던 로마에 왔다. 다시 셋방에 갇혔지만, 깨달았기에 로마를 깨우친다. 거침없이 담대하게 복음을 가르친다. 300년 후 한 사람의 꿈은 현실이 된다. 로마는 이방의 나라에서 복음의 나라로 뒤바뀐다. 로마의 기적은 셋방의 기적이다.
 
셋방에 갇혀 대기중인 바울은 행복했다.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바울은 성공했다. 바울은 전도자로서 로마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길 원했다. 세계를 지배하는 로마 사람들이 복음을 믿으면 세계복음화가 앞당겨지기 때문이다. 바울에게는 자기를 지키는 로마 육사 출신의 젊은 군인이 옆에 있었다. 그는 장차 로마를 이끌어갈 리더이다. 이 젊은 군인들이 순번을 짜서 매일 바울에게 온다. 한 사람이 믿으면 한 지역을 복음화 시킬 수 있다. 바울은 신바람이 나서 복음을 전한다.
 
바울이 로마에서 깨달은 것이 있다. 유대인의 구원은 하나님도 포기하셨다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바울 자신에게 한정해서 하는 말이다. 하나님은 왜 유대인들을 버리셨을까? 그들의 마음이 우둔해졌다. 보고도 보지 못하고, 듣고도 듣지 못했다. 그들의 마음은 교만과 오만과 독선으로 가득 차 있었다. 하나님의 사람들을 비난하고 정죄했다. 아무리 말씀을 보여주어도 들려주어도 하나님을 외면하는 거만한 자들이기에 하나님이 버리셨다. 하나님이 버리셨는데 내가 구원할 수 있다고 여긴다면 이 얼마나 미련한 것인가? 바울은 비로소 깨닫는다. 사랑한다면 미워할 수 있어야 한다. 미움 받을 용기를 가질 때 진정 사랑할 수 있다. 우리는 모두를 사랑할 수 없다. 모두에게 사랑 받을 수 없다.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복음을 사랑하고, 하나님이 주신 비전과 사람을 사랑한다.
 
오늘의 기도
 
나의 고집과 아집으로 주님의 뜻을 헤아리지 못하는 우를 범치 않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동국 목사
수원온누리비전교회

화-붉은 줄
본문 : 수 2:18~21
찬송 : 268장

라합은 창녀였다. 라합이 복음을 들을 수 있었던 것은 많은 사람이 이곳을 지나갔기 때문이다. 라합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에 대해서 듣고 있었다. 10가지 재앙으로 하늘의 하나님, 땅의 하나님께서 홍해를 마른 땅으로 걷게 하시는 능력의 하나님을 알고 있었다. 그녀는 하나님의 백성인 정탐꾼들을 살려주고 자신과 가족을 살려주는 약조를 구한다. 이때 정탐꾼들은 창문에 붉은색 줄을 내리라고 한다. 이 붉은 줄은 복선이 있다. 유월절을 연상케한다. 어린 양의 문설주의 피를 보면 사망과 저주가 있다 할지라도 지나치는 유월이 떠오른다. 이 어린 양은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한다. 하나님은 십자가를 지신 당신의 아들 예수님의 피를 보면 그 안에 누가 있더라도 넘어가신다. 그 안에 있는 사람이 무슨 죄를 지었든지 패스하신다. 이 붉은 줄을 내리게 한 의미를 살펴보자.
 
구약의 신명기 전쟁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헤렘법으로 적국의 모든 남녀노소, 우양을 다 죽이는 전멸법이다. 두 번째는 전쟁을 시작할 때 항복을 선포하면 그들을 전쟁포로로 삼고 전쟁을 마친다. 그러나 항복하지 않고 전쟁을 하게 되어 승리하게 되면 전쟁에 나온 남자만 죽이는 법이다. 여리고 전쟁은 하나님께서 헤렘법을 선포하신다. "그 성 안에 있는 모든 것을 온전히 바치되 남녀 노소와 소와 양과 나귀를 칼날로 멸하니라." 신명기 20장 16~17에서도 헤렘을 선포하신다. 가나안 7족속에게 헤렘으로 정리하기를 원하셨던 것을 이미 창세기 15장에서 말씀하셨다. 가나안의 죄악이 관영한 400년 동안 기다렸던 하나님의 죄에 대한 심판이었다.
 
가나안의 모든 죄악을 정리하고 당신의 백성들을 통해서 아버지가 생각한 당신의 나라를 세우고 싶으셨다. 그래서 헤렘을 선포한다. 그 첫성이 여리고였다. 그리고 당신의 백성들로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고 싶어 하셨다. 이 중심에 창녀 라합이 있었다. 죄악이 관영한 한복판에 있었다.
 
무엇 때문에 기식하는 모든 것이 죽어 나갈 때 헤렘의 한복판에서 살아날 수 있었나? "믿음으로 기생 라합은 정탐꾼을 평안히 영접하였으므로 순종하지 아니한 자와 함께 멸망하지 아니하였도다." 라합은 믿음이 있었다. 하나님께서 심판하고 저주하는 곳에 붉은 줄 하나면 살아날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헤렘으로부터 자유할 수 있는 것은 오직 붉은 줄이다. 이 붉은 줄이 모든 걱정, 근심, 불안, 초조,억압으로부터 자유를 준다. 세상의 정죄와 자신의 정죄 속에서 자유케하는 보혈을 믿고 나아가길 바란다.
 
오늘의 기도
 
붉은 줄의 능력을 믿고 헤렘에서 살아났던 것처럼 우리도 그리스도 보혈의 능력으로 살아가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박형미 목사
예수비전교회

수-돼지가 하늘을 본 날
본문 : 시 119:71
찬송 : 50장

돼지는 목뼈의 구조상 하늘을 볼 수 없다고 한다. 그래서 돼지는 평생 땅만 보고 살아가야 하는 슬픈 동물이다. 그런데 어느 날 돼지가 하늘을 보게 되었다. 어느날 돼지가 그만 발을 잘못 디뎌서 넘어지게 되었는데, 그 덕분에 돼지는 난생 처음 하늘을 보았다.
 
돼지가 하늘을 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넘어지는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실패하고 넘어질 때 기존의 관점으로는 볼 수 없는 새로운 세계를 보게 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시 119:71)
 
오늘 시편 말씀은 넘어지고 실패한 것이 오히려 주님의 말씀을 배우는 계기가 되었다고 말하고 있다. 피카소는 "창조가 있기 전에 먼저 파괴가 있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기존의 관점이 주는 장점과 안전에 안주하는 것이야말로 창조의 걸림돌이 된다는 것을 피카소는 알았던 것이다.
 
주택이 주는 장점은 불편함에 있다. 불편하기 때문에 보이는 세계가 그 곳에 있다. 반대로 아파트의 장점은 편리함이지만 그 편리함이 오히려 단점이 되기도 한다. 편리함이 항상 좋은 것, 옳은 것은 아니다. 오히려 불편함과 위험(리스크)이 주는 축복이 있다. 복음은 리스크(위험)를 안고 있다. 의인을 위한 자리뿐만 아니라 죄인을 위한 공간이 거기에 마련되기 때문이다. 성숙한 사람만이 아니라 미숙한 사람을 위한 자리가 십자가의 복음에 담겨 있다. 그래서 복음은 언제나 도전이 있고, 평온함이 주지 못하는 신비한 세계로 우리를 인도한다.
 
우리나라에는 약 6만개 정도의 어린이 놀이터가 있다고 하는데, 그 놀이터가 너무 안전하게 설계된 나머지 아이들의 흥미를 유발하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너무 안전한 놀이터는 이이들의 흥미를 자극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고 때로 오히려 사고를 유발하기도 한다고 한다. 반대로 약간의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놀이터에서는 아이들이 창조적인 자극을 받는 것은 물론이고, 자신의 몸을 보호하려는 노력을 하게 되어 예민한 감각을 사용하게 된다고 한다.
 
"성공이 좋은 것만큼 실패에도 가치가 있다." 오늘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이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아버지, 실패와 고난을 통해서도 주님을 만날 수 있게 하시니 참으로 감사합니다. 어려운 상황속에서 낙망하지 않고 주님의 주실 축복을 희망으로 기다리는 믿음을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이재현 목사
충광교회

목-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봉사
본문 : 벧전 4:7~11
찬송 : 325장

예수님께서는 산상설교에서 구제, 기도, 금식에 대하여 말씀하시면서 사람에게 보이려고 하지 말라고 경고하셨다. 어려운 사람을 돕는 실제적인 사랑의 행위인 구제도, 하나님을 신뢰하고 의지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기도마저도, 자기를 철저하게 부인하고 낮추는 행동인 금식까지도 자기 영광을 위하여 악용할 수 있음을 경계하셨다. 섬김(봉사)도 마찬가지이다. 봉사도 자기 영광을 위해, 자기 이름을 내기 위해, 심지어는 자기의 물질적인 욕심을 위해 봉사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봉사에는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지 않는다. 오늘 본문 말씀에서 베드로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봉사를 하라고 권고한다. 어떻게 봉사하면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실까?
 
첫째, 각각 받은 은사대로 섬겨야 한다.
 
은사는 하나님께서 믿음의 공동체나 다른 이웃들에게 봉사할 수 있도록 믿음의 공동체 모든 사람들에게 나눠주시는 재능이다. 은사에 있어서 크고 작음은 없다. 크든 작든 열리는 열매는 똑같기 때문이다, 사랑이 바로 그 열매이다.
 
두 번째로 선한 청지기 같이 봉사해야 한다.
 
청지기는 주인의 재산을 맡아 관리하는 사람이다. 남의 것을 관리하는 관리자일 뿐 소유주가 아니다. 청지기에게 있어서 자기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러므로 청지기는 무엇이든지 주인을 기쁘게 하기 위해서 일을 한다. 기쁘게 하려면 주인이 그 일을 맡긴 의도를 잘 파악해야 한다. 이것이 청지기의 책임이다. 은사, 재물, 지식, 권력, 힘 모든 것이 주님께로부터 왔다. 그런데 그것을 맡긴 주인의 의도를 무시한 채, 가지지 못한 이웃을 무시하고, 고통을 주고, 억울하게 하면 주인의 심판을 받게 된다. 하나님께서 맡기신 목적을 알고, 그 목적에 알맞게 은사와 소유를 사용해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다. 그리고 청지기는 신실하고 성실하며 거짓이 없어야 한다. 어떤 상황에서든지 맡겨진 것들을 성실하게 행하는 청지기가 선한 청지기이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신다.
 
세 번째로 공급하시는 힘으로 봉사해야 한다.
 
다른 사람에 대한 봉사를 할 때에 하나님의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 같이 해야 한다고 베드로는 권면한다. '공급하다'의 헬라 말은 '코레게이'라고 하는데 '풍성하게 공급함'을 의미한다. 이 말은 다른 사람들에게 베풀 때에 인색함으로 하지 말고, 풍성하신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처럼 해야 한다는 말이다. 우리는 주님의 마음으로 그들을 섬기고 혹시 마음에 상처를 받지 않을까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도와야 한다.
 
사랑은 언제나 풍성함을 전제로 한다. 하나님께서는 인색한 곳에 함께 하시지 않는다. 언제나 풍성한 곳에서 영광을 받으신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오늘의 기도
 
인색하거나 교만하지 않고 언제나 겸손하게 자기를 낮추며 하나님의 사랑을 공급하는 선한 청기기로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구명환 목사
찬동교회

금-네 양떼의 형편을 살피며
본문 : 잠 27:23
찬송 : 570장

 
생활의 달인에 나오는 이름난 식당에는 공통점이 있다. 그들이 파는 음식은 이미 똑같은 이름을 가진 음식들이 시중에 많다. 하지만 먹어보면 맛이 전혀 다르다. 이유가 무엇일까?
 
무언가 다른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우선 그들이 사용하는 재료가 다르고, 맛을 내는 방법이 다르다. 부산에 수 십년된 유명한 빙수집은 아직도 옛 방식대로 얼음을 갈고 우유를 붓고, 팥과 복숭아만 고명으로 얹어 만든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이 집은 비가 오는 날에도 손님이 만원이다. 왜 그럴까? 손님들은 한결같이 다른 빙수집에서는 맛볼 수 없는 맛이 이 집에는 있는데 그 맛이 아주 매력적이라고 말한다. 방송에서 만드는 과정을 보여 주는데 빙수 하나를 만드는 데 별별 과정을 다 거친다. 팥을 삶고, 찹쌀풀을 내어 팥의 쓴 맛을 없애고 사과를 달여서 단맛을 올리고, 단호박을 이용해서 단맛과 부드러움을 더하고, 마와 고구마를 쪄서 은은한 단맛을 더한 후, 복숭아 졸인 것을 고명으로 얹었다. 가격은 예전 가격 2500원 그대로이다. 이것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이 살피고 고민했을까. 이렇게 자신의 것을 위하여 고민과 세심한 노력을 기울이는 사람들은 실패하는 것이 더 어렵다. 자신의 양떼 이름을 다 알고 습성까지 파악한 사람이 양을 잘못 돌볼리 있겠는가. 당연히 잘 할 수밖에 없다. 정말 잘 해야만 하는 일이 있다면 거기에 마음을 두어야 한다. 교회 일도 마찬가지이다. 적당히 대충 하려고 해서는 안된다. 감당하는 영역에 대하여 형편을 부지런히 살피며, 마음을 두어야 한다. 그런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분명히 다르다. 자녀를 양육하는 것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자식의 상태를 부지런히 살피고 마음을 두어야 한다. 요즘 많은 부모들이 관심 대신 돈으로 해결하려고 한다. 부모는 내 아이가 어떤 성향인지, 공부가 적성에 맞는지, 적성에 맞지 않다면 초중고 과정을 어떻게 마무리 하고 자신이 하고 싶어하는 일로 유도해줄 것인지 살피고 마음을 두어야 한다. 가장 어리석은 부모는 자식이 가져오는 결과물만 가지고 나무라고 지적질하는 부모이다. 결과물만 갖고 혼을 내도 아이의 성적은 오르지 않는다. 결국 자녀는 건강하게 성장하지 못한다.
 
우리 크리스찬들은 특히 자식의 신앙상태를 잘 살피고 늘 마음을 두시기 바란다. 그러는 만큼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지경은 든든해지는 법이다. 무언가를 바라기 전에 먼저 그것에 제대로 마음을 두는 법을 훈련하시기 바란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아버지, 건강한 마음을 주옵소서. 자식이 잘 되기를 바라기 전에 자식에게 제대로 마음을 쏟는 부모가 되게 하옵소서. 교회에 무언가를 바라기 전에 교회를 온전히 마음에 품게 하시고 하나님이 허락하신 모든 지경에 대하여 진심을 쏟는 종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진성 목사
통영교회

토-가정을 살리는 것은
본문 : 창 42:1~8
찬송 : 75장

야곱은 사랑하는 아들 요셉이 짐승에게 죽임을 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큰 아픔을 겪게 된다. 요셉을 잃은 슬픔을 겨우 달랠 수 있을 때쯤 되어서는 7년이나 계속되는 흉년이 찾아와 가족이 모두 굶어 죽을 처지에 놓인다. 야곱은 애굽에 양식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아들들을 보내어 양식을 사오게 한다. 그런데 뜻밖에도 그곳에서 죽은 줄만 알았던 아들 요셉이 총리가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애굽에 내려가 요셉과 다시 만나고 남은 여생을 보낸다. 가뭄과 흉년이 야곱의 가문에는 축복이 되었다. 야곱의 가문은 잘되는 가문, 잘되는 가정이 되었다.
 
우리 각자도 가정을 살리고 잘되는 가정을 세워가야 한다. 지금은 가정 사역을 잘해야 할 때이다. 어떻게 하면 우리 가정이 잘 될 수 있을까? 늘 진지하게 진단하고 고민해야 한다. 그러면 본문을 통해 야곱의 가정이 잘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인지 살펴보자.
 
첫째, 야곱의 믿음 때문이다. 하늘 문이 닫힌 듯 비가 여러 해 동안 오지 않았다. 곡식 창고에 곡식이 모두 떨어지고 심어놓은 곡식들은 말라 죽어 가고 있었다. 그런데 애굽에 가면 양식을 구할 수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그 소문을 듣고 아들들을 불러서 애굽에 가서 곡식을 사오라고 보냈다. 애굽으로 곡식을 사러 가는 길은 너무 먼 길이었고 위험한 길이었다. 야곱이 애굽으로 가는 길이 위험한 길이요 먼 길인 것을 알면서도 아들들을 보낸 것은 곡식을 사오면 우리가 살 것이라는 믿음을 가졌기 때문이다. 이런 야곱의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그들이 모두 살 수 있었다. 믿음의 부모가 자녀를 살리고 가정을 살린다. 가정이 살려면 부모에게 믿음이 있어야 한다. 우리는 믿음이 있는 부모가 되어 자녀에게 믿음의 본을 보여야 한다.
 
둘째, 자녀들의 순종 때문이다. 야곱의 아들들은 아버지의 명령에 순종하였다. 아버지의 명령에 모든 아들이 모두 "예"하고 순종하였다. 모든 아들이 순종하고 양식을 구하러 애굽으로 갔다. 누구도 아버지의 명령에 불평하지 않았다. 불순종하지 않았다. 모두 한결같이 순종하였다.
 
이것이 그 가정이 복을 받을 수 있는 이유이다. 가정을 살리는 것은 자녀들의 순종이다. 순종하는 자녀가 가정을 살리고 가문을 살리는 것이다. 여러분의 가정이 살려면 자녀들의 순종이 있어야 한다. 가족안에서 순종하는 자녀가 되시기 바란다.
 
오늘의 기도
 
믿음의 부모 순종의 자녀가 되어서 가정을 살리는 가족 구성원 한명 한명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손문섭 목사
좋은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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